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순형 Jun 22. 2022

02

매일 10km를 달리면 만나게 되는 변화

"열정"


참으로 멋진 단어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단어 뒤에 숨어 나의 무능력을 감추며 살아왔다.

"가진 게 열정밖에 없다."는 나의 말은 곧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말을 의미했다.


내게는 노력과 열정이 없어도 해낼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그냥 꾸준히만 하면 되는 '해볼 만한' 대상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바로 10km를 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달리기는 다른 운동과 비교했을 때 지금 내 몸을 바꿔줄 수 있는 가능성이 그나마 높다 생각했다.


원래 처음 운동을 시작하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며칠 굉장히 의욕적으로 꾸준히 운동을 한다.

그러다 본인의 게으름이나 약속 때문에 하루 이틀 운동을 안 가게 되면서 서서히 운동에 흥미를 잃고 그만두게 된다.

나도 그랬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이 꾸준히 운동을 하지 못하는 패턴이 이러할 것이다.

  

0.6은 버린다
출근 전 7시에 일어나 달렸다.


나는 노력에 대한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열심히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했다.

매일 아침 이불을 힘겹게 박차고 나와 피곤함과 싸우며 달리는 거리를 모으고 체중계에 올랐다.

찬물로 샤워를 할 때면 <타이탄의 도구들>에 나온 표현처럼 하루를 승리하고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첫 2주 동안은 피로로 회사에서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지만 나한텐 달리기를 통한 나의 자존감 회복이 최우선이었다.

하루 중 유일하게 나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2021년 2월 30일 x 5km=150km

92kg->88kg까지 체중이 빠지자 체력은 좋아지고 몸은 가벼워져 달리기 기록 향상됐다.

3월 나에게 굴욕적인 패배감을 안겨줬던 관악산에 다시 돌아왔을 땐 지옥의 계단을 가볍게 넘고 한 번도 안 쉬고 연주대까지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좋아졌다.

곧 2018년 호주에서 단거리 마라톤 우승했을 때처럼 다시 빠르게 달릴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겼다.


2018년 2월 호주 군디윈디라는 시골에서 살 때 참여했던 마라톤에서 5km 23분으로 우승


처음 힘들어 죽을 것 같았던 매일 5km 달리기가 할만해지자 4월부 매일 10km를 달려보기로 마음먹었다.

과연 이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3달 만에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매일 10km를 달릴 수 있게 됐다.

매일 성공 경험이 쌓이면서 체력과 자존감이 향상되어서일까 업무 성과도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진즉에 포기했을 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방법을 찾게 되고 개선점이 보였다.

자기계발서에 늘 나오는 규칙적인 운동의 생산성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사점을 넘는 행위를 반복하다 보니 단순 반복적인 사무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우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정한 궤도에 오르면 숨 가쁜 고통이 이내 익숙해지듯 별 거였던 일도 별 거 아닌 일이 되어갔다.

  

늦잠을 자서 10km를 못채운 날은 주말에 장거리를 뛰어 10km를 채웠다.

달리기 하나로 망가졌던 삶이 하루아침에 성공한 인생이 되지는 않다.

다만, 매일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가고 있다는 건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매일 달린 지 6개월 지나자 나는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여행 갈 때도 조깅 코스를 짜거나 카본화를 챙겨갔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내가 남들과 다르게 달리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걸까?

맞을 수도 또는 틀릴 수도 있다.


열정은 언젠가 반드시 식기 마련이다.

나에겐 열정이 식더라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고 사람들은 그걸 '습관'이라 부른다.

열정을 버리고 삶 속에 달리기를 받아들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거창하게 적었지만 매 끼 밥을 챙겨 먹는 것처럼 때가 되면 달리러 나 수 있었다.

매일 달리기를 임계점을 뚫기 위해 당연히 느 정도 열정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시스템만으로도 지속해나갈 수 있음을 경험하고 이를 다른 분야에도 적용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해 다짐하고 또 실패해왔던 독서와 꾸준한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열정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지만

역설적이게도 열정을 버리자 의지와 끈기 없이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