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무래도 인간 꽈배기인걸지도
근 1주일 간 내가 카톡방에서 가장 자주하는 말 BEST 5를 꼽자면, 그중 첫번째가 “클럽하우스 재수없어”다. 나는 클럽하우스에 2월 3일에 가입했고, 그렇게 주구장창 클럽하우스를 씹어대면서도 이 글을 쓰는 2월 7일까지 매일 같이 접속했다.
이 글은, 내가 클럽하우스가 재수없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한 아주 길고 정리 안 된 글이다. 뭐야 그냥 아싸 찐따의 열폭 아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사실이니까). 혹시 지금이라도 그런 생각이 든다면 얼른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길 바란다(나는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하면 눈물부터 흐르는 울보니까).
시작은 격조하였던 친구와 간만에 나눈 인스타그램 디엠이었다.
늘 관심 받고 싶어하지만 너무 본격적인 관심은 속이 메스꺼워질 정도로 부담스러워 하는 나는 SNS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의 SNS를 뭐든 다 했다. 관심도 관심인데 막내라는 이유로 늘 언니와 방을 같이 썼기에 나만의 방이 없어서일까, 인터넷 공간에서라도 나만의 공간이 생기는 일이 좋았다. 더군다나 나에게 있어 ‘나’는 굉장히 중요한 존재인데 그 공간에서는 ‘나’만 생각하고 내 얘기만 할 수 있으니까 이보다 더 완벽한 플랫폼은 있을 수가 없었다.
싸이월드? 그보다 먼저 세이클럽이 있었고, 프리챌이 있었다. 이제는 많이 무섭지만 그 당시에는 나라는 존재의 발자취가 인터넷에 남고 사람들이 그걸 볼 수 있다는 게 재밌었던 것 같다. (그걸 인지할 만큼의 지적 능력이 발달된 나이는 아니었지만 꿈보다 해몽이니까..) 사람들이 내가 남긴 발자취에 웃고 반응을 남겨주는 게 좋아서 늘 새로운 발자취를 남기려 애썼다. 그렇게 도토리 경제 생활을 보내고, 2010년에 페이스북에 가입했다. 그때는 내가 고3이었고 페이스북이 막 한국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 거기엔 멋진 사람들이 많았다. 담벼락에는 그들의 화려한 이력들이 빈틈 없이 적혀 있었다. 성숙하지 못했던 어린 수험생에게는 그게 마냥 부러웠다. 그래서 다짐했다. “나도 꼭 내 바이오에 명문대를 걸어 놓겠어” 오바 좀 보태어 날 대학에 보낸 건 페이스북 덕이 2할 정도 된다.
그렇게 페이스북으로 대학 시절을 보내던 중, 인스타그램이 등장했다. 아마 2014년쯤 가입했었던 것 같다. 슬슬 바이오 꾸미기 및 페이스북을 통한 커리어 네트워킹에 신물을 느껴 페이스북 바이오를 모두 지웠던 나는 그렇게 인스타그램으로 둥지를 옮겼다. 지금도 많지만 그때 인스타그램에는 정말 멋진 사람들이 많았다. 페이스북은 쌍방으로 친구를 맺어야 했는데 인스타그램은 내가 팔로우만 하면 그 멋진 사람들의 포스트를 받아볼 수 있었다. 반대로 내가 멋진 콘텐츠를 만들면 만들수록 사람들은 나를 팔로우할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해, 나 스스로가 콘텐츠가 되는 거였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극도로 소심한 관종이라, 이런거에 미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너무 노골적인 건 싫었다.
당시에 나는 진로로 고민을 많이 하던 시절이었고, 나름의 결정을 하고 난 뒤 고군분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갖고 싶었던 어느 직업을 가진 이들이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유명했다. 그들의 바이오엔 역시, 그 직업의 이름이 써 있었다. 나는 또 그게 갖고 싶었고 그렇게 그 직업을 갖게 됐다. 과장 좀 심하게 해서 날 취업할 수 있게 한 건 인스타그램이 5할 정도 된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인스타그램 바이오에 그 직업의 이름을 적을 수 없었다. 그런 게 다 사람들 눈 속임 같고 껍데기처럼 느껴져서.
직업을 가진 첫해의 나는 인생에서 두번째 사춘기를 맞이했다(지금도 겪는 중인 것 같다). “발가벗은 힘을 키워야지. 직업이 내가 되지 말아야지. 직업 없이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매일 밤 내게 말을 거느라 잠도 자주 설쳤다. 아마 그래서 인스타그램 바이오에 직업을 적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내 잣대로 인스타그램을 쓰고 있다. 인스타그램으로 서로 맞팔로우를 하고 있는 지인들과 오랜만에 만나면 다들 내게 이렇게 말한다. “너 인스타그램 잘 보고 있어. 근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나는 그럼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아는 사람만 알아보면 돼 ㅋ” 내가 생각해도 재수없는 일 같다.
