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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Feb 17. 2024

45.초연함이 필요할 때는 전굴

<그러나 사실 전굴은 멋이 없다>


모든 것에 지쳐 있는 나는, 요즘 그 이유를 찾는 것에 열중하고 있다.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고 싶다.

다시 열정적이고 실수 없는 완벽한 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열심히 살라고 설파하던 내가 이렇게 삐걱대니 볼 면목이 없다.

누구에게? 잘 모르겠다. 늘 보이지 않는 누구를 상상하며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아무도 내게 관심 없고 날 안 보는데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오늘도 기어서 요가매트에 올라갔다.

열정이 넘칠 때는 주말 하루에 2~3번 이상을 수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야근이 많기도 하지만 하루 한 번도 엄청난 결심을 한 뒤 겨우 수련이 이루어진다.


몇 년간은 정해진 시퀀스로 펀터멘탈 수련만 했다.

요즘은 컨디션이 좋을 때는 펀더멘털 요가를 하고, 그날그날 몸과 마음 상태에 따라 인요가를 선택하기도 한다.

한 가지 방식의 요가를 하다 보니 그날의 컨디션이나 에너지에 따라 몸이 원하는 수련이 달라짐을 느끼고 있다.


오늘은 인요가 중에서도 전굴에 집중하는 수련을 했다.

그간 나는 전굴 수련을 게을리 해오긴 했다.

수련을 비교적 오래 해오다 보니 전굴은 노력 없이도 쉽게 하듯 쉬어가는 동작이기 때문에 소홀히 지나가기 쉬웠다.

전굴을 따로 수련하거나 디테일한 자세로 다듬을 고민도 하지 않았다. 때로는 거의 건너뛰거나 안 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전굴은 사실 멋이 전혀 없다. (ㅜㅜ 죄송합니다.)

물론 전굴을 제대로 잘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동작이다.

하지만 아무리 요가를 못하는 초보라도 전굴은 비슷하게 시도는 할 수 있다. 반면 후굴은 시도조차 두려워 모양을 비슷하게 내기조차 어려운 동작들이 많다.

제대로 된 전굴을 만드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직접 해보기까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전굴이 그렇게 어려운지 크게 인식하기가 어렵다.


대부분 사람들이 언젠가 요가를 해야겠다 생각하며 눈으로만 미래를 기약하며 요가적인 만족을 할 때가 있다. 이때 꿈꾸는 자세들은 전굴이 아니라 대부분 후굴이거나 암밸런스(손으로만 몸을 드는 아사나) 동작이다.


'나는 완벽한 전굴을 만들겠어.'를 목표로 하는 사람은 드물다. 왜냐하면 몸소 해보기까지 전굴은 너무나도 쉬워 보인다. 그리고 자세가 엉망진창이라도 일단 몸을 접어볼 수는 있다.

못할 것 같지 않았던 이 동작들이 제대로 디테일을 잡아 보기 전까지는 그 어려움을 인지하기 어렵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내 기억에 전굴은 멋이 없고 쉬워 보인다는 오해 속에서 가벼이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이상하게 전굴 위주로 수련을 이어갔다.

내 의지가 아니라 몸에서 바라는 방향이었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여러 아사나의 수련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자꾸 몸에서 전굴을 요구하는 느낌을 가졌다.

수련의 밸런스를 위해 후굴을 잠시 추가했지만 내 몸에서 더욱더 깊은 전굴을 갈망했다.

그냥 나는 오늘 자연스럽게 전굴만 하기로 했다. 그게 내 몸에서 지금 제일 원하는 에너지라고 판단했다.


요가가 끝나고 오늘의 수련을 돌아보았다.

전굴은 어쩌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요가가 아닌 진짜 나를 위로하는 요가이다.

지쳐있는 순간은 자랑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진다. (그동안 요가로 자랑도 많이 해서 부끄럽습니다. 깊이 반성)


일단 내가 힘내서 잘 살아내고 싶다.

일상의 평범한 느낌을 되찾고 싶다.

그런 느낌과 전굴은 닮아있다.


용기를 얻는 것이 후굴요가였다면, 전굴은 평화와 위로의 요가다.

오늘 수련했던 전굴 요가 중에 특히 느낌이 좋았던 아사나들이다.


1. 숩타 쿠르마아사나

이 요가는 요기(요가를 수련하는 수행자)에게 바쳐진 것이라고 한다.

이 자세에서 몸은 거북이처럼 비슷한 형태가 된다. 온몸이 움츠러들게 된다. 우리는 긴장하거나 스트레스 속에 있을 때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긴다.

이 자세에서 사지와 몸을 웅크리고 있다 보면 마음은 평안해지고 기분이 가라앉는다. 감정이 안정을 찾게 된다. 요가 디피카에서 이 아사나를 통해 걱정, 고뇌에서 벗어나고 기쁨에 초연해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지나친 마음속의 열정과 공포, 분노의 감정이 녹아버린다. 이 자세를 완성하고 나서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생기를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인요가에서 하기 좋은 자세중 하나며 2분 정도 지속하면 좋다.


2. 파스치모타나 아사나

몸을 폴드처럼 납작하게 접은 자세다. 초보자들이 도전하기는 쉬우나 정확하게 척추 모양과 고관절 굴곡을 만들어내기는 꽤 어려운 자세이다.

