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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한량도 능력이다.

<대충 사는데 만족하는 이들을 부러워하며>

by 전인미D

알찬 하루에 대한 강박 없이 즐기기만 가능한 인생이 부럽다.

그것도 능력이다. 마냥 부담 없이 그 순간 즐길 수 있는 거.


명리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말씀하셨다.

평생 한량처럼 잘 노는 것도 능력이라고...


한량 짓을 하려면 마인드 컨트롤이 잘되어야 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질투심도 없으며 세상의 구박에도 꿋꿋이 오늘 자기가 선택한 취미생활과 물아일체 되는 삶.

지속적 한량 라이프는 무일푼으로도 창조적인 즐거움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자격지심이나 구김살 없이 오직 즐기는 마음이 베이스가 되어야 세상 기준을 잣대 삼지 않고 그냥 즐겁게 놀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 그런 사람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대충 살고 할 일을 미루거나 놀기만 한 인생이 행복하기 쉽지 않다.

나의 모든 삶은 오히려 세상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이었다.

심지어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짜릿한 만족감이 좋아서 기쁨을 뒷전으로 한채 목표만 보며 경주마처럼 달려왔다.


내일 당장 회사 때려치우고 놀라고 해도 나는 불안하다.

놀기만 해서 행복하지 못하는 인종으로 태어나버리고 말았다. 놀이와 휴식을 꿈꾸지만 정작 그것만 하루 종일 하라고 하면 그걸 못 즐길걸 나는 안다.

그래서 더욱 잘 쉬고 잘 놀고 불안감이 낮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는지도 모른다.


평소 내 모습은 오히려 어떤 일을 미루면서 불안해하고, 대충 살면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마음의 만족을 위해 몸을 너무 혹사한다. 일이 마음대로 안 풀리면 우울과 무력감이 느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시간이 늘 모자라고 효율적인 스케줄을 위해 모든 순간 머릿속을 바삐 돌린다.

멘탈의 안정을 위해 생활의 미션을 완수하기 위한 노력하고 노력이 지나쳐 한 번씩 우울해진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일이 지치고, 쉬고 싶다고 하지만 놀면서 만족을 채울 수는 없다. 안타깝지만 그런 기질을 타고났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모른다.

속도를 늦춰야 하나? 세상이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지치고 숨차도 달릴 뿐이다. 달리면서 호흡을 고르고 어느 순간 미션을 마쳐서 벗어나 있다. 그냥 속도로 맞짱 뜨니 삶이 더욱 피곤하기만 하다.


앞서 명리 선생님께서 말한, 노는 능력을 타고 난 사람은 별것 아닌 한량스러운 생활인데 본인은 상당히 만족스러워한다. 남들 볼 때는 세상 한심스럽고 불쌍한데 본인은 엄청 만족한다.

누군가의 시선도, 사회의 기준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자기만의 한량 세계에 빠져있다.

걱정과 고민이 없고 남들과 비교하거나 경쟁심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그들은 그저 작은 자기 생활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한량 라이프를 위해 바로 측근의 가족은 온갖 현실적인 고민을 도맡아 해야 한다.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누구는 희생을 할 수밖에 없다.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그 성격도 부럽지만, 현실적인 일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가족의 경제적 백업이 있기에 가능하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부모가 그런 역할이었다.

경제적인 세팅과 생활에 대한 기반은 나를 키우는 어른들의 영역이었다.

우리는 그저 즐겁고 건강한 어린이 시절을 보내기만 하면 됐다.

현실적인 고민에 따른 해결은 부모가 도맡으면 된다. 인생 미션은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물론 그 시절에 나도 소소하게 학업에 대한 고민이나 학교 생활에 대한 고민이 없진 않았지만 이건 생업에 관련된 무거운 책임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아무도 나의 백업이 되어주지 않는다.

내 인생의 고민과 미래에 대한 대비는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에 놀거나 쉬고 있어도 마냥 후련하지가 않다. 늘 예기치 못한 숙제가 있을 것 같고, 해결하지 못한 미션이 떨어질 거 같아 불안하다.


마치 할 일을 잊고 지금 놀고 있는 느낌. 해야 할 것을 하면서도 또 다른 미래를 위해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은 불안.


어른의 삶이란 좀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즐기기가 어렵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서도 아이처럼 오늘 하루를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면 감사하면 된다. 당신의 배우자가 그 숙제를 해내며 공동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테니.


아무 생각 없이 오늘을 한량이 라이프로 즐길 수 있다면 타고난 당신의 성정에 만족하며 기뻐하면 된다. 맘 편히 쉬거나 놀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어쩔 수 없이 놀고 있는 한량이지만 마음만은 바쁜 직장인들보다 더욱 지옥인 사람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일과 충실한 생활에서 보람을 찾아야 하는 사람이니 외면하지 말고 얼른 사회로 나가야 한다. 이들은 한량 라이프를 즐기는 것이 아니다. 도피하며 지옥 속에 있을 뿐.


놀기만 해서 행복한 사람은 따로 있다. 이건 노력이나 결심만으로 안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각자 자기의 인생을 책임지고 바쁘게 살면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남들 기준과 세상에 충족시키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며 방구석 한량을 선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말 특별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우리는 세상의 기준과 상관없이 살아서 행복하기가 어렵다.

피곤해도 그냥 세상의 속도 안에서 고군분투 사는 게 마음 편하다.

이게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 그만두고 딱 3개월만 한량으로 살아보면 된다.


막연히 놀아서 행복한 건 보통 정신적 경지로 이룰 수 없는 초월적 세계다.

남의 얘기 거나 상상 속 얘기라는 말임.


그래서 난 오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주말에 출근해서 열심히 갓생 살았다. 출근할 때는 너무 짜증이 나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일을 마치고 집에 오니 어찌나 기분이 가뿐한지.

숙제는 미리 해야 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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