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맨해튼 건설을 이끈 선각자들: 강철과 집념의 역
1. 물결 위의 천국, 레나페족의 '마나하탄'시대
2. 항해시대의 확장과 북미대륙 속의 '마나하탄' 시대
3. 영국령 뉴욕 속의 '맨해튼' 시대
4. 미국의 초대 수도와 상업 수도의 '맨해튼' 시대
5. 격자계획으로 도약한 '맨해튼' 시대
6. 센트럴 파크와 함께 하는 맨해튼 발전의 전환시대
7. 맨해튼의 수직혁명, 제1기 마천루 시대
8. 제2기, 제3기 마천루 시대
9. 1WTC 도시 재건과 초고층, 주거혁명 시대
10. 맨해튼의 수평적 확장: 교량 건설의 시대
11. 맨해튼 상징물 : 건축, 문화, 경제, 정체성과 로펌
12. 맨해튼 건설을 이끈 선각자들: 강철과 집념의 역사
마나하탄은 수천 년 동안 레나페족(Lenape)이라는 원주민이 거주하였습니다. 1524년 지오반니 다 베라차노(Giovanni da Verrazzano)의 방문과 1609년 헨리 허드슨의 방문을 통해 40년간 뉴암스테르담이라는 네덜란드의 식미지였습니다.
1664년, 영국 국왕 찰스 2세의 동생인 요크 공 제임스 (James, Duke of York)가 지휘하는 영국 함대가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뉴암스테르담(New Amsterdam)을 무력으로 점령했습니다. 찰스 2세는 점령한 이 식민지를 동생인 요크 공에게 하사했고, 요크 공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을 뉴욕(New York)으로 개명했습니다. 이로써 뉴욕은 영국의 주요 식민지이자 주요 무역항으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미합중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의 공적은 맨해튼의 정치적, 상징적 공헌에 집중됩니다. 그는 미국 독립전쟁에서 총사령관으로서 승리를 이끌어 미국의 독립을 완성했습니다. 1789년 4월 30일, 조지 워싱턴은 뉴욕시 월스트리트에 위치했던 임시 수도의 청사 페더럴 홀(Federal Hall) 발코니에 서서 미 합중국 초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습니다.
이는 뉴욕이 잠시나마 미국의 첫 수도 역할을 수행했으며,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시작점이 되었음을 역사에 기록했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뉴욕에서 미국의 새로운 정부 시스템과 대통령 임무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이러한 맨해튼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인물의 비전, 기술, 그리고 불굴의 집념이 겹겹이 쌓여 완성된 위대한 건축물입니다. 맨해튼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도시의 기초를 다진 계획가, 불가능에 도전한 기술자, 그리고 공간의 가치를 재정의한 비평가들의 연속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I. 도시의 기틀과 상업적 확장 (19세기 초)
19세기 초, 뉴욕의 무한한 성장을 위한 질서와 통로가 마련되었습니다.
1. 격자형 도시, 그리드 계획 위원회
1811년, 거버너 모리스 (미국 헌법 전문을 작성한 건국의 아버지), 존 러더퍼드 (미국 상원의원), 시미언 드 위트 (뉴욕주 측량국장) 등 위원들은 맨해튼 14번가 이북에 효율적이고 질서정연한 격자형 도로망을 설계하여 도시 확장의 기초를 확립했습니다.
이 계획의 현장 집행 및 구체화는 측량사 존 랑둥 설베스터(John Randel Jr.)가 수백 개의 표지석을 설치하며 주도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이들의 노력의 결과 레나페족이 '많은 언덕의 섬', '나무를 모으는 곳'으로 불렀던 마나하탄은 오늘의 맨해튼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2. 국가적 상업 중심, 이리 운하
뉴욕주지사 드윗 클린턴은 대규모 토목 사업인 이리 운하의 완공을 이끌었습니다. 1825년 운하 개통은 뉴욕항을 미국 내륙과 연결하는 핵심 무역로의 종점으로 만들어, 뉴욕시가 미국의 상업 및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II. 공간 혁명과 불굴의 기술 (19세기 중반~후반)
이 시기는 도시 환경과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집약된 시기입니다.
