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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Jun 17. 2021

치료와 치사 사이

“인간의 몸을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지나치게 세분화해서 들여다보는 분위기와 테크놀로지나 약물에만 의존하는 풍토 때문에 현대 의학은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 - 조한경의 『환자 혁명』에서     


아버지 아흔, 어머니 여든 다섯. 남은 인생 자식들에게 추억 한 장 더 남기기 위해서일까. 서둘러 길 떠날 채비라도 하시는 걸까. 두 분은 요즘 마음이 분주한 모습이다. 자식들 다 키워놓고 행여 그 자식들 성가실까봐 모든 걸 두 분이 알아서 씩씩하게 잘해오셨다. 한데 최근 들어 병원 출입이 잦아지면서 우리 자식들의 손길과 관심을 많이 필요로 하신다. 슬프지만 감사한 일이다. 효도할 시간 주셔서. 그날도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지난 5월 8일, 어버이 날이었다. 가족이 모두 모여 노부모님과 화목한 시간을 보내야 마땅한 그날. 우리 형제자매는 각각 임무를 나누어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응급실로 가고, 오빠들은 응급실로, 입원실로 달려오고, 언니는 집에 혼자 계신 어머니를 돌보러 가느라 모두가 분주했다. 아버지가 하혈을 하신 것이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필 그때 평소 다니는 병원이 전산 오류 때문에 기초 검사가 불가능했다. 다른 병원 응급실로 가야 했다. 


응급실에서 피검사, 복부 CT촬영, 직장내시경 등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아버지는 입원을 하셨다. 다행히 출혈량이 많지 않아 수혈까진 필요 없었다. 지혈을 위해 복용하던 약과 음식을 일체 끊고 3일 뒤에 위장, 대장 내시경 검사를 했다. 위도 깨끗하고 대장에 용종 하나 없으며 출혈의 직접적인 원인은 보이지 않았다. 소화기내과 전문의는 직장 끝부분에 염증이 있고 내치질(항문 조임근의 안쪽 점막층 밑에 생기는 치핵)이 있는데, 내치질 혈관이 파열되어 출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했다. 치질약과 소염제와 소화기약 몇 가지를 처방받아 아버지는 퇴원하셨다.


퇴원 후, 평소 다니는 병원 심장질환 주치의 정기 진료에서 병인과 병명을 알게 되었다. 지병인 심장질환(대동맥판 협착증)이 하혈의 원인이었다. 병명은 하이데 신드롬(Heyde syndrome)으로 하이데(Heyde) 박사가 밝혀내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한다. 심장 대동맥판 협착증이 있는 경우 혈액이 판막을 통과할 때 좁아진 판막 탓에 피가 조금씩 새는 경우가 있는데 그 새어나온 피의 적혈구가 쪼개지면서 위장 출혈을 일으키는 인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 위장 출혈이 곧 하혈로 나타난 것이고, 미세한 위장 출혈은 내시경으로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아버지가 내시경을 한 시점에서는 이미 지혈이 된 상태라 소화기내과에선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심혈관센터 주치의는 설명했다. 


소화기내과 담당의는 증상에 해당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보이지 않는데도, 순환기내과 협진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지 못했다. 환자가 심장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보호자인 내가 정확한 병명까지 언급하며 여러 번 말했는데도 말이다. 자신이 전공한 분야의 지식만으로 병인과 병명을 찾으려 했고 유사 증상만으로 원인을 추측하였다. 혈전 예방약인 아스피린을 중단하고 치질약과 소화기약을 처방하며 대증 치료하였다. 


심혈관센터에서의 치료도 아스피린 중단이 제일 먼저이긴 했다. 하지만 소화기내과에서 해당 진료과를 빠르게 연결시켜 주었다면, 안 그래도 복용하는 약이 많은 아버지가 불필요한 치질약과 소화기약은 굳이 안 드셔도 됐을 것이다. 질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해당 전문의가 아니면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환자의 증상을 살펴봤을 때, 어느 진료과에서 진단하고 치료해야 하는지 정도는 판단할 만한 능력과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지 않을까.


비교적 흔한 어지럼증, 두통, 구토증상만 해도 이비인후과 질환에서도, 뇌 질환에서도, 소화기 질환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 아닌가. 해당 진료과를 환자가 제 발로 정확하게 찾아갈 확률이 얼마나 될까. 보호자가 있어도 쉽지 않은데, 보호자가 없는 노인환자라면 더욱 어려울 것이다. 환자가 어느 병원, 어느 진료과를 찾아가든 그 질병에 해당하는 전문 진료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 의료진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아버지가 척추 골절로 입원 치료 중 이상 행동을 보이셨다. 포괄간호병동이라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는데 간호사도 척추센터 주치의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보호자인 내가 혹시 약물 때문은 아닌지 물었다. ‘무통주사’를 맞으면서부터 증상이 나타난 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간호사도 주치의도 그럴 일은 없다고 했다. 


