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디카를 샀다.
1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지도 몇개월이 지났다.
여행 중에는 악착같이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괜히 렌즈니 부가장비니 욕심을 부려서 카메라 관련 짐만 20kg 가까이 되어서, 도시를 이동할 때면 미련한 나 자신을 탓하곤 했다.
한국에 돌아와선 촬영이 일이 되다 보니, 촬영일이 없는 날엔 카메라 들고 다닐 여력이 없었다. (정확히는 촬영이 없는 날엔 방구석에서 뒹굴거리는 경우가 많았지...) 촬영 때문에 카메라를 들고나간 날엔 무겁고 귀찮다는 핑계로, 촬영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질 않았다.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_ordinary_scences'. 친구들과 함께하는 스튜디오의 이름은 'Living Everyday as Finder'를 줄여서 'studion LEAF'. 온라인 상에서는 소소한 일상의 중요함에 대해 떠들어 놓고, 그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일엔 한없이 게을렀다. (한편으론 스스로 게으른 걸 알기에 이름이라도 저렇게 지어놓은 거였기도 하다.)
한국에 돌아온 후 잊지 않고 찾아준 분들 덕분에, 예상보다 일찍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다. 경제적 여유가 늘어나는 만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놓치고 지나쳐버린 일상의 순간들이 늘어갔다.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생겼을 때, 열심히 일한 나 자신에 대한 선물이자, 일상을 기록하는 도구로 작은 디카를 샀다. 물론 후자는 핑계란 걸 나도 알고, 우리 유하연 대표님도 알고,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핑계가 있는 소비가 뭔가 더 뿌듯한 기분이니까. 핑계야 나중에 현실로 만들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되도록이면 집을 나설 때, 주머니에 그 작은 디카를 넣고 다녔다.
친구들의 예상보단 조금 더, 내 바람보다는 조금 덜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3개월이 지나고 처음 넣어둔 메모리가 다 찼다.
사진들을 둘러보다, 한 달 단위로 기억나는 순간들을 정리해보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우선, 카메라를 산 10월부터.
망원시장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보는 건 흔한 일이지만, 보통은 자판기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젊은 아시아 계열의 친구들이 주였다. 요때쯤 단체관광객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연령이나 국적면에서 이전과는 조금 다른 게 신기했다.
망원살이의 가장 큰 매력은 시장과 시장 주변 가게들.
제일 자주 가는 이곳은 처음엔 한도 끝도 없이 내려가는 아보카도 가격에 깜짝 놀랐던 곳이기도.
포항에서 학교 다닐 땐, 대게를 종종 먹었는데.
서울 와선 먹은 적이 없는 듯.
2018년 키워드 중 하나였던 취향관.
입구에 태극기가 너무 오래 걸려있어서(체감 한 달 넘게 걸려있었던 느낌), 안주인들에게 물어봤더니 취향관에서 걸어둔 게 아니라고. 해 질 녘이라 뭔가 괜히 비장한 분위기네.
막 지어졌을 땐, '엘레강스'했었을까.
망원동으로 이사를 가고 나서야 집 앞 도로가 '망리단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동네 주민의 관점에선 '망리단길'은 망원시장에 비해 거의 메리트가 없다. 집돌이라서 그런가...
재미있었던 취향관 살롱 중 하나.
이태원에서 핫하다는 카페 MTL(More Than Less)에서 진행한 커피살롱.
대학교 때 하연이랑 커피스쿨 들었던 게 생각났다. 한동안 핸드드립에 빠져있었는데, 이젠 커피머신의 편리함을 이길 수가 없어...
그래도 이때가 계기였을까. 하연이가 모카포트도 사고, 1월부터 시작된 제주살이부터는 원두를 사다 모카포트 건, 클레버건 써서 커피를 즐기고 있다.
친구들 결혼식에 서브로 사진을 찍어주거나 축하해주는 의미로 영상을 찍어준 경우는 있지만, 지인의 동생 결혼식에 메인으로 사진/영상을 한 건 이때가 처음 있었다. 심지어 장소도 전라도 광주.
웨딩 쪽으로는 경험이 없는지라 예산을 높게 잡을 수 없었다. 한참 일이 몰리던 시기라 하연이와 둘이서 지방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거 치고는, 가성비가 좋은 일은 아니었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기에 친구 결혼식 찍듯 할 수 없기에 부담감은 가장 컸던 일이기도 하고.
일반적인 웨딩홀 결혼식이 아니어서 동선도 특이했고, 주례가 없다 보니 식 자체가 짧아서 원하는 장면을 건지기가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신랑 신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었지만, 촬영부터 편집까지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던 일. 하연이와 다시는 웨딩 본식작업은 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웨딩작가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이날 수고한 우리에게. 별이 다섯 개.
