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의 세 가지 사용단계

by 여름나무

마실 한번 갈까요?

혼자 있자니 심심도 하고,

다들 어찌 사는지, 궁금도 하네요.


-탐미

도시의 불빛은, 드문드문 자리한 시골집들의 불빛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 화려함이란, 정말 멋진 신세계의 발견이었죠. 핸드폰의 새로운 용도발견도 그렇습디다. 눈만 뜨면 날마다 미지의 땅을 밟으며 새로운 것들과 충돌을 하지요. 신나는 일입디다. 두려울 것이 없네요. 기분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며 살아가는 자유, 게걸스럽게 타인이 쏟아놓은 글을 삼키고, 내 감정을 덩이 덩이 싸놓고 봅니다.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가엾게도, 누군가를 앉혀놓고 많은 말들을 쏟아보지 못한 사람들 인지도 모르지요. 암튼 뒷집 멍멍이 마냥 밟히는 곳마다 제 영역표시를 하고 다닙니다.


사실 살아있는 날에 절실해 보지 않은 삶이 뭐 그리 특별하거나 간절하겠습니까? 그렇다고 날마다 즐겁거나 신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만족스러운 삶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숨 좀 돌리려니 공허한 시간이 찾아들지요.


만사가 욕심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매사 귀찮을 때쯤, 힘 들이지 않고 앉은자리에서 눈동자나 굴리며 즐거움의 욕구를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다면 탱큐지요. SNS의 사용이 그럽디다.


그러나 세상사 그러하듯이, 늘 한결같이 만족스러운 상태로 머물러주면 좋으련만, 비교의 대상이 생기다 보니 사람 속 이란 게 또 들끓고, SNS의 사용도 마냥 좋을 수만은 없더이다.


따지고 보면 날마다 사람 속에 묻혀 사는 것 같지만, 저마다 제 섬에 살고 있습디다. 그러다 보니 외로움, 깊겠지요. 이젠 먹고사는 일보다 사람이 더 궁핍합니다. 그래 멀쩡해 보이는 허우대야 내버려 두고, 이리저리 파 먹혀 구멍 헐헐 뚫린 마음만이라도 떠날 수 있는 곳, 찾다 보니 SNS 같은 세상이겠지요.


그래도 누가 뭐라 건, SNS 세상에선 내가 갑이지요. ‘마릴린 먼로’가 되든 ‘공유’ 오빠가 되든 상관없습디다. 이런 곳에서나 기분 한 번 내보는 거지요. 짐짓 선악의 판단자라도 된 양, 벙커에 숨어 기분에 따라 서부의 무법자가 되어 총질을 하기도, ‘닌자’처럼 자객질도 서슴지 않습니다. 사는 것, 다 다른 것 같아도 또 누구나 닮아 있습디다.


-윤리

자다가도 핸드폰을 확인합니다. 어느새 착실한 집사가 되었습디다. 중추신경계에 이상이라도 생겼는지, 점 점 자극은 둔해지고 인지기능에 장애가 있는 것 마냥, 주인님(핸드폰) 모시기에 시간이 모자랍디다. 허겁지겁 무슨 날이 무슨 날인지, 흘리고 빠트리고 사는 날이 많아집니다.


천만다행, 대중매체 덕분에 이게 중독증상이란 자가진단을 합니다.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것일까요? 그래도 사람인지라, 정신을 차려 뒤늦게 하던 짓을 되돌아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 내 안으로 숨어듭니다. 특별한 놀이가 없던 삶에 SNS는 썩 괜찮은 놀이지요. 그러다 보니 모처럼의 놀이에 지나치게 몰입이 됐나 봅니다. 또한 그만큼 대중성이 가미된 놀이는 없었겠지요.


술 깬 아침처럼 싸질렀던 감정들에 띵하니, 머리가 아찔해 집디다. 핸드폰을 꺼 두거나 집어던져두어 중독증상을 피해볼까 하지만 금단현상은 피할 수 없더군요. 마음에 허기가 져 무엇이고 집어넣지만 그 황홀했던 욕구를 채우기는 쉽지 않습디다.


결국 양방향의 놀이를 일방향의 놀이로 바꿔합니다. SNS에도 규칙이 형성되더니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들은 절제를 요구합디다. 지나친 노출도 이제 불편해질 때가 된 거지요. 살살 자신을 꼬드겨 이건 괜찮다며 독자(페이지)적인 놀이를 합니다. 하던 놀이를 단번에 쳐내기도 무리였지요. 또 나약하긴 얼마나 나약한지, 뼈 발라낸 생선처럼 줏대가 없습디다.


요상도 하지요. 페이지 구독자가 급 증가합니다. 처음엔 겁 없이 좋아집디다. 자존감 상승에 자신감까지 오만방자를 떨지요. 그러다 천천히 아파집디다. 나를 포함해 어디고 매달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그리 많다는 거겠지요. 조금씩 현실적인 나와 이상적인 나를 구별하게 됩디다. 글과 행동의 일치점에 자신이 없어집디다. 요즘만큼 게으르게 살아가는 날이 없기에, 개선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그만 놀이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자정이 되기도 합디다.


견물생심이라고, 욕심도 생깁디다. 왜들 그렇게 아는 게 많고 글을 잘 쓰는지, 타인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하고 싶던 말들보다 포장에 신경을 쓰게 됩디다. 그러한 걸 바라던 게 아니었는데, 빌딩 외벽에 비친 초라한 모습을 보는 거 같더이다. 도망치듯 열린 마음을 닫습니다. 잠시 바람이 잦아든 나날에 평화가 머뭅니다.


-진리

놓치고 있던 게 있습디다. 소통의 부재에 따른 마음의 허기입니다. 외면하려 하였지만 중독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촉수를 뻗치고 있던 거였습니다. 일시적인 자기 조절은 실패, 결국 손 발 다 들고 헥헥 거리며 갈망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합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밥 먹고 커피 한 잔 마신다 생각을 하면 될 걸, 지나치게 발달된 초자아는 불안을 야기시키며 지나침에 죄의식을 유발하였나 봅니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일방향이면서 선택적 양방향의 방법을 고려합니다. 또한 하던 푼수 짓을 멈추기도 그렇고, 다시 페이지에 브런치를 더합니다.


몰랐던 게 있습디다. 혼자인 게 편하긴 하지만 참아내기도 쉽지 않듯이, 푼수 짓에도 장단을 맞추어주는 이가 있어야 흥이 돋는다는 것을, 다시 감정 싸지르길 합니다.


앗살람 알라이쿰(평화가 당신들 위에 있습니다). 요즘 읽는 책에서 가장 맘에 들어오는 문구입니다. 결국, 평화적 공존이 필요합디다. 과하지 않은 선에서 즐거움을 조절할 수 있다면, 놀이가 부족하고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SNS 만큼 만만한 곳은 또 없겠지요.


시간이 주어질 때, 홀로가 심심한 시간, 마실 가듯이 한번 다녀보는 것도 좋다 생각됩니다. 가서 커피도 마시고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이야기를 엮어 예쁜 조각보 몇 개 만들어 볼까 합니다. 뭐든 억지는 쉽지 않습디다. 지나침도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 맞지요. 조금 과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젠 좀 여유로운 중독자 되어 귓등으로나 넘겨 들어야 할 사랑 얘기도 한 번 들어볼까 합니다.


마실 나갑니다. 맛난 커피 한잔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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