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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Oct 13. 2021

엄마의 시월

엄마는 오남매 중 세 자식을 시월에 낳았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시월이 오면 ‘삭신이 쑤셔 그만 폭삭 주저앉고만 싶다’ 하신다. 20여 년 전 어느 시월에는 60회 생신상을 조촐히 받으며 기뻐하셨다. 온가족이 모이니 모두 열여덟 명이나 된다면서 막내 딸내미만 짝지어 주면 더는 원이 없다고 하셨다. 한데 회갑상 물리기 바쁘게 시월에 태어난 큰딸이 앞서가는 일을 당하고 말았다. 그 이후 엄마는 두 번의 참척(慘慽)을 더 겪으셨고 지금은 여든 중반의 연세가 되었다. 


6년 전엔 큰사위를, 3년 전엔 맏며느리를 앞세우고 엄마는 점점 총기를 잃어갔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온 생을 바친 엄마는 자식들을 다 출가시킨 뒤에도 각 가정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세라 항상 염려가 많으셨다. 늘 수심이 가득하고 이마에 내 천(川)자가 드리워 있었다. 그런 엄마가 언제부터인가 비교적 해맑아지셨다. 자식들 일이라면 생기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던 엄마가 눈앞에 닥친 걱정거리도 가끔은 못 알아듣고 밝게 대화를 하신다. 모든 근심 걱정 내려놓고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기로 작정하신 것 같다.  


평생을 두고 당신 몸 한번 살뜰히 돌보지 않고 살아온 엄마는 또래 노인들 사이에서 백내장 수술이 유행처럼 번질 때도 ‘늙으면 다 그렇다. 보이는 것만 보고 살라는 뜻이다. 거스를 필요 뭐 있냐’고 하시며 안과 진료조차 극구 사양하셨다. 그러다 시야가 급격히 흐려져 집 안에서 문틀에 이마를 찧는 사고를 당하셨다. 그러고 나서는 엄마도 더는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백내장 수술로 시력을 되찾은 엄마는 신세계를 만난 듯 좋아하셨다. 

 텔레비전 자막이 선명하게 보인다며 볼륨을 크게 높여 놓고 자막을 큰 소리로 읽으셨다. 엄마를 가만히 지켜보니 소리는 듣지도 않고 자막을 읽으며 내용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마주앉아 대화를 하면서도 말귀를 못 알아듣고 되묻는 경우가 잦아졌다. 난청이었다. 청력이 약해지니 사건이나 상황을 받아들이는 이해력이 떨어지고 덩달아 판단력도 떨어지는 듯했다. 식구들이 불편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검사만이라도 해보자며 이비인후과에 모시고 갔다. 당연히 보청기가 있으면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다. 엄마는 또 한 번 펄쩍 뛰셨다. ‘늙으면 다 그런 건데 뭐하러 기백만 원씩 들여가며 그런 짓을 하냐’며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때까지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 없다’는 것이다. 처음 몇 번은 엄마를 설득했다. 그러나 결국 엄마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서서히 나빠진 청력에 엄마는 이미 적응이 되어 큰 불편을 모르는데, 오히려 우리가 더 불편해서 보청기를 권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귀가 밝아져 세상 온갖 소리가 들려오면 엄마는 그게 더 혼란스럽고 고통일지도 모른다. 잘 못 알아들으면 여러 번 반복하여 말씀해 드리면 되고, 이해가 어려우면 이해한 만큼만 알고 계셔도 되는 게 아닐까. 말귀도 못 알아듣고 철도 없는 어린 자식들을 엄마는 반복해서 알려주고 그래도 모르면 기다려 주면서 사랑과 인내로 기르셨다.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그렇게 돌봐드리면 되는 일이다. 아기로 태어나 성장하고 늙고 다시 아이처럼 돌아가는 것이 삶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십 수 년 전부터 관절이 아파 고생하던 엄마는 제대로 된 진료와 치료를 받기보다 임시라도 일상생활을 하게만 해주면 용하다 믿고 병원을 찾아 다니셨다. 자식들이 걱정할까봐 아프다는 말도 않고 혼자서 병원에 다니셨고 소위 ‘뼈주사(스테로이드 주사)’라는 것을 주기적으로 맞았다. 맞고 나면 마법처럼 몇 개월을 거뜬히 살아내니 중독이 될 만도 했고 무분별한 의사들은 부작용에 대한 언급 한 번 해주지 않고 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까지 처방해 주곤 했다. 그 결과 엄마는 부신피질 호르몬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체내에서 스테로이드가 형성되지 않아 스테로이드를 공급해 주지 않으면 온몸의 통증을 호소하는 지경이 되었다. 쿠싱증후군이다. 엄마는 쿠싱증후군의 일반적 증상인 비만이나 당뇨병은 없고 전신의 통증과 무기력을 호소하여 원인과 병명을 찾기 힘든 경우였다. 