1. 수평적 공간 혁명, 센트럴 파크
도시의 밀집화 속에서 시민의 안녕을 위한 녹지 공간이 탄생했습니다.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와 건축가 칼버트 보는 센트럴 파크를 설계하여, 도시 속에 자연의 치유력을 도입하고 공공 녹지 공간의 중요성을 확립했습니다.
2. '강철'과 '집념'이 빚은 브루클린 교
브루클린 교는 한 가문의 희생과 헌신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존 A. 로블링이 세계 최초의 강철 케이블 현수교 설계를 시작했으나 1869년 다리 착공 직후 사고로 희생되었습니다. 아들 워싱턴 A. 로블링이 지휘를 맡았지만 1872년 잠함병으로 쓰러져 신체가 마비되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는 1883년 완공시까지 육체적으로 현장에 나갈 수 없게 되었지만, 브루클린 자택에서 망원경으로 현장을 지켜보며 아내 에밀리 워런 로블링을 통해 지시와 설계를 전달하며 사실상 공사를 총지휘했습니다. 아내 에밀리 워렌 로블링은 남편을 대신하여 고등 공학 지식을 독학하고 11년간 현장을 실질적으로 지휘했습니다.
아버지 로블링, 아들 로블링, 아내 로블링
에밀리는 남편의 건강 악화로 인해 수석 엔지니어 직위가 위태로워졌을 때, 정치인들과 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여 남편의 직위를 지키고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시키기 위해 옹호 및 로비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여성이 이렇게 야심찬 건축 프로젝트의 현장 관리와 기술적인 책임을 맡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녀의 역할은 브루클린 다리의 완공을 가능하게 한 대리 수석 엔지니어이자 영웅적인 헌신으로 평가받습니다.
1883년 브루클린 교 개통식에서, 에밀리 로블링은 남편을 대신하여 마차를 타고 다리를 가장 먼저 건너는 영예를 안았는데, 이때 그녀가 품에 수탉(Rooster)을 안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는 로블링 가문이 수많은 역경을 딛고 마침내 위대한 프로젝트를 완성했음을 선언하는 승리와 정복의 상징이었습니다.
III. 마천루 시대와 도시 설계 논쟁 (20세기 초~중반)
1. 초고층 강철 건축 공로자들
20세기 초, 강철 기술의 발전은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윌리엄 F. 램이 설계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40년간 세계 최고층을 지키며 뉴욕의 불굴의 의지를 상징했습니다. 이 건물은 뉴욕의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윌리엄 밴 앨런이 설계한 크라이슬러 빌딩은 아르 데코 양식의 걸작으로, 61층 코너를 장식하는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 독수리 장식(종종 수탉으로 오인됨)을 통해 강철 건축의 예술성과 기술력을 과시했습니다.
2. 현대 도시 설계의 설계자와 비평가
로버트 모제스는 비선출직임에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며 대형 교량과 고속도로망을 구축해 뉴욕을 자동차 중심 도시로 변모시켰습니다. (재개발 독재자 비판)
제인 제이콥스는 모제스의 권위적인 계획에 맞서 싸우며,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을 통해 시민 중심, 보행자 친화성,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도시 계획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IV. 21세기 재건과 럭셔리 재개발 (현대)
1. 재건과 회복의 상징, 1WTC
데이비드 차일즈 등이 설계한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1WTC)는 9.11 테러 이후 뉴욕의 불굴의 의지와 재건을 상징하며 미국 최고 높이로 우뚝 섰습니다.
2. 현대 도시 확장의 주역, 허드슨 야즈
스티븐 로스 (릴레이티드 컴퍼니스 회장)가 주도한 허드슨 야즈 프로젝트는 웨스트 사이드 철도 야적장 위에 인공 지반을 덮어 올린 21세기 최대 규모의 민간 주도 도시 재개발 사례입니다. 이 단지에는 토마스 헤더윅이 설계한 상징적인 공공 예술 건축물인 베슬(Vessel)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3. 초고층 럭셔리 주거
라파엘 비뇰리가 설계한 432 파크 애비뉴와 같은 초고층 럭셔리 타워들은 맨해튼 '억만장자의 거리'를 상징하며, 현대 초고층 주거 시장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 글은 2025년 10월 1일, 강남구 개청 50주년을 맞아, 강남의 발전에 커다란 감동을 느끼면서... '인류의 걸작' 맨해튼의 역사를 12편의 시리즈로 만든 블로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