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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형 Sep 1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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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길과 동반주

 뼛속까지 I인 나에게 달리기는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어서 좋았다. 내가 달리고 싶은 순간에 러닝화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달릴 수 있고, 누군가의 페이스에 맞춰 달릴 필요도 없고 내 컨디션에 따라 자유롭게 훈련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이 좋았다. 종종 누군가와 함께 달릴 기회가 있어도 그건 내게 있어 경쟁의 순간이었기에 달리기 자체를 온전히 즐길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달리기를 좋아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만나 페이스를 맞추어 달려야 하는 러닝 크루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불편한 옷을 억지로 입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혼자 달려왔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부산 해운대를 달리는 유투버가 있다. 매일 아침 6시에 올라오는 그의 영상은 부산의 아침을 연다. 나도 그의 영상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의 운동 영상엔 영상미나 화려함 대신 꾸준함과 투박함이 묻어있다. 고프로를 들고 뛰면서 찍은 과장되지 않은 부산의 바닷길을 보고 있자면 당장 신발끈을 고쳐 매고 달리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60대가 되어서도 젊은 세대에게 전혀 뒤처지지 않는 노장의 투혼을 보여준달까. 간의 육체는 나이가 들면 응당 약해지기 마련이지만 마라톤 세계에선 수많은 노련한 장년의 러너들이 20대의 혈기왕성한 러너들보다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그의 달리기에선 장년의 노련함이 느껴진다.


 나이와 구력을 떠나 사나이 대 사나이로서 그와 함께 달려보고 싶었다. 갑작스레 한 수 배우러 가고 싶다고 요청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흔쾌히 나의 요청을 수락해주었다. 나의 요청이 나비효과가 되어 해운대 동백섬에 장정 6명이 그와 함께 달리기 위해 모였다. 그는 처음 나의 체형을 보고 함께 달릴 사람 중 내가 가장 느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말은 꺼져가고 있던 나의 투쟁심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뒤쳐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26km를 어금니를 꽉 깨물고 버텨 결국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


 영상으로 본 것보다 실제로 달려본 해파랑길 2코스는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 아름다운 길을 죽기 전에 달려볼 수 있었을까? 혼자 달렸다면 진작 멈췄을 것이다. 함께 달렸기에 더 멀리 달릴 수 있었다. 나는 혼자서도 충분히 한계치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훈련을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실력이 더 뛰어난 사람 혹은 그룹을 찾아 동반주를 통해 내가 한계라고 생각하는 지점을 계속해서 뛰어넘는 경험이 더 많이 필요함을 느꼈다.


 혼자 달리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달리면 더 멀리 갈 수 있다. 이 말을 한번 더 마음에 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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