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쯤 스페인 세비야에 도착했다. 내리쬐는 햇살과 함께 길거리에는 야외테이블이 즐비하다.
"이 분위기 뭐야? 나도 저기서 밥 먹을래!!!"
야외테이블에서 낭만과 자유가 넘치는 느낌을 뿜어내며 식사하는 사람들을 보며 환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곳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 나도 이 햇살을 즐기는 여유 넘치는 사람으로 변할 것만 같았다.
"그래. 한 끼 정도는 우리도 밖에서 먹어보자."
짐을 풀자마자 나와 세비야에서의 첫 끼를 먹기 위한 식당을 선택했다.
우리가 고른 식당에도 역시나 야외테이블이 있었다.
지금이다. 스페인을 느껴볼 시간.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종업원에게 야외테이블에 앉아도 되냐고 물어봤다.
"아니요. 저기 예약자 석이야."
아쉬웠지만 아직 먹을 끼니는 많이 남았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며 내부 테이블에 앉았다.
내부테이블에서도 바깥에서 먹는 사람들이 괜히 부러웠고, 앉지 못해서인지 야외테이블에 대한 환상은 더 커져만 갔다. 원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은 괜히 더 커지는 법이니까.
내가 갖고 싶은 마음이 50%도 안 됐던 물건이 품절됐다고 하면 괜히 그 물건을 갖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더 커지는 심리랄까.
밤이 되고 나니 식당들은 더 활발하게 영업을 시작했다. 한국의 익선동에서 느꼈던 그런 비슷한 분위기랄까. 그 나라의 저녁 문화 같은 분위기. 물론 테이블 위에 메뉴는 매우 다르지만. 삼겹살, 갈매기살 대신에 작은 타파스 그릇들이 올려져 있었고 소주대신에 와인, 맥주잔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관광지여서 그런지 야외테이블이고 실내테이블이고 자리가 많지 않았다. 밤 10시인데 이 사람들 우리나라사람들보다 더 신나게 놀고 있는 것 같다. 이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나도 합류하고 싶었다. 하지만 첫째 날 밤은 분위기만 즐기기로 했다. 애매한 시간에 식사를 너무 거하게 하기도 했고, 내일이 있기 때문에 아쉽지 않았다.
다음 날, 오늘은 꼭 야외테이블에서 여유를 즐겨보겠어. 하고 다짐하고 여행을 시작했다.
바로 보이는 카페 야외테이블에 앉아보았다.
'앗 뜨거워......' 낮의 야외테이블은 해를 바로 맞는 곳이었다. 심지어 우리가 고른 곳은 차양막도 없는 곳.
앉은 지 1분이 채 되지 않아 나는 나의 로망을 번복한다.
"안으로.... 들어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이없는 듯이 웃으며 자리를 옮겼다.
유럽 분위기에 편승하기 쉽지 않다. 우리의 첫 번째 로망실현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다음날 저녁, 다시 야외테이블에 앉았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취해 타파스와 맥주를 주문했다.
'캬~ 이거지! 이게 스페인이지!'하고 신날것만 같았는데 너무 늦은 시간에 앉은 우리는 여행으로 지쳐있었고,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그리고 이 시간에 해외에서 돌아다녀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아직 가지고 있었던 상태. 야외테이블에 앉긴 했는데, 처음 기대했던 그 느낌이 나지 않았다.
아쉽다.
해가 없어서 그런가?
야외테이블에 로망을 갖고 계속 앉기는 하는데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지.
여행 마지막 날, 날씨 좋은 낮에 다시 재도전을 했다.
뜨거운 태양 때문에 한 번 실패한 경험도 있겠다, 이번에는 차양막이 쳐진 야외테이블로 능숙하게 착석했다.
메뉴판을 받자마자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밥을 먹으러 갔는데 옆 테이블에서는 이미 식사를 끝낸 중년들이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아..........
잠깐만 피고 끝날 줄 알았지만 담배 연기는 공기를 타고 우리 테이블로 계속 넘어온다.
이번에도 종업원을 부른다.
"자리를 옮겨도 되나요....?"
여행을 하다 보면 그곳에 대한 나만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약간의 상상과 로망을 더해서. 그리고 나도 그곳을 흠뻑 느끼기 위해 그 이미지 속으로 들어가기를 시도한다. 그것이 생각과 다를 수도 있지만 이런 낯선 것을 경험하는 것조차 추억이 되는 게 여행이 아닐까? 해보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 아쉬움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아쉬움 때문에 방문했던 여행지를 다시 찾는 일도 있지만.
다음에 스페인에 가게 된다면 나는 분명 또다시 야외테이블에 앉을 것이다.
그곳에 계속 앉아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실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나.
내가 처음에 기대했던 그 로망이 이번에는 실현될지.
맛집에 갔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먹는 것을 포기하고 몇 번을 다시 가서 결국 그곳의 음식을 먹었을 때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도 그 호기심은 먹어야 사라지니까 일단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행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