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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Nov 12. 2020

금융자본주의, 돈 놓고 돈 먹는 투기 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오늘날 세계의 경제 질서는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다.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이행한 것이다. 그것은 물건을 만들고 그것을 팔아 이득을 남기던 경제체제에서 자본 자체를 팔고 사는 ‘돈 놓고 돈 먹는’ 투기 경제체제로 이행했음을 의미한다. 금융자본주의는 실물부문의 성장과 관계없이 혹은 실물부문을 파괴함으로써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점, 노동을 투입하지 않고도 이득을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자본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통적인 경제상식에 따르면 경제의 주체는 정부, 기업, 가계이다. 그러나 금융자본주의 시대에는 초국적 자본이 시장의 유일한 행위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경제는 국제은행, 연금기금, 보험회사, 투자신탁회사 같은 기관 투자자들과 헤지펀드에 의해 좌우된다. (오늘날 하루 동안 거래되는 국제 금융거래 규모는 3조달러에 달하는데, 이중 95%가 투기 목적으로 거래되고, 나머지 5%가 수출입에 따른 결재 대금이다.) 아르네 다니엘스와 슈테판 슈미츠는 『자본주의 250년의 역사』에서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만도 한 해에 전 세계의 국민총생산보다 큰 금액의 외환이 거래된다. 이것은 순전한 도박이다. 돈은 더 이상 사람을 위해 일하지 않고 그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할 뿐이다. 자본주의는 새로운 단계에 돌입했다”고 썼다. 

금융자본은 이제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운동한다.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좋은 자본과 나쁜 자본, 건전한 자본과 불건전한 자본의 경계도 없다. 흔히 단기 차익을 노리면 투기고, 그렇지 않으면 투자라고 하지만, 만약 주식시장에서 어떤 사람이 주식 장기 보유는 ‘투자’이고, 데이 트레이딩(day trading, 초단기 매매)는 ‘투기’라고 주장한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주주들은 기업이나 사회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10년 뒤가 아니라 1년, 짧게는 한달, 일주일, 하루 뒤를 내다보고 주식투자에 뛰어든다. 투기는 금융자본주의의 필연적인 병리 현상이다.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자본축적 방식

금융자본이 움직이는 방식은 한마디로 ‘패거리주의’다. 펀드매니저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세계의 정보를 모두 소화할 수 없다. 그들이 알아야 할 정보는 단지 시장 정보가 아니다. 정치 사회와 관련된 모든 변수들이 시장과 관계한다. 그러므로 펀드매니저들은 보통 잘 나가는 몇몇 유명한 펀드를 따라 움직인다. 예를 들어 조지 소로스 같은 사람이 돈을 투자하면 따라서 투자하고 돈을 빼면 따라서 뺀다. 조지 소로스가 투자한 곳에는 더욱 많은 돈이 몰리게 되고, 실물부문의 변화보다는 막대한 돈이 몰린다는 사실 자체가 시세를 급등하게 만든다. 거래자와 투기꾼들이 이윤을 최대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거래량을 늘리는 것이다. 높은 거래량은 시장을 유동하게 하고, 거기에서 차익이 생긴다. 초국적 금융자본은 그렇게 자가발전적으로 차익을 남긴다.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거대독점기업은 주식을 통해 공급되는 과잉자본을 자기 본래의 사업활동에 투자하지 않는다. 거대독점기업은 유가증권 투자 비중을 증대시켜 다른 기업의 법인 주주로서 등장한다. 유가증권투자는 단기적으로는 과잉 내부자금의 돌파구로서 투기 이득을 노리고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거대독점기업은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기 위해, 다른 기업을 매수하거나 계열화하기 위해, 자기 제품의 판로를 확보할 판매회사를 신설하거나 계열화하기 위해, 혹은 독점 기업간의 제휴를 강화하고 주식의 상호 보유에 의한 일종의 기업 집단을 형성하기 위해서 주식에 투자한다. 주식의 상호 보유는 이윤이 집단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저지하고 기업의 자기금융체제를 한층 강화한다. 

초국적 자본은 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해 자기 자산의 몇 배에서 몇 십배에 달하는 자금을 운용한다. 이로부터 발생하는 거대한 경제적 결과와 영향력을 소위 ‘지렛대 효과’라고 한다. 초국적 자본은 이 지렛대 효과를 이용해 세계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금융파생상품은 금융 시스템을 더욱 복잡하고 불투명하게 만든다. 그 때문에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정책 당국이 적절한 대처를 하기 어려워진다. 금융파생상품은 금융공황의 다이너마이트이고, 이 공황을 동시에 전세계로 전파시키는 도화선이다. 그러나 이 뇌관을 관리할 수 있는 기구나 주체는 없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얼마나 심각한가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축적과정이 상품의 생산과 판매 활동을 통해 이윤을 추구했다면,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축적과정은 주로 기업 자체를 하나의 상품처럼 사고파는 과정,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금융자본주의는 시장주의자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활동은 투기, 독점, 지배, 약탈에 가까운 것이다. 그것이 시장이 아니라 차라리 반(反)시장에 가깝다. 자본의 증식운동은 자신의 토대인 실물경제를 파괴하면서까지 이익을 남기는 모순적인 단계로 진입했다. 미국에서는 월가의 성장으로 매년 실물 경제에서 생산되는 것보다 15배나 많은 부가 창출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가상의 부’일 뿐이다. 

우리는 주가가 오르면 모두에게 이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주식 투자자, 애널리스트, 경제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주가가 오른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주식의 가격이 다른 재화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높아진 주가는 주식시장 외부의 상대적인 저평가를 초래한다. 주가가 오른다는 것은 사회적 부가 주식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주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옮겨가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경제 안정을 위해 늘 적절한 수준에서 주가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 조치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초국적 자본에 끊임없이 이득을 가져다준다. 초국적 자본이 큰 수익을 거두고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주식시장은 요동하고, 정부는 주식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규모로 공적 자금, 즉 국민의 돈을 투입한다. 그렇게 안정화 조치가 이루어지면 외국자본이 다시 들어온다. 이런 상황은 마치 샘물을 실컷 퍼가고 나서 며칠 뒤에 다시 와보니 다시 샘물이 차있는 것과 같다. 경제를 안정시키려는 정부의 노력이 초국적 자본의 ‘마르지 않는 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중의 부는 그렇게 초국적 금융자본으로 빨려 올라간다.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대한 대가는 국가와 국민이 치르게 되고, 투기꾼들은 오히려 그 불안정성에 의해 이익을 얻는다. 

중요한 것은 금융자본주의가 세계적인 장기불황을 전혀 타개하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을 오히려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의 금융시장이 통합되면서 경제 위기가 타국으로 쉽게 퍼지고, 조그만 소문이나 작은 변화에도 시장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금융위기를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만큼 갑작스러운 경제적 재앙이 가능해졌다. 세계경제는 언제 심각한 공황을 겪을지, 그것이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가질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금융자본주의의 위기이다. 그람시는 “위기는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이 그렇다. 만약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오래된 것이 붕괴되기만 한다면 엄청난 재앙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 재앙은 경제 대공황, 식량위기, 인종 갈등, 제3차 세계대전과 같은 극단적 양상으로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기상이변이나 전염병 같은 ‘인위적인 자연재해’가 결합된다면 인류의 미래는 묵시록적인 것이 될지도 모른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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