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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오히려 대체로 굶어서 건강하게 사는 중

<사실 먹어서가 아니라 안먹어서 건강한거 같은데..>

by 전인미D

나는 힘들 때 입맛을 잃어버리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식욕을 가졌다.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는 대체로 굶는 것을 선택해 왔다.

시험 전, 면접 전, 중요한 일 앞에서는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다. 무리하게 먹기보다 식사를 패스한 뒤 마음을 다스리고 내 앞에 있는 목표에 집중했다.


점심을 아예 안 먹던 시절도 있었다. 아침과 점심을 굶고 자동으로 간헐적 단식을 하니, 오히려 남들보다 체력과 건강이 좋았다.

그거 먹고 어떻게 살아?라고 반문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이 아팠다.

현대인들은 못 먹어서 아픈 사람들은 없다. 과하게 잘 먹고, 입이 즐겁기 위해 불필요한 것까지 잘 챙겨먹어서 다들 아프다.

늘 굶고 다닐 때 몸은 아프긴커녕 더없이 가볍고 건강했다.


어릴 때도 하도 안 먹어서 어머니의 걱정이 많았지만, 생각보다 건강하게 별다른 질병 없이 살아오고 있다.

오히려 유년기의 과한 영양 섭취는 평생 대사문제를 안고 사는 시초가 된다. 너는 하도 굶어서 위장병이 생길거다, 골다공증이 될 거다라는 어머니의 추측성 발언을 듣고 살며 스스로도 불안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건강검진을 하니 골밀도는 더없이 좋았다. 게다가 위장병의 원인은 굶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인 경우가 많다.

요즘은 오히려 어린 시절, 입맛이 없어서 굶었던 것이 내 건강을 해치긴커녕 평생 건강한 몸을 획득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중년이 된 지금도 남들보다 젊고 건강한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맨날 굶고서 힘이 있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매끼 챙겨 먹는 것과 가벼운 식사 혹은 스킵하는 것은 힘과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대체로 육체 노동자처럼 힘을 그렇게 많이 쓸 일이 없다. 특정 운동선수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오히려 많이 먹은 대가로 얻은 무거운 몸은 운동을 할 때 더욱 버텨야 할 힘을 많이 요구한다.

나는 몸이 가벼운 상태라, 핸드스탠드나 손이나 발로 내 몸을 들어야 할 때 오히려 적은 힘과 기술로 가능하다.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못 드는 사람이 태반이다. 몸 들어 올리기는커녕 팔, 다리도 보상자세 없이 멀쩡하게 높이 올리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잘 먹는 게 건강의 지표가 아니라 적당히 안 먹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게 해 줬다. 물론 이건 모두 나에게 한정된 얘기일 수 있다.

많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과도한 소화와 배출을 위한 단계에서도 신체에 부담이 된다. 신체 장기들도 휴식이 필요하다. 소화를 위해 몸속 장기들에게 매일 야근에 업무 과중을 시키면 그들도 지치지 않겠는가?

일=음식을 적당히 줘야 그들의 워라밸도 잘 유지되어 오랫동안 나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늘 필요한 기본값 이상을 섭취하게 된다. 현대의 1인분은 1.5인분인 경우가 많다. 쉐어하는 경우 메뉴 3개를 시켜버리면 2인분 이상을 먹기도 한다. 생각보다 우리들은 한끼 식사에서 많은 양을 먹는 게 습관화되어 있다.

직장 동료들과 밥을 먹으면 생각보다 급하게 먹고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우리 장기에게 매일 2명 인력이 해결할 일을 혼자 하게 만든다.

조만간 퇴사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는 퇴사를 할 수 없으니 안에서 골병이 들겠지만.


자연의 야생동물들은 몸이 아프면 식음을 전폐하고 동굴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며 신체 회복을 기다린다. 음식을 소화하는데 쓰는 에너지를 아껴 회복하는 것에 쓰는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유독 아플 때 잘 먹어야 한다며 억지로 먹게 한다. (물론 장기 투병 중일 땐 내내 굶을 수 없으니 잘 먹어야 한다.)

