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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Nov 10. 2024

95.미지근한 생활

<사소하고 위대하게 살아볼까?>


이 사소한 일상이야 말로 인생일 뿐. 사실 인생에는 대박 한 순간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처럼 기승전결이 연결되는 클라이맥스의 순간이 있을 거라 기대하기도 했지만,

현실은 별거 없는 평범한 시간들이 쌓여 내 삶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우리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회사만 나가봐~내가 다 할 수 있어. 직장에 매인 몸이라 내가 이렇게 살지…

하지만 회사 나가봐야 똑같다. 아니 오히려 직장이 없어진 자신의 빈 몸을 보면 나아지긴커녕 더 낮아졌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현실의 제약들은 벗어날 수도 없지만 벗어난다고 한들 별다를 게 없다.


현실의 한계에 갇힌 상황일수록 가장 미래를 꿈꾸기 쉬운 곳일지 모른다.

편안할 때는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가장 괴로울 때야 말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기 쉽다. 간절한 순간이야 말로 자신의 욕망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위기의 시간은 가끔 미래를 위한 약(채찍)이 되기도 한다.


회사에서 벗어나야 꿈꾸는 일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가장 안전한 이곳에서 미래의 일을 조용히 테스트하고 조금씩 준비를 할 수 있다.

실수해도 부끄럽지 않고 실패해도 상관없다. 나에겐 직장이 있으니까.

지금 내 몸은 감옥이 아니라 안전지대에 데려다 놓은 것이다.


올 한 해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이직과 퇴사 생각을 많이 했다. 

다른 일로의 전직 또한 고려 중이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며 준비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이 회사라는 안전지대에서 준비가 완료되면 그때 스포트라이트가 있는 다음 무대로 나가겠다고.


그때까지 익명의 안전지대 속에 있는 것을 최대한 즐기고 그 시간들을 활용하면 된다.

스포트라이트에 빨리 노출되면 세상의 시선 앞에 미완의 과정을 맨몸으로 견디는 것이 더욱 괴롭다.


지금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내가 꿈꾸는 이야기가 없다면 그곳을 떠나도 마찬가지다.

회사만 나가면 다 될 것 같이 생각되지만 내일 당장 사표를 쓴다고 꿈이 생길 리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다.

그저 회사에 속해 있어서 혹은 하는 일이 바빠서라는 이유로 미루고 있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사소하고 위대한 일들을 준비하는 것을…


기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며, 운 좋게 알았다고 해도 방치하기 마련이다.

돈벌이와 일상에 치여있다는 변명으로.

사회생활이 만만치 않다는 걸 모를 리 없고 익숙해지면 이것도 일상 중 하나일 뿐이다.

사실 아직도 직장생활의 스트레스가 안 익숙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를 디폴트다 여기며 할 건 해야 한다. 오늘의 무게에 짓눌려 아무것도 안 할수록 불안한 생활이 길어진다.

어차피 기본 스트레스의 값을 알고 있으니 완전히 제거하기 힘든 그 압박 안에서 해야 할 미래의 일들을 준비할 수 있다.


오늘당장, 내일을 위한 점 같은 작은 시작이 없다면 10년 이리는 세월이 흘러가도 그대로일 뿐이다. 시간만 지난다고 이루어질 꿈같은 건 없다.

하루에 아주 작게 갈아 넣은 꿈의 방향이 매일의 일상이 누적되어야 10년, 20년 뒤에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다.


그렇기에 오늘 내가 가진 자리는 나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더 안전하게 미래를 시험하고 도전하게 하는 완충재로 활용할 수 있다.

안전지대를 벗어나면 자유롭지만 위험하다. 지금 우리는 로프를 매고 안전하게 새로운 목적지를 바라보며 올라가는 중이다.


로프는 안전일지 규제일지 규정하는 것은 나의 관점이나 태도일 뿐이다.

이 안전지대 속에서 마음껏 미래의 자유를 준비할 때 로프를 풀고 진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건 별다른 게 없다.

스트레스 가득한 회사에서 벗어나는 것과 진짜 원하는 일을 찾는 것.

그런데 그걸 혼동하고 있다. 

진짜 원하는 일을 한다고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 일에도 스트레스는 가득하다. 

왜냐하면 나는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직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예측불가능한 상황은 피할 수가 없다. 

내가 벗어나고 싶은 건 조직 생활의 스트레스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회사가 싫다고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이 일이 싫어서 새로운 일을 원하냐 물으면 그런 건 아니다.

조직 생활이 힘든 건지 이 일이 힘든 건지 구분을 정확히 해야 한다.


내가 회사를 나가고 싶은 건 지금 나를 누르는 스트레스지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은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다.

회사를 나가서도 내가 하고 싶고 지속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니 오늘 해야 할 공부와 준비해야 할 미션들이 그려진다. 

힘든 한 해를 보내며 마이너스만은 아니었다. 더욱 진지하게 앞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없는 일을 바란다면, 그건 조용히 눈감는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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