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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Dec 15. 2022

마을과 일상에서 기후위기를 넘어서다


도시, 그것도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에서 살면서 주식인 쌀을 직접 자급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될까? 한 1,000명쯤 될까? 내가 사는 대야미 마을은 서울에서 전철로 30분가량 걸리는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농사를 짓는 마을 이모’로 지내고 있다. 수도권이지만 수리산에 둘러싸여 있는 너른 밭과 다랑이논에서 생태적 농사를 짓고 있다. 그를 통해 다양한 동식물과 공존하고 먹을거리를 자급하고 마을 사람들과 재미난 거리들을 함께 누리고 있다.


매해 농사를 지어갈수록 어려워지는 걸 느낀다. 올해는 유독 더 심했던 것 같다. 지난겨울부터 봄까지 극심한 봄 가뭄에 논바닥이 쩍쩍 갈라졌고, 갑자기 내린 폭우에 논둑이 무너지기도 했다.


빗물에 개울이 넘쳐 논에 각종 부산물들이 휩쓸려 들어왔다. 절망해 있었는데, 소식을 들은 이웃이 마을 단톡방에 문자를 보냈다. “수해를 입은 곳곳에 도움의 손길을 나눕시다.” 함께 하겠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이웃사람들이 하나둘 논 복구하는 데 와 주었다.


지구 곳곳에서 이상기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산불이 나고, 갑작스런 폭우로 집과 논밭이 잠기기도 한다. 이 위기를 우리는 넘어설 수 있을까? 넘어선다면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도시 한 가운데 살고 있지만 생태적인 일상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나와 대야미 마을 이웃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내가 짓고 있는 논밭은 사시사철 다양한 색깔로 변화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가지고 있다. 개울에는 1급수가 흘러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가재와 다양한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대야미 마을에는 계단 모양의 다랑이 논이 있다. 여기에 대야미 마을 이웃과 여러 단체가 논농사를 짓는다. 관정이나 펌프로 물을 끌어오지 않고, 높이차를 이용해 호스로 개울물을 받아 기른다.


나는 농사를 지을 때 기계를 쓰지 않는다. 삽, 괭이, 호미, 낫 등 몸을 직접 쓰는 도구로 짓는다. 넓은 범위의 농사를 지으려면 많은 에너지가 드는 데, 특히 석유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러나 몸으로 쓰는 도구는 내 몸의 에너지만을 사용한다.


나는 풀을 기르는 농사를 짓는다. 풀은 내게 좋은 먹을거리와 약이 되기도 하고, 잘 이용한다면 이상기후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작물에 오는 해충이 풀로 몰려가기도 한다. 다른 이들은 풀을 억제하기 위해 비닐을 치지만, 나는 오히려 풀과 작물의 공생을 위해 비닐을 치지 않는다.


논밭에서 나는 부산물과 집에서 남은 음식부산물 등을 이용해 퇴비도 직접 만든다. 들깨를 기름 짜고 남은 깻묵으로 깻묵액비를 만들거나 화장실에서 오줌을 받아와 오줌 액비를 만들어 쓴다.


한 작물을 많이 심지 않고 다양한 작물을 섞어 심는다. 옥수수와 콩, 호박을 같이 심으면 옥수수는 지지대가 되어주고, 호박은 그늘을 만들어 풀이 나지 않게 하고 콩은 옥수수와 호박에 영양분을 준다. 감자와 강낭콩을 같이 심으면 감자 잎을 좋아하는 벌레를 강낭콩이 쫓아주기도 한다.


휴식 공간은 재활용 천막을 이용해 틀을 만들었다. 작물이 타고 오르는 지지대는 산 곳곳에 널린 나뭇가지 등으로 만든다. 창고와 뒷간은 마을 곳곳에 버려진 폐파레트를 주워와 만들었다. 내가 짓는 논밭에서는 버려지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하나하나가 쓰임새가 있다.


내 논밭에는 전기와 수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논밭에 물을 주려면 빗물과 개울물을 받아서 써야한다. 그러기 위해 둠벙을 만들어놓아 허투루 물이 흘러내려가지 않게 해 모아두고, 곳곳에는 빗물받이 통을 두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지대가 높은 곳에 호스를 설치해 큰 물통에 미리 받아놓았다가 쓰기도 한다.


이렇게 생태적으로 농사를 지은 덕일까, 내 논밭에는 멸종위기종생물이 산다. 맹꽁이, 도롱뇽, 황조롱이, 참매, 그리고 반딧불이까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생물이 공존한다.


농사짓는 곳의 풍경은 시골 같지만, 우리집 주변은 여느 도시의 빌라촌과 다를 바 없다. 빌라들은 창문으로 이웃집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생태적 일상을 누리고 싶어 옥상텃밭을 지었다. 옥상에서는 다양한 꽃, 작물이 자라고 있다. 심지어 옥상의 상자 안에는 벼도 자란다.


빗물통에 모인 빗물은 옥상텃밭에 물을 주거나 옥상을 청소하거나, 화장실 변기 물로 쓰인다. 태양광 패널도 설치해 냉장고 한 대 돌릴 만큼의 전기를 생산해 쓰고 있다. 직접 담근 된장, 간장, 고추장이 들어있는 장독대도 있다.


집 거실에는 각종 씨앗들이 진열되어있다. 씨앗은 구매하지 않고 심었던 작물에서 채종했다가 다음 해에 이어 심는다. 처음 농사지을 때만해도 채종한 씨앗이 15종이었는데 지금은 약 90여 가지 정도 된다.


