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편리하게 사느라 다들 성질이 더러워졌다.>
요즘 사람들 참 날카롭다. 눈빛, 말투, 행동에 너무 날이 서 있다.
우리 모두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다.
일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고.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미션은 왜 이렇게 많은지. 내 한 몸 멀쩡하게 살려내기도 참으로 버겁다.
(돈 벌고 빚 갚고, 가정살림 케어하고, 아픈 가족을 돌보거나 자녀를 양육하고, 건강을 관리하고 운동을 하고, 개인적인 공부나 자기 계발을 해야 하고. 종교활동, 취미활동, 사교활동, 반려동물 케어하기.)
쫓기다 보니 짜증이 나고 타인에게 아량을 베풀 여유가 전혀 남아있지 않다.
내 속도와 다르면 화가 난다.
천천히 속도 맞추고 기다려주며 서로를 이해를 하기엔 시간이 없다. 우린, 쫓기고 있다.
상대편도 눈치껏 나와 빠르게 달려줬으면 좋겠다.
혼자 아등바등 살아내기도 바쁘니 남을 위해 양보하거나 배려할 틈이 없다.
나를 둘러싼 작은 세상을 제대로 굴리기도 벅차서 주변은커녕 심지어 나 자신도 돌아보기가 힘들다.
조급하다 보니 자꾸 나의 기준을 놓친다. 여유가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판단과 행동들.
가치관이 흔들리게 된다.
이렇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못난 내가 밉고, 그런 나를 안 도와주는 주변이 원망스럽다.
우리는 엄청나게 빠른 도시, 서울에 살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 유례없이 모든 것이 초고속이다.
상상 이상으로 빠르고 편리하고 친절하면서 오류나 빈틈없는 사회.
빠르고 완벽한 서비스를 누리며 편리하게 살 수 있는 것은 행운이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 이면에 우리가 노동자가 되어 업무를 할 때도 같은 속도와 완벽성이 요구된다는 점.
내가 누리는 서비스와 내가 행해야 하는 업무의 속도 기준은 같은 잣대로 움직이고 있다.
바로, 빈틈없이 빠르고 완벽한 처리!
우리는 편하고 빠른 서비스를 누리는 것처럼 빠른 속도와 완벽함으로 업무와 인생미션을 처리해야 한다.
내가 얻는 것이 빠르면 내가 주는 것도 빨라야 한다.
그렇게 속도에 미친 나라에 산다는 것은 전 국민이 날카롭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의 실수를 웃으며 넘기기 힘들다.
너 때문에 망했다고 비난해야 하고 누군가를 미워해야 이 속도의 부담과 압박을 견딜 수 있다.
내 탓 아니고 남 탓을 해야 정신적인 짐을 덜어낼 수 있다. 이 완벽과 속도를 원하는 사회에서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생각하다가는 미쳐버리기 십상이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여유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애들은 그럴 수 있어, 신입은 그럴 수 있어는 더 이상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실수나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된다. 네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건, 어떤 악조건 속에 있건 너는 이 역할에서 빈틈없이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런 숨 막히는 사회에서는 배려를 하면 과한 요구를 하며 상대는 더욱더 악랄해진다. 그렇게 사회에는 진상고객, 진상후배, 진상00들이 늘어간다.
하나 배려하고 하나 양보하는 미덕도 없다. 하나를 줬더니 2개 달라는 진상00 때문에 정확하게 1:1 계산으로 나누게 되며 어쩔 수 없이 평등을 위한 불평등을 실행한다.
등쳐 먹히지 않으려면 배려가 아니라 조건을 걸고 제안해야 한다.
이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현실 조건 안에 다들 여유가 없어서 자주 화가 난다.
예전이라면 대충 웃으며 넘기거나 심기를 전혀 건드리지 않았을 사소한 일들에도 화가 난다.
누군가의 실언에 화가 나고, 앞에서 길 막으며 천천히 걷는 사람 때문에 화가 난다.
말 실수 할 수 있지... 라며 전혀 개의치 않던 때도 많았는데 요새는 사소한 말들이 날카롭게 꽂힌다. 모두 나의 신경을 긁는다.
심지어 뜻 없이 한 말들인데도 혼자 곱씹고 나의 상상을 투영하여 해석해 버리곤 한다. 그냥 넘기면 되는데 내 마음속에서는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다. 상대를 탓하고 만다.
사실 살아가며 겪는 많은 별것들은 대체로 별게 아니다.
나를 스쳐가는 모든 바람에 일일이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 그냥 의미 없는 바람일 뿐.
빠르고 편리하고 빈틈없이 사느라 다들 날카롭고 성질이 더러워졌다.
이 속도와 책임감이 우리나라를 더욱 발전시킨 것은 맞지만, 살짝 아쉽다. 전 국민의 날카로움이...
우리는 이제 살짝 속도를 늦추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 불편을 감수하고 타인의 실수를 웃어볼 수는 없을까?
평등을 위한 불평등이 아니라.... 불평등을 이해하는 평등을 실천할 수는 없을까.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건 몸은 너무 편한데, 정신이 너무 힘들고 불편하다. 이 속도에 맞추기 위해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이 날카롭게 살고 있다.
작은 것도 빈틈없이 하느라 다들 고생이 많다.
그런데 또 느릿느릿한 유럽 가서는 못살겠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