나는 아플 때 오히려 내가 원하는 만큼 굶었다. 아플 때는 입맛이 없다. 질병에서 거의 회복되어 갈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식욕을 느낀다.

내가 음식을 원할 때까지 굶음을 지속했지만 오히려 병에서 잘 이겨내고 자연스럽게 신체를 회복하는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약과 음식에 의존하는 것이 오히려 몸에게 좋을까?라는 생각. 우리는 점점 자연스러운 회복을 잃은 신체와 살고 있다.


정신없이 바쁠 때, 오히려 굶고 일하면 정신이 또렷해졌다.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고 온 다른 사람들이 책상 앞에서 멍하니 있거나 졸고 있을 때, 나는 공복 상태로 초집중하여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물론 굶게 되면 정신은 맑지만 신경이 상당히 날카로워지므로 가능하면 타인과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배가 부르면 사람은 느긋해지고 여유가 생긴다. 마음이 풀린다. 그렇게 일도 대충 풀리게 된다.

그래서 예민하고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일 앞에서는 배가 불러지는 것을 주의하고 있다.


그러나 주말에는 나도 편하게 먹고 대충 쉰다. 매일 저렇게 경계태세로 살기란 상당히 힘들다.


몇 해 전 대학교 시간 강사를 나갈 때 나는 매일 아침 스타벅스에서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샀다.

오전 강의에 이어 오후 강의 전 강사 대기실에서 늘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다. 그렇게 1년 내내 스벅 샌드위치만 먹었다.

대학 학식의 낭만을 상상했었지만, 나는 식사를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가볍게 자리에서 먹은 뒤 다음 강의 시뮬레이션을 하기 바빴다. 나는 늘 긴장 속에서 사는 슬픈 사람이다.

그래도 그때 굶지 않았던 이유는, 일어서서 6시간 이상 입을 놀리며 강의를 하는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강의는 육체노동이다. 그 샌드위치의 힘은 대단했다. 음식이 주는 에너지를 느낀 때였다. 육체노동을 앞두고는 잘 먹어두는 것이 좋다.

그러나 평소의 나는 화이트칼라기 때문에 굳이 포만감 가득한 점심이 필요하지는 않다.


요즘 점심은 샐러드를 먹고 있다.

경쟁적인 직장에서 책상 앞 점심식사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주위에 보내는 효과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점심시간을 조용히 보내고 싶을 뿐이다. 어차피 사회생활 중 업무로 엮인 사람들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면 점심시간이라도 아무와 엮이고 싶지 않다.


정신적 평화, 날씬한 몸과 더불어 건강이 따라오고 있다.

모든 시간을 입이 원하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는 없다. 소화기관들도 쉴 시간이 필요하다.

어차피 회사에서는 입맛이 없으니 가볍게 먹어 몸을 편하게 하고 있다.


샐러드를 먹으면 전혀 배가 부르지 않다. 그러나 일에 집중하면 어차피 허기는 잊혀지고 시간은 흘러간다. 그렇게 몸에서 음식을 비우는 시간을 공짜로 확보할 수 있어 좋다.

웬만한 허기로는 배가 고프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된다. 그렇게 음식의 갈구에서 자유로운 몸이 됐다.


현대 사회에서 삼시세끼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말처럼 시대착오적인 말이 없다.

우리는 수렵시절처럼 하루에 수만 킬로를 걸어 다니며 식량을 구하고 사냥을 위해 몸을 쓰지 않는다.

그 시절에조차 그들은 하루 세끼를 먹지 못했고, 식량을 못 구하면 굶는 날도 많았다.

회사에서 컴퓨터만 보는 우리가 세끼를 챙겨 먹어서 건강해질 리 없다. 오히려 식사 한 끼보다 중요한 건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제 어머니께 증명할때가 됐다.

잘 먹어서가 아니라 잘 안 먹어서 오히려 젊고 건강하다고.

이 나이에도 밥먹고 다니라는 잔소리를 듣는 중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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