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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Nov 14. 2023

황구야, 제발 도망가지 마.

회피형 존재, 믿고 걸러야 할까.

 고등학생 때 선생님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논밭 사이에 있는 대학 다니려 그러니?"

라고 한 적이 있다. 공부하지 않는다면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 깊숙이 시골에 위치한, 듣도 보도 못한 대학에 갈 거란 선생님의 농담 섞인 경고였다. 그 말을 정말 농담으로만 들은 탓일까?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다니는 전문 대학교 앞에는 넓은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여름밤만 되면 밤공기에 취한 학생들보다 개구리가 더 시끄러운 동네였으니 어떤 곳이었는지 상상이 갈거라 생각한다. 그런 시골 동네라 그런지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물게 개를 풀어놓고 키우는 집이 있었다. 사실 어느 집에서 키우는지도 몰랐다. 목줄이 새것인 걸 봐서 주인이 있을 거라 추측만 했을 뿐이었다. 세상에, 묶어두지않다니! 무책임하군요!라고 주인을 탓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누군지도 모를 무책임한 사람 덕분에 논밭 말고 아무것도 없는 우리 학교는 귀여운 마스코트를 획득할 수 있었으니까.

우리 학교의 마스코트는 한 쌍이었다. 어미 한 마리와 그와 판박이인 새끼 하나. 사람을 무척이나 따르는 아이들이었다. 누런 털 빛깔을 뽐내며 특유의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는 걸 보면 쓰다듬지 않고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모두들 이 아이들을 이뻐해서 그런지 학교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한 번씩 수업이 끝나고 학교 건물 안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애들을 보면 사람들이

"개팔자가 상팔자여."

하고 쓰다듬고 가곤 했다.

주인 있는 개를 함부로 이름 지어주기도 뭣해서인지 사람들은 '강아지', 혹은 '애기들'이라고 지칭했다만 난 남몰래 황구라는 이름을 얘들에게 지어줬다. 누군가 색깔이 누러니까 백구 대신 황구로 지은 거야? 라며 내 미적 감각에 의문을 제기할지라도 이 만큼 기막힌 게 없다고 생각했다. 신나게 꼬리를 흔드는 새끼를 보고

"우리 퐝구, 신났네~."

라며 '황구'를 '퐝구'라고 조금 발랄하게 부르곤 했다. 이 발음은 '방귀'와도 비슷하다. 똥이나 방귀 얘기 하나로 까르륵 거리는 아이들 특유의 명랑함이 떠오르지 않나? 똥방구리 황구. 이만큼 어울리는 이름이 없다 싶었다.


발랄한 황구와 1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는 군대에 갔다. 전역하고 복학하려 돌아오니 그제야 황구가 생각났다. 그동안 잘 지냈을까? 아직 볼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은근히 황구와의 재회를 기대했다. 그리고 어느 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길가에 서있는 짜리 몽땅한 다리를 가진 누런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좀 크긴 했지만 틀림없는 황구였다.

"오, 퐝구~."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 친근하게 부르며 다가갔다만 황구의 반응은 그렇지 못했다. 가까이 다가서자 으르렁 거리며 도망치기 시작한 거다. 사실 알아보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만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살짝 충격이었다. 먹이로 살살 달래 보려 해도 도무지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항상 같이 다니던 어미가 없다는 것, 더 이상 학교의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않는다는 것에서 황구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나를 멀리하는 황구가 서운하기도, 안타깝기도 했지만 졸업을 앞두고 취업의 문턱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레 황구를 잊게 되었다. 뜬금없이 황구를 떠올리게 된 건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라는 책을 읽다가였다.



 혹시 회피형 인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회피형 인간의 특징을 몇 가지 간단히 나열해 보자면

1.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2. 책임이나 속박을 싫어한다.

3. 상처받는 일에 예민해한다.

4. 실패를 특히 두려워한다.

5.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꺼려한다.

6. 속마음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등이 있다. 그들은 보통 사교적이지 못하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타인을 상처 입히기도 하는데 연인일 경우 종종 잠수 이별 따위를 한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유튜브에서 흔히 '믿고 걸러야 하는 회피형 인간'이란 제목으로 영상이 올라오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일거다. 그런 영상을 만드는 것도, 거기에 공감하는 것도 이해는 하겠다만 마음 한 구석 불편한 기운을 지우지 못했다. 그래서 회피형 인간에 대해 적혀있다고 하는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라는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는 마음 한 구석 불편한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나를 피해 도망가는 황구가 떠올라서였다.


회피형 인간은 상처 입은 개와 같다. (개 같다는 표현이 거슬린다면 존재라는 단어로 대체해도 좋을 거다.) 인간에게 상처 입은 개는 더 이상 인간을 신뢰하지 못한다. 두려워하고, 도망치려 하고 때로 이를 드러내어 가까이 오지 못하게도 한다. 그렇게 인간을 회피하려는 개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드는가? 억지로 그런 개를 보듬어야 한다는 말을 유도하려는 질문은 아니다. 그런 개는 걸러버리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개를 만나겠다는 생각도 이해한다.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하는 쉽지 않은 일을 자처할 필요는 없을 거다. 취업에 쫓겨 황구를 잊었던 것도 비슷한 행위이니 적어도 나는 그런 생각을 비판하지만은 못하겠다. 그러나 황구를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턱 걸린다. 역시 손 내밀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회피형 인간은 저마다 한 개쯤 큰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건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도 남아있다고 한다. 만약 사람을 피하려고 하는 성향이 원래 그러한 것이 아닌 어떠한 상처에서 비롯된 거라면 그냥 방치해선 안 되는 것 아닐까. 물론, 치료해 주겠다고 무리하게 다가서선 안될 일이다. 상처 입은 존재는 억지로 다가서려 하면 더 반발한다. 때문에 너를 상처 입힐 존재가 아니란 걸 각인시킬 수 있도록 천천히, 편안하게 다가서는 자세가 필요할 거다.


만약 자신이 회피형 인간 같다면, 조금 외롭긴 하나 인간관계를 최대한 피하고 사는 게 편하다고 느낄지라도 사람에게서 도망치지 않았으면 한다. 도망가지 말란 말은 당신을 책망하기보단 당신과 교감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서 나온 말이다. 내가 황구에게 도망치지 말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회피형 인간은 믿고 걸러야 한다는 말에 또 다른 상처받지 않았으면 한다. 자꾸 개로 예시를 들어 미안하다만 예전에 새벽 시간 주차장에서 떠돌이개 무리를 만난 적이 있다. 5마리나 되는 그 무리는 주차장에서 나를 마주하자마자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겁먹었던 나는 오히려 큰 소리로 개 짖는 소리를 내며 녀석들에게 달려들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그 떠돌이 개들이 나를 피해 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개들이 목줄 하나씩 한 걸 보아 주인에게서 도망쳤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아마 사정은 모르겠지만 사람을 경계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개들을 보듬어줘야 마땅할 테지만 섣불리 다가서기엔 나도 무서웠다. 우린 서로 상처 입을까 두려웠던 거다. 상처가 없을지라도 상처 입는 게 두렵다. 믿고 거른다는 말 따위 또한 그런 두려움에서 나오는 으르렁 소리와 같은 것일 테다. 그러니 회피형 인간을 믿고 거른다는 인간들을 새벽녘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서 왈왈거리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듯 좀 짠하게 바라봐도 괜찮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를 상처 입히지 않을 존재로서 다가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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