이런 와중에 클럽하우스라는 걸 접했다. 시작부터 재수없었다. 이름도 되게 권위적이잖아. 뭔가 vip only의 느낌도 들고. 나 같은 찐따들이 주눅들기 딱 좋은 네이밍이었다. 게다가 뭔데 가입도 맘대로 못하는 거지. <부부의 세계>에서는 김희애도 전 남편이 여는 파티도 초대장 받아서 가던데 클럽하우스의 세계에서 그녀도 받았겠지(의사인데다가 고산시 인플루언서쯤 되니까 당연히 받았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원썬이 됐다. “찐따들은 안 된다?” 그런 와중에 it회사를 다니는 친구가 나를 초대해줬고 그렇게 클럽하우스에 입성했다.
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보다 더 자기를 잘 포장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을까 생각했었다.
있었다. 클럽하우스에는 정말 멋지신 분들이 많다. 클럽하우스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처럼 고정된 콘텐츠로 자신의 프로필을 꾸밀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건, 프로필 사진, 이름, 그리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바이오칸. 거기에 팔로잉 팔로워 목록, 그리고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박제된 나를 초대해준 누군가의 프로필.
클럽하우스 사람들의 바이오는 무진장 화려하다. 현재 직장부터 이전 직장까지, 본인의 취미와 관심사 같은 것들이 멋지게 써있다. 그걸 보고 있으면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이라니, 정말 매력적인 건 맞다. 실제로 궁금은 했지만 잘 알 수는 없었던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특히 재밌었다.
올해로 회사원이 된지 딱 2년을 채우고 3년차가 됐다. 이곳의 문법에 70프로 정도 적응을 한 것 같고, 다음 스텝은 뭘까 혼자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 클럽하우스 속 사람들의 화려한 바이오 그리고 그들의 네트워킹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나니 기분이 좀 많이 우울해졌다. 회사의 문법을 익히느라 몰랐던 거대한 커리어 시장,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든 경쟁력을 키우고자 하는 인간들의 야망 앞에서 나약한 나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업계 종사자들이 모여 서로의 고민과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방이었던 것 같다. 100명 정도의 오디언스들이 있었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고 자기의 이야기를 했다. 사실 당연한 거지만 발표를 하기 전 자신을 소개하며 서로가 인사하는 시간이 내게는 힘들었다. 소속을 밝히면 “어머~ 그거 만드신 분이에요? 진짜 대단하시다~ 너무 잘하시던데~”라며 서로 인정해주고 묘하게 평가하는 듯한 분위기가 나를 너무 숨막히게 했다.
나도 이곳에서 스피커로서 매력도가 있으려면 바이오에 내 직업과 소속을 적어놔야 하는 건가? 나를 포장하고 나를 소개하는 일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일만 잘하고 내실을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게 다가 아닌 시대인 거구나, 사실 알고는 있었지만 애써 흐린눈하고 무시했던 현실을 마주하니 새삼스럽게 현타가 왔다. 그래서 비어있었던 바이오를 이렇게 채워놨다.
사실 이건 내가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하게 된 고민의 영향인 것 같기도 하다. 회사에서 보낸 2년의 시간, 그러니까 몇개의 광고주들이 곧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전부가 된다는 게 좀 무서웠다. 맞다. 그놈의 “발가벗은 힘 타령”은 네버 엔딩 스토리다. 사실 그러려면 회사 일 외에 다른 아웃풋을 만들어 놨어야 했는데 그런 것도 없다. 그래서 더 소속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기대긴 싫은데 기댈 수 밖에 없는 현실, 애써 무시했지만 클럽하우스를 통해 정면으로 마주하고 나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
모든건 내가 결정하고 행동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나는 그만 우울해하기로 했다. 클럽하우스 재수없다고 실컷 욕하면서도 매일 밤마다 클럽하우스를 들락거리기로 했다. 놀라울 만큼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을지언정 혼자서 기타 연습하는 방을 열기도 하고, 친구와 술을 먹고 조금 취한 상태로 연애고민상담소(상담해주는 방 아니고 내 고민 상담해주실 분 구하는 방)를 열기도 하고 하면서 말이다. 인스타그램을 그렇게 썼듯이, 클럽하우스도 내 잣대로 쓸 거고, 재수 없다고 여기저기 욕도 계속 하고 다닐 거다! 두고봐라!!
근데 개 웃긴 건 뭔지 아세요?
제 브런치 바이오 좀 보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