무통주사의 정확한 명칭은 ‘자가통증조절법Pantient controlled analgesia’ 이며 마약성 진통제, 보조진통제, 항구토제를 섞어서 사용한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버지의 이상 증상이 점점 심해져 신경과 협진을 요청했다. 신경과에서 아버지를 문진한 후 각종 검사와 약물 처방이 내려졌다. 


신경과 의사는 아버지가 인지 능력과 뇌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다며 가족들이 그걸 몰랐냐고 물었다. 입원 직전까지 노인일자리에서 팀장 역할 맡아서 사람 관리, 서류 관리 빈틈없이 하셨다고 말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지금 치료 중인 약물과 무통주사가 원인일 수도 있지 않나, 무통주사를 맞으며 이상 증상이 나타난 걸로 보인다고 나는 거듭 말했다. 신경과 의사 역시 무통주사가 원인이면 무통주사를 빼면 증상도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다른 처방 약물 때문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아예 검토하지 않았다. 치매 가능성만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다.


평소 드시던 혈압약, 당뇨약, 심장약에 척추센터 약, 신경과 약까지 한보따리 받아 들고 한 달여 만에 아버지는 퇴원하셨다. 퇴원 후 이상 행동은 점점 더 심해졌다. 나는 신경과에 갔다. 처방해 주신 약을 드시고 그동안 안 하던 행동까지 보인다 하니 신경과 약을 끊어보라 한다. 차도가 없었다. 


문득 ‘섬망증상’이란 것이 떠올랐다. 인터넷에서 치매와 섬망을 비교하며 정보를 찾았다. 섬망 증상은 ‘뇌의 전반적인 기능 장애로 주의력, 의식수준, 인지 기능 저하가 특징이며 그 외 환시와 같은 지각 장애, 비정상적인 정신운동 활성, 수면 주기의 문제가 동반되며 약물 중독 등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었다. 대부분의 암환자들이 죽기 직전에 나타나는 마지막 증상이 섬망이다. 그것은 암 때문이 아니라 약물치료의 결과였다. 


다음 날부터 내 임의로 마약성 진통제를 빼고 약을 드렸다. 아버지의 이상 행동은 강도와 횟수가 줄어들었다. 신경과에 다시 가서 ‘우리 아버지 섬망증상 같다’고 얘기했다. 나는 섬망증을 확신했지만 아버지를 환자로 맡긴 보호자 입장에서 무례하게 보일까봐 그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환자는 늘 약자일 수밖에 없으니까. 


신경과 의사는 섬망증상은 원인만 제거해 주면 된다면서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냐 내게 물었다. 척추센터에서 처방한 마약성 진통제가 원인 아니겠냐고 내가 되물었다. 그럼 척추센터 가서 마약성 진통제를 빼 달라 하고 상태를 지켜보란다. 환자 보호자가 어찌 의사에게 약을 빼라 마라 하느냐 물으니 본인은 ‘같은 의사 입장이라 말하기 더 어렵다’고 한다. 결국 마약성 진통제를 다 끊고 한 달여 만에 아버지는 온전한 정신을 되찾으셨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섬망증상이 있었던 기간은 통째로 아버지 기억에서 사라졌다.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선 위중한 병일수록 의사 말을 절대적으로 따르게 된다. 퇴원할 때 처방받은 그 많은 약들을 의심없이 착실히 다 복용했다면 아버진 집에서 돌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을 것이고 그 다음 순서는 요양 병원이었으라. 요양 병원에 들어갔다가 호전되어 퇴원했다는 말을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어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종종 뉴스로 접했다. 어쩌면 아주 많은 노인 환자들이 치료 과정에서 더 큰 병을 얻어 그와 같은 수순을 밟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일부 의사들은 노인 환자의 질병을 고쳐 건강을 되찾아 주겠다는 마음 같은 건 아예 없어 보인다. 대신 약을 평생 드셔야 한다며 수가를 올려 줄 ‘평생고객’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아픈 데를 말만 하면 주저 없이 각종 검사에 주사와 약 처방을 추가한다. 


아버지도 입원 중에 하루가 멀다 하고 피를 뽑고, 수시로 엑스레이를 찍었다. 또 아버지가 ‘허리가 아프다, 아프다’ 보채면 의사는 무통주사와 마약성 진통제(내복약)와 마약성 패치를 한꺼번에 처방했다. 간호사는 아파서 정신없는 환자한테 ‘무통주사 놓아 드릴테니 서명하시라’며 서명을 받았고, 보호자인 나에게는 ‘무통주사 처방 나와서 환자분이 서명하셨으니 주사 놓아드리겠다’고 전화로 보고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무통주사는 의사 처방만으로 그냥 놔주지 못할 만큼 부작용이 심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의향서에 환자의 서명을 받고 보호자에게 보고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그 절차는 다름 아닌 병원관계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의료 사고에 대비한 것이었다.


돌이켜 생각하기 싫지만 나는 아버지의 사례를 통해 위험천만한 과잉진료를 생생하게 체험했다. 아버지는 치료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치사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글쓴이

새날.

매일매일을 새날이라 여기며 삽니다. 


* 이 글은 글맛공방의 '에세이쓰기'를 수강하신 분이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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