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잤다

by 여름나무


비가 내려서일까?

아주 오랜만에

한나절을 잤다.

알 수 없는 꿈들,

되돌아가지 못할

시간 속을 헤매고 있었다.


산 자와 죽은 자

떠난 자와 남은 자

지난 것들에 대한

어쩌지 못한 것들에 대한 기억들,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고 있지만

기억은 잠들어있을 뿐이었다.


투명해진 눈빛으로

잠시라도

그리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어쩌면

놓아주고 싶지 않아

되돌아오고 싶지 않아

그리 오래 잠들었나 보다.


잠을 깬 것이 슬픈 건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티브이를 켜고

이어지는 습관적인 움직임들

겉도는 것들과

무덤덤해진 감정의 반응

그런 내가 슬프다.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닳아가는 모서리가 되고 있었다.

그래도 페인트로 덧칠되고 싶지 않은

낡은 책상으로 남고 싶은 건

지나친 욕심이려나....

참 잘 잤다.

아주 오래 오래간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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