집에 있을 때, 카메라를 거실에 꺼내 두었더니 진이가 잘 가지고 놀았다.
친한 친구들만 볼 수 있는 정신없는 상태의 거실 풍경. 일이 바쁠 땐 보통 저 정도. 저보다 더 어질러진 경우도 많았다.
박진 작가님의 취향은 극단적 클로즈업인가. 메모리를 보다 보니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의 극단적 클로즈업 사진 겸 굴욕사진들이 많이 찍혀있었다.
재은의 소개로 진행하게 된 환경정의연대와의 작업. 클라이언트가 외부와 영상작업을 진행한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나 넉넉한 예산확보가 어렵다는 점 등을 듣고, 주변 친구들은 안 하는 게 나을 거 같다고 한 작업이었다.
실제 진행에서는 담당자분이 세심하게 잘 챙겨주셔서 뭔가 뿌듯했던 작업. 이런 담당자를 만나면 부족한 내 실력이 아쉽다고 느낀다. 뭔가 내 실력이 좀 더 출중(?)했다면 결과물도 더 좋게 나왔을 테지만, 언제나처럼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업했다.
카메라에 가장 많이 담긴 장면은, 취향관을 다녀오는 길의 풍경들.
보통 늦은 오후에 가서 배가 고파지는 저녁이면 돌아왔다. 덕분에 해 질 녘 풍경이 꽤 담겼다.
박진&이영건 하우스 계약하던 날. 우리가 망원동에 자리 잡고 나서, 망원동으로 이사 오는 친구들이 생겼다. 진이야 거의 매일 집에 놀러 오던 친구니 이사 오는 게 당연스러웠다.
나 다음으로 이 디카를 가장 많이 가지고 놀았을 박진. 사진에 담긴 수많은 굴욕사진의 주인공을 대신하여 복수의 사진을 올린다.
집 뒤 주차장 떨어지는 빛과 그림자가 참 좋다. 하연이가 저런 그림 자를 일본어로 뭐라고 한다고 했는데... 기억이 안 나네.
2018년 가장 많이 갔던 곳 중 하나. 재은이 '비전화공방'의 사진/영상 일을 맡겨준 덕분에 주 1회씩은 이곳을 찾았다. 전 직장과 동료들이 남아있는 곳이라 뭔가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기도.
취향관 살롱. 10-12월 중에는 일이 워낙 바빠서 살롱을 많이 듣지 못했다.
그래도 취향관에서 만난 인연들이 소중하기에 후회는 없다.
아마 이 사진들도 박진의 기록인 듯. 내 사진은 저 스티커 문구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나.
유하연 씨 2018 잇템인 아이패드 프로. 내가 너무 크다고 놀렸지만, 하연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잘 활용했지.
상점 안에 들어간 주인을 기다리던 강아지. 고놈 참 영리하군.
여행 중 만난 인연. 핵인싸 병준 씨. 한동안 우리 집에 머물렀다.
병준, 재곤 등 여행 중 만난 친구들이 집에 며칠씩 머물곤 했는데, 하연이는 나중에 여유가 되면 장기 여행 후 한국에 돌아온 친구들을 위한 게스트룸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공중전화?! 저 건물 1층은 약국이랑 카페인데. 2층에서 달아둔 간판이려나.
경태-보은 부부(이때는 예비부부)가 놀러 와 점심을 먹었다. 망원동에는 핫한 식당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핫하다는 코브라파스타 클럽. 전날 일정 시간이 되면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예약을 받는 시스템으로 한 타임에 한 팀만 받는다. 유하연 사장님의 예약 신공이 빛났다. 개인적으로는 파스타보단 블루베리치즈피자가 맛있었던 기억.
올해 가장 기쁜 소식 중 하나인 경태의 결혼. 강릉으로 1박 2일 여행 겸 떠난 스냅사진작업도 재미나 결과물 모두 만족스러웠다. 결과적으로는 광주 결혼식 이후 본식스냅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경태의 결혼식이라 거절하지 못했다. 대신 사진/영상 모두 하는 건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사진만 찍었고, 지금은 하연이의 보정작업이 남은 상태.
힙한 동네 세탁소. 입구에서부터 힙한 기운이 풍겨 나와 가까이 가기 어려웠다.
아직도 5천 원대의 '남성 커트'가 가능하다니. 하지만 시도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달라라 제안으로 참여하게 된 FGI 덕분에 위워크를 찾았다. 뭔가 위워크 같은 분위기의 공간엔 거리감을 느껴왔다. 방문해보니 역시나 내가 등록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 그래도 전면 유리 너머로 보이는 뷰만큼은 끝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