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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요가 108배

<태양경배자세로 한 시간을 채우며 각자가 느끼는 요가>

by 전인미D

약 9년 전 요가를 처음 배울 때 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동작이 거의 없었다.

할 줄 아는 단 하나의 플로우가 태양 경배 자세였는데, 요가원에 가지 않는 날에 요가가 너무 하고 싶을 때는 집에서 태양경배 자세만 몇 차례 반복적으로 하곤 했다.

어느 날 요가원에서 무료 요가 수업을 진행하는 날이었다. 선생님께서 오늘은 태양경배 자세만 108번 하겠다고 말씀을 하시고 고요히 1시간 동안 하나의 플로우만 반복했다.


이 자세가 운동이 될까? 당시 나는 요가를 운동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초보였다.

그러나 1시간 후 내 몸은 땀으로 완전 젖게 되었다.

몇 번이나 했을까? 108회인지 정확하게 세어보지 않았지만 1시간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선생님이 동작을 모두 멈추고 사바아사나에 들어가게 했다. 108회의 의심을 머리에서 지우지 못한 채 잠시 기절한 뒤 깨어났다.

그 뒤로 나는 태양 경배 자세를 우습게 보지 않게 됐다.


그 어떤 요가 동작을 모른다고 해도 요가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태양경배자세(수리야 나마스카라=sun salutaion)를 알게 된다. 이 동작에 모든 요가의 기본 흐름이 들어있다. 저게 대체 운동인지 뭔지, 수련이 되나?라는 의심이 들 때 이 플로우를 1시간 반복해 보면 운동뿐만 아니라 각 자세의 연결성에 대해서도 한결 깊은 이해를 하게 된다.

처음에는 늘 하던 동작이니 가볍게 생각하며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다가 중간쯤 힘들어서 살짝 대충 하다가 끝날 때쯤 되면 갑자기 최선을 다하게 되는 이상한 흐름이다. 요가를 수년간 꾸준히 해왔지만 태양경배 108배는 꽤 힘이 든다.


요가를 어느 정도 수련한 사람에게 태양경배 자세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간단한 자세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로지 그 자세로만 모든 수련의 시간을 채울 때 이건 가볍게 흘려버릴 아사나가 전혀 아니다.

단 1시간만 투자해 보면 태양 경배자세가 얼마나 만만치 않은지 알게 된다.

사실 하나하나의 자세는 사소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련의 시간으로 채워갈 때 사소한 것은 무겁고 위대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뭐 사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다 그런 이치다. 별거 아닌 사소한 것들이 셀 수 없이 반복되며 가치를 생성하는 건 모든 세상사에 당연한 일이다.


최근 템플스테이에서 진짜 108배를 하게 되었다. 첫날 스님께서 108배는 1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일 배에 대략 6~7초가 걸린다. 108배는 12분 내외로 끝이 난다. 운동을 조금 했던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체험으로 해볼 만하다. 절 초보자들과 108배를 해도 15분이면 충분하다.

스님과 함께 했던 108배는 생각보다 가벼웠다.(스님 죄송합니다. 3000배는 해보고 말해야 하지만... 템플 체험자로써의 느낌.)


예전에 요가 선생님과 했던 태양경배 108배가 생각나 하나의 플로우가 진행되는 시간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태양경배 자세를 한번 진행하는데 약 35초가 소요된다. 이것을 108회 반복하면 정확하게 63분이 된다.

1시간의 태양경배는 그 횟수를 세지 않아도 대략 108회 정도가 된다.

조금 초과하면 어떠랴? 조금 모자라면 어떠랴?


오늘 아침 새로 온 템플스테이 체험자들과 108배를 하게 됐다.

108 염주를 하나씩 쥐고 각자의 속도대로 절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선택한 염주는 알이 너무 작다 보니 일 배에 한 개씩 넘기기가 쉽지가 않았다. 초반에는 2개씩 넘어가기도 하고 한 칸도 넘기지 못한 채 다음 절을 하기도 했다. 108회가 정확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모자란 것보다 넘치는 게 낫겠지라는 마음으로 염주가 다 돌아갔음에도 몇 회 더 절을 했다. 절의 횟수가 다르겠지만 넘치면 어떠랴?


요가원에서 했던 108배 태양경배 60분 수련도, 어떤 사람은 108회에 훨씬 미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108회가 초과되었을 수도 있다.

각자의 시간에서 자기의 '썬살루테이션'을 만들어냈던 것으로 스스로의 의미를 찾으면 된다.

수치의 완벽함은 사회생활의 문제다.

수련에서는 숫자가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시간에서 가치를 느낄 수 있으면 된다.

넘치든 모자라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태양경배 108회를 마치고 나면, 103회를 했건 127회를 했건 상관없이 모두가 뿌듯한 마음으로 요가매트에 누워 요가를 사랑한다는 느낌으로 사바아사나에 빠져들게 된다.


그날 우리는 모두 60분간 108배 태양경배수련을 했다는 경험을 만들었다.

각자가 어떤 것을 느끼고 알게 된 건지는 한 두 동작이 모자라다고 해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단 1개, 단 1센티로 많은 것들에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하고, 책임을 지고 수습해야 할 괴로운 상황이 많다. 그러나 요가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수치로 기록하여 스스로 재단할 필요가 없다.


수련 막바지 요가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지금 하고 있던 플로우까지만 각자 마무리 하시고 자리에 모두 누워주세요.

동작이 끝나는 시간마저도 조금씩 어긋난다. 횟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모두가 기다려 주고 다 같이 그 시간을 마무리하며 사바아사나에 함께 들어가게 된다.


오늘 아침에 108배도 동시에 끝나지 않았다.

먼저 끝낸 나는 방석에 조용히 앉아 나머지 사람들이 끝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같이 몇 분 간 앉아 명상을 하며 그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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