동물의 척추는 수평으로 이어져있고 심장은 척추 아래에 있다. 이 위치는 동물이 건강하고 강한 지구력을 갖게 한 비결이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직립 보행으로 인해 척추는 세워져 있고 심장과 수직을 이룬다. 동물처럼 척추 아래 심장이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이에 인간은 빨리 지치고 심장질환에 걸리기 쉽다.

파스치모타나 자세는 의도적으로 이 자연스러운 형태를 수련으로 경험할 수 있다.

척추를 곧게, 그 아래 심장을 둘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생기를 얻을 수 있고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준다.

반으로 접힌 골반의 힌지 부분에 많은 산소와 혈액이 공급되며 활력을 줄 수 있다.

몸을 폴드한 상태에서 발을 가만히 안고 있다 보면 마음이 점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단단한 척추가 내 마음을 안정감 있게 안아주며 따뜻하게 가슴을 위로하는 느낌이다.


3. 받나 코나아사나

구두수선공자세 혹은 나비자세로 불린다.

수련 시퀀스에서 이 자세를 넣지 않아도 매일 하는 동작이다. 의자에 앉아 골반이 뻐근한 날은 자기 전에 무조건 하고 있다. 특히 생리통이 심한 날에도 좋다.

발을 편하게 뻗어내 다이아몬드 형태로 만들어 이마를 발에 대 가볍게 들어가거나, 뒤꿈치를 치골에 바짝 당겨 턱을 요가매트에 내려놓으며 깊이 들어가도 좋다.

이때 양손은 발을 잡거나 발 앞에서 합장을 하면 명상에도 적합한 동작이 된다.

눈을 감고 파드마아사나로 앉아서 명상을 할 때 졸음이 쏟아진다면 이 자세에서 명상에 들어가 봐도 좋다. 파드마아사나보다 호흡과 몸이 힘들기 때문에 쉽게 잠에 들기 힘들다.

요가 수련이 여의치 않은 날은 호흡에 집중하며 수분 간 이 자세를 홀딩하는 것만으로도 명상과 가벼운 수련을 경험할 수 있다.


4. 우파비스타 코나아사나

박쥐자세. 전굴 자세에서 자랑하기 좋은 자세라고 말하면 상당히 세속적이긴 하지만 꽤 멋진 자세다.

많은 사람들이 요가하는 사람들에게 "다리 가로로 찢어지나요? 머리서기 되나요?"의 단골 질문이 되는 아사나다. 나도 좌우 찢기를 근래 완성했기 때문에 이 자세를 길게 홀드하지는 못한다.

오늘따라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이어져,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며 이 자세를 유지하다 보니 4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다리를 좌우로 찢고 가슴과 턱을 바닥에 댄채 손을 양 발목이나 발끝을 잡는 것 자체가 챌린지이기 때문에 완성하기 쉽지 않은 자세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 자세를 지속하면 깊은 전굴 속에서 박쥐처럼 어둠 속의 평화를 느낄 수 있다. 괴롭고 힘들 때 자꾸만 어두운 곳에 혼자 숨고 싶은 음의 기운이 생긴다. 박쥐는 음기 속에서 활동하는 동물이지만 그 안에서 가장 활발한 포식자가 된다. 음기 속에서 휴식하고 활동하며 자기만의 에너지를 찾을 수 있는 동작이라고 생각한다.


 전굴에 집중한 요가 수련은 괴롭고 힘들 때 무조건 용기내고 힘을 내야 하는 양의 기운과는 다르다.

이유 없는 불편한 감정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수용하는 형태로 우리는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나에게는 어떤 문제를 적극해결하기보다 수용하고 인정하하는 것이 더 어렵기는 하다. 우리 대부분 양의 기운으로 적극적으로 살기는 쉽지만 음 기운 속에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더 어려워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로 매일을 화이팅 넘치게 살기에는 너무 지친다.

음양의 밸런스도 안 맞다. 우리는 너무 양의 기운 위주로 삶을 대하고 있다.


때로는 박쥐처럼 어둠 속에 숨어서 휴식을 하고, 거북이처럼 웅크리며 자신을 지키며, 네발 동물들처럼 척추아래 심장을 숨기며 평화를 느껴볼 수 있다.


동물들은 컨디션이 안 좋거나 몸이 아플 때, 식음을 전폐하고 어둠 속에 숨어서 회복의 시간을 갖는다.

인간만이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적극해결 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고 몸소 부딪히고 스스로를 괴롭힌다.

우리는 어쩌면 조금은 숨어서 자기를 지키고 보호해도 될지도 모른다.


슬픈 마음이나 괴로움 속에서 호흡과 전굴을 통해 수동적으로 나를 보호한다고 도망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건강하게 나를 위로하는 방법이다.


세상사 모든 일을 온몸으로 몸빵하며 부딪히기에는 너무 피곤하기만 하다.

달팽이처럼 숨어서 조용히 위기를 피하며 자신을 지키는 것도 현명한 일이다.

(*실제로 인요가에서 누워서 하는 달팽이자세 역시 전굴이다.)


역시 전굴은 조용히 회복하고 위로하는 요가였다.



*에너지와 용기를 주는 후굴 요가는 바로 이전 글에서....

https://brunch.co.kr/@lovegyny/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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