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제대로 시작한지 어느덧 1년 8개월이 흘렀다. 달리기에 대한 나의 의미부여는 시간이 흐를수록 변했다. 처음에는 내 삶을 바꾸기 위한 수단이자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약속이었고, 한창 기량이 올라왔을 때는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으로도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달리기는 어떤 의미가 됐을까?
작년은 나에게 달리기와 마라톤에 대해 알아가는 단계였다. SNS로 언택트 레이스를 접해 여러 대회를 참여해서 티셔츠나 양말 같은 몇가지 사은품을 받았다. 참가자들과의 눈에 보이는 경쟁이 아닌 온라인 상의 경쟁이었기에 정말 별 감흥없이 대회에 참여했었다. 내가 달리고싶은 날과 시간을 선택하여 달릴 수 있었기에 기록 또한 나쁘지 않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달리기 커뮤니티에서 나의 주력이 뛰어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늘어나자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느낌으로 더 열심히 했고, 마라토너들 사이에서 내 실력이 어느정도 위치일지 궁금해졌다.
나에게 풀코스 마라톤이라는 것은 인생에 언젠간 달성하고싶은 버킷리스트였지, 이렇게 갑작스레 도전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나는 10k, 하프를 넘어 8개월만에 어느새 풀코스 마라톤을 도전하는 마라토너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공식적인 첫 오프라인 대회는 2021년 11월 중순 손기정 마라톤 풀코스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악재로 인해 보기 좋게 대회가 무산됐고, 그동안 준비해온 것이 아까워 잠실 보조경기장에서 외롭게 기록 측정을 했다. 비공식적인 나의 풀코스 기록은 3시간 16분. 실력에 비해 과분한 기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한편으로 바퀴당 4초씩만 당겼어도 싱글(3시간 10분 이내 완주)이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첫 풀코스를 완주했을 때 내가 가장 처음에 했던 생각은 '내가 이 고행을 과연 한번 더 이겨낼 수 있을까?'였다. 37km에서 완주까지 남은 5km를 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간지옥' 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1초에 1번씩 당장이라도 이 멍청한 고행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내면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로 소용돌이 친다. 정신만 괴로우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 와중에 팔, 다리, 허리, 발 등 육체적으로 안 아픈 곳이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얻겠다고 이런 고통 속에서 달리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수백번 되뇌이며 호기롭게 풀코스에 도전했던 자신을 미련하다고 책망할 것이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도전의 끝에는 이 빌어먹을 고통을 감내하고 완주라는 결실을 이루어낸 모든 선배 마라토너들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해준 스스로에 대한 감사함이 있었다. 완주라는 것은 결국 억만금을 줘도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결국 오로지 본인이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있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전신 근육통은 덤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주력이 뛰어났던 시기였기에 다행히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내가 이것보다 과연 더 잘 달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절망감이 들었다. 2021년 내 인생의 0순위는 달리기였다. 그 무엇도 내게 매일 달리기를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가능했던 결과인데 더이상 달리기가 0순위가 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도 내가 과연 지금처럼 잘 달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나는 2022년 2월-4월, 2021년과 비교하면 거의 달리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방할정도로 달리기를 꾸준히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1년이 넘도록 매일 달리기를 쉰 적이 없었는데 자의반 타의반으로 역설적이게도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운동량과 근육량이 많이 줄어 다시 뛸때마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 의지와 기록이 따로 노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우선 순위라는 것은 이렇게 때때로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다만, 내 꼬인 인생을 어렵사리 풀어가는 도중에도 나는 절대 달리기를 놓지는 않았다. 달리기는 나에게 단순히 강인한 정신과 육체를 만드는 운동일뿐 아니라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서 다시 일어설수 있는 Grit과 성실함 그리고 꾸준함을 기를 수 있는 수단이기에 실패에 굴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쟁취할 때까지 몇번이고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도전할 수 있게 나를 성장시켜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서브3를 달성하겠다는 조급함만 버린다면 언젠가 반드시 서브3를 달성할 수 있을거라는 강한 확신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2022년 여름은 작년만큼 힘들고 즐겁진 않았다. 뒤가 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못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야 했기에 여전히 달리기는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후순위였다. 다만,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서 나는 다시 풀코스를 달릴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작년만큼의 기량은 아니더라도 작년 내 기량의 85%까지는 회복했다고 생각한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이 있듯이 매일 달리기로 쌓아둔 러닝 마일리지는 어디 안가고 내 몸에 남아있었다. 풀코스를 견뎌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왠만한 사점이나 훈련은 어렵지 않게 견뎌낼 수 있었다.
가을은 금방 지나갈 것이고 이제 곧 겨울이 올 것이다. 기온이 떨어지면 바로 작년 기량이 되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아직 몸이 충분히 올라오지 못했다. 어쩌면 더 올라올 게 없는걸지도? 작년에 못 치른 11월 공식 풀코스 대회 대비를 위해 [2022년 10월 9일 / 2022 서울레이스 하프 ] 생애 첫 공식 오프라인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 1시간 30분 이내를 목표로 했고 대회 기록은 체면치레는 했으나 전혀 만족스럽진 않았다. 경기 운영 또한 원래 계획했던대로 대회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초반 몸이 풀린 이후에 후반 역주를 도모했어야 했는데 초반부터 오버페이스를 해버리는 바람에 후반에 뒷심이 떨어져 오르막이 거의 없는 아주 좋은 코스였음에도 불구하고 PB(Personal Best)를 갱신하지 못했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하지만, 이번 시행착오를 통해 11월 풀코스 대회를 위해 보완해야할 점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 모의고사는 모의고사일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다음은 2주 뒤에 있을 메이저 대회중 하나인 춘천 마라톤 10k이다. 2주 간격으로 풀을 2번 뛸 자신이 없어서와 춘천 마라톤 코스가 어렵기로 유명해서 올해 춘천 마라톤 풀코스는 포기했는데 JTBC 풀코스 마라톤 코스가 변경되면서 춘천 마라톤 코스가 더 낫다는 의견이 많아 조금 후회가 된다. 올해는 기록 욕심 없이 가을의 절경을 보러 간다고 생각하고 40분 이내에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