대부분의 노인들처럼 엄마도 고혈압과 고지혈증 약을 드신 지 이미 오래됐고, 기관지가 좋지 않아 호흡기 약도 상시 복용하고 흡입해야 한다. 3년 전부터는 내분비내과에서 최소량의 스테로이드까지 처방받아 드셔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평생 힘들고 바쁘게 살면서도 ‘이만하면 건강한 거다, 아무 걱정 마라’ 하시던 엄마가 보호자 없이는 외출은 물론이고 병원에도 못 가는 병든 노구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는 당신의 건강과 신변을 걱정하는 말 한번 하신 적 없고 늘 괜찮다고만 한다. 요즘은 감염병 유행 때문에 면역력이 낮은 노인들의 대리진료가 수월해졌다. 그래서 보호자인 내가 혼자 병원에 가서 평상시 혈압을 기록한 수첩과 환자 상태를 전하고 처방을 받곤 한다. 그래도 주기적으로 환자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검사가 필요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야 한다. 검사 한번 하려면 전날 밤부터 금식을 하고 여러 차례의 채혈과 각종 촬영을 해야 해서 몹시 힘들다. 한나절이나 걸려 검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엄마는 몸살이 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도 엄마는 내 걱정뿐이다. ‘아침은 먹고 온 거냐, 저기 좀 앉아라, 휠체어 밀고 다니느라 니가 몸살이 나겠구나, 난 가만히 앉아 있으니 하나도 안 힘들다’ 하신다. 며칠 전에도 그렇게 한바탕 엄마랑 나는 병원에 다녀왔고 그날 이후 엄마도 나도 가벼운 몸살을 앓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엄마의 시월은 왔다. 이번 시월에 엄마는 드시는 약이 한 가지 더 늘었다. 신경과 약이 추가되었다. 굳이 현대의학이 명명한 병명을 말하자면 만발성(노년기) 알츠하이머병이다. 엄마의 지론대로라면 ‘늙으면 다 그런 것’이다. 호들갑스럽게 수선 떨 일도 아닌 것이다. 엄마는 그냥 많은 것을 기억에서 지우고 계실 뿐 자식 챙기는 마음도 여전하고, 온순하고 인내하는 성품도 그대로다.


기억을 잡아먹는 병마 앞에서도 부모는 놓을 수 없는 기억이 있나 보다. 어렵던 시절 맏이로 태어나 동생들만큼 먹이지도 못하고 가르치지 못해 마음에 걸리던 자식이었다. 그 딸이 끝내 아픈 손가락이 되어 가슴에 묻혀버린 기억은 세월에 바래지지도 않고 엄마 안에 자리하고 있다. 반면 당장 오늘 드신 아침, 점심, 저녁식사 메뉴를 기억 못하는 것은 이제 다반사가 되었다. 아직은 손수 식사를 차려 아버지와 엄마, 두 분의 간소한 끼니 해결은 하시지만 복잡한 음식 조리법은 잊은 지 오래다. 손주들 이름과 누가 누구 자녀인지도 곧잘 헷갈리신다. 


먹고 자고 씻고 하는 기본 생활 방법들도 언제 엄마의 기억에서 지워질지 모르겠다. 그때를 대비해 곁에서 잘 살피며 엄마의 위생과 안전과 건강 유지를 위해 도와드리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이다. 그밖에 다른 무엇을 해드릴 도리가 없다. 다만 지금처럼 계속 나를 알아봐주고 나의 이름을 불러주길, 그런 날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새로 온 엄마의 시월도, 엄마의 남은 기억들도 두고두고 더디게만 흘러가면 좋겠다.



글쓴이

새날.

매일매일을 새날이라 여기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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