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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Apr 02. 2019

제주살이 1월, 삼분의 이

1월의 첫 열흘과 마지막 열흘에는 여러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이 많았다. 그 시간만큼 많은 순간이 사진에 담겼다. 반면에 두 번째 열흘엔 사진으로 남은 순간이 많진 않다. 제주-서울-전주를 오가느라 정신이 없었던 시기이고, 특히 미세먼지도 엄청나게 심했던 날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사진으로 돌아보니 뭔가 우울한 기운이 느껴지는 장면이 많다.

전주, 전주역 | 19.01.11

대부분 결혼 전보다 결혼 후, 부모님과의 의례에 대한 의무가 강해진다. 결혼 전에는 대표적인 명절에도 집에 내려가지 않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정돈 기본이 되었다. 주변 친구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그런 의무의 강도가 덜한 편이긴 하지만, 워낙 그런 것을 싫어하다 보니 지금 정도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아버지의 환갑을 맞아 전주로 향했다. 환갑에 찾아뵙는 거야 나에게도 당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바로 이다음 주에 환갑맞이 가족여행을 가기로 한 상태였고, 1주일에 한 번씩 육지를 오가야 하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아예 안 갈 순 없기에 엄마한테 전주는 나 혼자 가겠다고 말해둔 상태였는데, 환갑을 며칠 앞두고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뭐 내용이야 뻔히 예상 가능한. 하필 그 통화를 하연이가 들어버리는 바람에, 나 혼자 그냥 다녀올 수 만도 없게 되었다. 부모님의 기대와 요구가 과한 수준은 아니지만, 종종 이런 일을 겪을 때면 이래저래 가슴이 답답하다.



전주, 우리집과 근처 카페 | 19.01.12

오랜만에 만난 조카는 훌쩍 커있었다. 할아버지의 주입식 교육에, 나와 하연이의 나이를 외우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조카는 어릴 때 나 모습과 많이 닮았다. 부디 나처럼 역변을 하지 말기를. 그나저나 내 목 정말 기네.

비수기를 제대로 즐기고자 시작한 제주살이였지만, 간혹 들어오는 일거리를 쳐내기엔 마음에 단단치 못했다. 전주를 향할 때도, 일처리를 위해 노트북을 싸들고 가서 저녁이면 동네 카페를 찾았다.


전주, 무궁화 한정식 | 19.01.13
전주, 우리집 | 19.01.14

친가 어른들과 조촐하게 환갑 기념 식사를 했다. 동네에서 꽤나 유명한 한정식집을 찾았다. 예전엔 무슨무슨 정치인이 자주 오던 그런 유명한 곳인데, 그래서 그런지 가격이 엄청 비쌌다. 그에 비해 맛은 많이 아쉬웠다. 이런 곳에서 소비하려는 음식만은 아닐 테니깐.


다음날 아침, 가족끼리 축하파티를 했다. 다음 주에 여행을 갈 테니 생일은 조촐하게 보내자는 부모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이미 전주를 오네 마네 하면서 한번 맘고생이 있었기에 빈손으로 가기 뭐했다. 하연이가 제주에서 미리 주문해둔 '해외여행 상품권' 피켓과 현수막, 토퍼 등이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이런 기념일 챙기는 일에 멍청한 남편 때문에 하연이가 매번 고생이다.


전주, 송천동 | 19.01.14

전주를 떠나기 서울로 향하는 날.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미세먼지가 만든 황량한 풍경이 펼쳐졌다. 으. 정말 싫어.


전주, 전주역 | 19.01.14

하연이가 좋아하는 전주 대표음식 중 하나인 풍년제과 초코파이. 다른 지점에 들를 여유가 없었기에, 역에 있는 매장에서나마 아쉬움을 달랬다. 기차를 기다리며 바라본 풍경. 길게 늘어선 철로와 시설물들이 미세먼지에 덮여, 마치 SF에 속 미래도시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서울, 한강 | 19.01.14

미세먼지로부터 자유로운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서울, 용산역 | 19.01.14

전주와 서울을 오가면 담은 풍경 중 제일 맘에 드는 장면. 나머지는 미세먼지가 모두 우울함으로 덮어버렸어.


