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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Jun 15. 2023

오후 세시

오후 세시,

그것도 여름날의 오후 세시는,

졸음처럼 쏟아지는 무료함과

지쳐가는 일상으로 인하여

어디든 달려가고픈

일렁임에 흔들리는 시간이다


가까이

사람들에게 잊힌 빈 공터라도 있다면

찾아가

버려진 페 타이어에 늙어가는 엉덩이를 걸치고

듬성듬성 제멋대로 자랐을 잡초처럼 부는 바람에 

제 몸 맡겨

흔들거리고 싶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다 어둑어둑 해 저물면

말없이 앉아 있어도 좋은 친구라도 불러 내

맥주라도 한 캔 시원스레 들이킬 수 있다면,

까닭 없이 숨 가빠지는 하루

위로받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사는 날,

생각대로 살아진다면 

더 바랄게 무엇이며

이 보다 더 좋은 날이 또 어디 있겠는가?


밥벌이에 갇힌 오후 세시가

힘겹게 지나간다


차 한잔을 타들고 자리에 앉아

펼쳐든 책에서 시 한 편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데 뒤따르는 나의 웃음소리가

몹시도 낯설게 느껴진다

씁쓸했다.


...... 어쩌

소리 내어 웃는 법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순간순간,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것이다.


조각조각

스쳐 지나가는 작은 것들에서의 아름다움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숨죽여

살아내고 있던 것이다.


무엇을 위하여

내 삶에서 얻어내야 할 기쁨마저

던져 버리고 말았 것일까?


나도 반성을 해본다.


ㅡ김영승 시인의 반성  16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쓰여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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