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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Aug 12. 2024

안부를 묻다

흐린 하늘이었다. 태초부터 하늘의 빛이 그러하였듯 영원할 것 같은 회색이다. 비라도 울음처럼 쏟아낸다면 다시 맑은 하늘을 되찾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하루쯤 미친 듯이, 무엇이든 때려 부술 듯 바람 불고 비 쏟아 졌으면 좋겠단 바람이 들었다.


하루의 걸음이 느릿했다. 투명한 얼음 조각들이 유리잔 너머로 방울방울 흘러내리며 소리 없이 사라져가듯, 너무 쉽게 흘러가는 하루였다. 때때로 오늘 하루 난 무엇을 하였을까 하는, 목적 없음에  대한 불안이 뒤덮기를 반복했지만, 또 무엇을 해야만 하는 하루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달래보는 하루다. 하지만 마음속에 내재 된 불안은 끈질기게도 살아남아 마음 한편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러한 마음이 폭풍우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느릿하지만 짧은 하루이기도 하였다. 늦은 아침과 제멋대로의 점심, 둘레길을 걷고 뒹굴뒹굴하다 해지는 저녁 천변을 걷는다. 그리고 티브이를 틀어놓고 책 몇 장을 읽다 잠 속으로 빠져들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아침이었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한다면야 무척이나 여유롭지만 나름, 먹고 자고에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아주 오래간만에 한쪽에 웅크리고 누워있던 노트북을 꺼내 닦고 펼쳤다. 낯익은 골목에 들어선 듯한 편안함이 나를 반긴다. 괜한 흔들림, 별빛처럼 흔들리는 유리잔의 얼음 조각 소리가 깨알 같은 계집아이들의 웃음소리처럼 상큼하게 다가왔다.


읽고 싶어 사두었던 책을 펼쳐두고는 창밖을 바라본다. 극성스럽게 내지르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면 잠시 여름인 것을 잊었을 만큼 하늘이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너무 가까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지만, 역시 그리움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하늘이다.


언뜻, 삶이 운무 속으로 숨어든 산봉우리 같다는 생각으로 스쳤다. 산 아래 사람들은 지금 어떤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안부의 문자라도 전해보면 좋겠지만 앞서 움츠러드는 마음이다.


뜻밖의,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그렇지만 누구나 에게 있을 법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단지 이번엔 나에게 찾아왔을 것이다. 건강검진 결과 암을 발견했고 수술을 하였다. 그리고 지켜보는 중이다. 그렇지만 암을, 내게 찾아온 불행으로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자연스레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지나치게 평온했다. 가끔 사는 날이 지루하기도 했지만, 삶에 부정적인 사람은 아닌데, 아직 살만하기에 엄살을 부린다, 단정을 짓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뜻대로만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경험 탓이지 싶었다. 그래도 내 아이들이 지치고 힘들어졌을 때 돌아가 쉴 곳으로 남고 싶은 미련이 걱정으로 남았다.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많은 죽음을 바라보게 되었다. 대중 매체에서는 쉴 새 없이 누군가의 죽음을 보도했고 지인과 주변인들에게선 관계된 이의 죽음이 전해져왔다. 그 죽음 중에 어느 죽음이고 허망스럽고 막막하지 않을까마는, 불손하게도 병마와의 싸움은 그나마  이별의 시간이 주어지는 고마운 죽음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된다. 더하여 인생을 달관이라도 한 듯 건방을 떨어보면, 너나없이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날이었다. 또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길이 죽음의 길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자궁을 벗어나 태어나는 아이처럼 또 다른 새로운 세계로 태어나는 것, 그것이 죽음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닿는 것이다. 끝은 언제나 시작과 마주 닿는 곳에 있었으니,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인 셈이다.


몇 곳의 이상소견이 있었지만 그래도 드러난 병명은 착한 암이다, 라는 말에 불안이 많이 누그러졌었다. 그러다 전이율이 높다는 말에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이왕이면 남은 날들은 살아오며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 ’여름날의 베짱이‘처럼 살아보고자 한다.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오늘이 참 좋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지난 삶을 또 되돌아보게 된다. 지나치게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온 오늘이었다. 불확실한 삶의 연속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받아들이면서도 내일의 걱정에 오늘을 참 많이도 잃어버렸구나 싶었다. 하지만 아쉬움을 둘러 없고 가는 길이 인생의 길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 덕분에 얻은 것 또한 기쁨으로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확연하게 인생의 변환점을 맞이할 수 있는 것도 분명, 남보다 한 번 더 특별한 기회를 얻는 행운임이 틀림없음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무엇이든 제멋대로 하고 싶던 철없음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연애소설에서나 접했던 사랑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늙어가는 날들은 상상하지 못했다.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라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죽을 거야‘ 했던 계집아이들이 미소처럼 피어올랐다. 하지만 지금쯤, 어디선가 도저히 상상도 할 수도 없던 그 시절을 그녀들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운무 속으로 숨어든 산봉우리에서 신선 놀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잘살고 있을까? 이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그대가 그랬으면 싶은 하루다.


’쇼생크 탈출‘의 마지막 장면에 ’레드‘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난 결말이 불확실한 여행을 하는 자유인이다”. 우리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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