밥은 한 해 농사지은 쌀과 20여 가지 잡곡과 콩을 섞어 지어먹는다. 꼭꼭 씹으면 반찬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고소하고 다양한 맛이 난다. 작물이 자라는 7월 초 전까지는 산과 밭에서 나는 풀과 나무 열매 등으로 반찬을 만들어 먹고, 이후부터는 수확한 작물로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


지난겨울에는 마을 언니들 몇 명과 함께 모여 목화솜 조끼를 만들었다. 밭에서 직접 길러 거둔 목화로 말이다. 농사 지어 얻은 솜이 조끼를 만들고도 많이 남아 잘 보관해두었다. 한 두 해 더 모으면 이불까지는 어려워도 큰 베개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농사를 지어 먹고 남은 것은 이웃과 나누거나 판매를 한다. 대야미 마을에서는 한 해 두 번, 늦봄과 늦가을에, ‘소박한 장터’라는 이름으로 마을 장터를 연다. 저마다 지은 농산물이나 직접 손으로 만든 수공예품, 그리고 맛있는 먹거리를 판매한다.


소박한 장터는 마을 사람들이 즐기는 자리이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모여 합창을 하기도 하고, 직접 작곡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마을 밴드도 있어서 멋진 공연을 선보이기도 한다. 한 해 두 번 열리는 소박한 장터는 함께 나누고 즐기는 장이다.


대야미 마을에는 ‘사람뜰’이라는 마을 공유공간이 있다. 마을 어르신이 자기 땅에 지어진 조립식 주택을 마을 이웃에게 내어주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곳에서 함께 모여 밥을 지어먹기도 하고, 강의를 듣거나 공부하고, 생일을 축하해주기도 하고, 그저 와서 쉬기도 한다. 사람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일 이웃들이 다양한 모임을 이루고 활동을 한다.


사람뜰 마당에는 빵 굽는 화덕과 가마솥 화덕을 만들었다. 천연발효빵을 잘 만드는 언니들 모임이 있는데, 사람들을 모아 수업을 하기도 하고, 마을 잔치가 열리면 피자를 구워 나눠먹기도 한다. 가마솥으로는 밥을 짓기도 하고, 철에 따라 보양식을 끓여먹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사람뜰 운영에 필요한 물품을 후원하기도 한다. 전기세나 냉난방비 등 필요한 경비는 회비로 충당한다. 마을 모임활동에 서로 이용하는 날이 겹치지 않게 예약사항을 확인한다. 각 마을 소모임에서 청소역할을 맡아 정기적으로 대청소를 한다. 사람뜰 운영은 누가 주도하거나 강요하는 일 없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대야미 마을 이웃들은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다. 2020년 유독 여름장마가 길었다. 감자는 땅에 물이 많아지면 벌레가 많이 생기고 썩는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식이 있지만 그 안에 감자를 다 수확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울력을 제안해서 감자 캐는 것을 도와주었다. 덕분에 감자가 썩기 전에 모두 캘 수 있었다.


2021년에는 생강 농사가 잘 되었다. 먹고 나누고 판매하고도 많이 남아 돌 만큼. 또 마침 그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이웃이 많은 양의 생강을 구매해주었다. 그러고도 남은 것은 이웃들과 함께 생강청을 만들어 곳곳에 선물로 나누어주었다.


올해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마을 곳곳이 수해를 입었다. 지하에 사는 이웃의 집에는 물이 들어찼고, 논밭은 토사로 뒤덮였다. 저마다 삶의 현장이 휩쓸리고 무너져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 때에도 대야미 마을 이웃은 함께 힘을 모으고 서로를 응원했다. 서로 도와 집을 청소하고 보수했다. 논둑에는 또 내릴 비를 대비해 모래주머니를 쌓아 둑을 높였다.


가을에는 사람뜰에 함께 모여 ‘소소한 잔치’를 열었다. 가마솥 밥을 짓고, 화덕 피자를 굽고 저마다 가져온 음료를 나누어 마셨다. 대야미 마을 어린이들이 합창을 하고, 싱어송라이터가 노래를 부르고, 마을 삼촌이 판소리를 했다. 20~50대 남녀로 이루어진 마을 밴드가 공연을 하는 동안에는 온 어린이와 이모 삼촌이 함께 춤을 추었다.


해가 거듭할수록 기후 변화를 크게 느낀다. 농사를 지으면서 기후위기의 어려움을 더욱 실감하고 있다. 농사만이 아니라 마을 곳곳의 삶의 현장에서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위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변화해 야만이 우리는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


대야미 마을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경험한다. ‘기후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생태적으로 농사를 지어 다양한 생명들과 함께 공존한다. 직접 농사 지은 것을 서로 나누면서 자급자족 한다. 공간을 나누어 쓰고 그 안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누린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도우며 힘을 합친다.


새로운 삶의 양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는 현장에서 가장 기본적인 일상을 바꾸는 것이다. 식의주락(食衣住樂), 즉 먹고, 입고, 머물고, 즐기는 것.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다. 대야미 마을에서는 식의주락의 전환을 더불어 경험하고 실천하고 있다.




글쓴이. 조은빛

군포 대야미 마을에서 생태농사 짓는 마을 이모.


* 이 글은 글맛공방 프로그램을 이용하신 분이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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