제주, 제주숙소 | 19.01.15

제주 숙소에 있는 주차타워. 왜인지 저 안에 들어가는 게 무서워서 하연이가 차를 빼고 나서 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주, 카페 바람 | 19.01.15

1,2월 제주살이에서 가장 늘어난 지출은 식비. 특히 카페에서 쓴 금액 어마어마하다. 일에 집중이 안될 때나, 제주까지 내려와서 일을 해야 한다는 억울함을 느낄 때면, 좋은 풍경이라도 보며 일하자는 마음으로 카페를 찾아다녔다. 보통은 바다가 보이는 카페를 찾는데, 이날은 조금 다른 시도를 했다. 제주에서 일하기 좋은 카페를 정리해둔 글을 보고, 그중 하나인 카페 바람을 찾았다.


제주, 카페 바람 | 19.01.15

결론적으로, 일하기 좋은 카페랑은 거리가 먼 곳. 냥이들이 많아서 정신 팔기 딱 좋다. 낯을 안 가리는 녀석들이라 이렇게 노트북을 점령하기도 한다. 그리고 넓지 않은 공간에서 냥이들이 돌아다니다 보니 고양이 냄새도 꽤 강한 편. 이런 시도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제주, 윈드 스테이 | 19.01.16

바다가 보이는 카페 중 여러 번 찾게 되는 곳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이 여기 윈드스테이. 저녁에는 와인바가 되는 것 같은데, 낮에는 딱 전망도 좋고, 일하기도 좋은 카페다. 사람이 붐비지 않아서 더 좋고.


제주, 숙소 | 19.01.18

제주에는 밤늦게 까지 하는 카페가 많지 않기에, 밤에는 대부분 숙소에서 일했다. 숙소의 단열 상태를 보여주는 유하연 사장님의 작업 모습.

1월의 밤샘 작업은 스카이캐슬 정주행과 함께 했다. 하연이는 드라마가 완결이 난 다음에 보는 걸 좋아해서, 스카이캐슬도 시작을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주에 내려갔다가 엄마가 보는 스카이캐슬을 같이 보는 바람에... 그것도 하필 예서가 사라지는 장면부터... 제주로 돌아와 첫 편부터 정주행을 시작해, 나중에는 본방 끝나고 넷플릭스나 풉에 올라오는 걸 기다리며 바로바로 챙겨봤다.


제주, 카페 카미노 | 19.01.18

취향관에서 알게 된 에릭님의 사진전이 진행되고 있는 카페를 찾았다. 한적한 곳에 있어서 바람 쐬러 가는 기분이 들어 좋았고, 오랜만에 드론도 날려서 신이 났다. 하지만 역시나 일할 거리를 싸들고 갔다는 거. 1월에 일이 많은 건 아니었는데, 막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보니, 3일 걸려 끝낼 일을 1주일 넘게 붙들고 있곤 했다. 3일 만에 힘들게 끝내고 4일 동안 노는 게 나은 건지, 일주일 동안 쉬엄쉬엄 일하는 게 나은 건지는 지금 와서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제주, 카페 카미노 | 19.01.18

나중에 나도 공간이 생기면 내 취향이 담긴 잡지와 책을 가득 채워두고 싶다.



제주, 도두봉 | 19.01.20

은근히 자주 들른 도두봉 근처 해안가. 바로 앞에 투섬에서 일하기도 했고, 하연이와 일몰을 보러 오르기도 했고. 그나저나 잔 님 차는 꼬꼬마 우리 차에 비하면 엄청 근육남 느낌인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귀엽기도 하네.


제주, 숙소 앞 | 19.01.20

잔님 차를 보고 귀엽다고 생각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바로 앞에 이런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뭔가 옛날 인터넷 글 중, 제주에서 '라바카'라는 게 있어서 특별한 차인 줄 알고 빌렸는데, '라바' 캐릭터가 래핑된 차였다는 내용의 에피소드가 생각나는 차였다. 잔님 차는 남성미 뿜뿜인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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