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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와샐리 Apr 24. 2024

65만원짜리 피검사를 했다.

니프티 검사를 아시나요?

임신 16주 차가 시작되었다.

심하진 않았지만 날 괴롭히던 입덧도 이제 끝물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젠 움직일 힘이 나고 움직이고 싶어졌다.

친구들이 이제 '임신 황금기'를 즐기라고 한다.

꺄!

임신 황금기라니!

생명을 품고 있는 것 자체도 벅차고 놀라운 일이지만 지금까지 사실 그것을 느낄 겨를은 없었다.

성별도 알게 되어서 핑크색 옷을 입고 친정집을 방문해 깜짝으로 성별을 공개하는 소소한 이벤트도 해 보았다.

나의 남편은 스스로 '남자 중에 남자'라고 말하는 사람인데, 내 뱃속에 있는 아가가 딸이라는 이유로

평생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다는 '핑크색'옷을 과감히 입어줬다.

우리 닮은 딸이면 얼마나 예쁠까?부터 행복한 상상을 시작했다.

어디는 아빠를 닮았으면 좋겠다! 여자 아이면 이름은 뭐로 지을까?

상상만 해도 사랑스럽고 행복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 와중에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왔다.

'아, 저번 진료 때 2차 기형아 검사를 하고 왔었지.'

"기형아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다운증후군 진단 결과가 62:1 고위험군으로 나왔어요. 병원에 내원하셔서 추가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비용이 좀 많이 들긴 하는데 다시 검사하면 저위험으로 많이 나오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고. 오늘이나 내일 방문하실 수 있으세요?"

"오늘 갈게요."

너무 놀라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근무 시간이었지만 일단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로 들은 내용을 전달하고 화장실에 앉으니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아는 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으니 인터넷 검색을 시작한다.

검색해 보니 추가 검사로 저위험군을 받은 사람들의 글이 훨씬 많았다.

나보다 더 적은 비율의 숫자를 받으신 분들도 추가 검사 이후 저위험군으로 확정받았다는 글이 보였다.

물론 나보다 낮은 확률이었지만 확정을 받았다는 글도 있었다.

흐르는 눈물은 멈추질 않는다.

사실 아직까지는 아기를 갖고 나서 내 안에 아기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보내지는 못했다.

이제 조금씩 나오려는 배를 보고 '와 진짜 아가가 이 안에 있는 건가?' 하면서 늘어나는 주수만 신기해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고 나서 걱정과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걸 보니 나도 모르는 본능적인 모성애가 발동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뱃속에 있는 아기를 그냥 당연하게 생각했었지만 생각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느끼게 되었다.

모든 일에 당연한 건 없다. 내가 너무 교만한 생각으로 지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내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남편은 나에게 달려와줬다.

회사에서 복무처리를 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남편을 보고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도 병원이 가깝고 우리의 회사가 다 가까워서 바로 병원으로 함께 달려갈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담당 선생님은 고위험군으로 나왔지만 확률이 아주 높은 건 아니라고 하셨다.

하지만, 또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확률이 낮은 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니프티검사를 하면 99%의 확률로 정확하게 결과를 볼 수 있다고 하니 정밀하게 다시 검사를 하기로 했다.

-니프티검사는 주로 만 35세 이상의 고령 산모에게 추천되고, 간단한 혈액검사로 염색체 이상의 결과를 양성과 음성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검사이다.-

남편과 함께 기다리면서 괜히 괜찮아 보이려고 게임을 했다.

게임이 너무 고마웠다.

병원에선 울지 않고 검사까지 잘 받고 나왔다.

모든 간호사분들이 괜찮을 거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건네신다.

'따뜻한 차라도 드릴까요?'라는 말이 나에겐 너무 따뜻하게 느껴진다.

결과는 2주 정도 걸린다고 했다.

아마 살면서 가장 길게 느끼는 2주를 보낼 것 같다.

65만 원짜리 피검사를 하고 나니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임산부 바우처 100만 원이 동이 났다.

살면서 해본 검사 중 가장 비싼 검사였지만 가격이고 뭐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 아가를 건강하게 만나고 싶다는 생각뿐..

어제부터 먹고 싶었던 비빔쫄면을 먹으러 갔다.

남편에게는 멋진 척하면서 '걱정한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좋은 생각만 하면서 기다리자!'라고 말했지만 눈에서는 또다시 눈물이 흐른다...

쫄면 먹다가 눈물 쏟아내는 사람이 되었다.

밥을 먹고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는 장소인 동네 공원으로 가서 또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은 금방 또 찾아온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또 어김없이 눈물이 흐른다.

내가 걱정하면 아가도 걱정할 텐데 나는 아직 이런 감정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고수가 아니다.

"아가가 지금 최고로 우리 맘고생 시키는 걸 거야! 얼마나 착하게 태어나려고 그러는 거야~"

라고 괜히 이야기를 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평일 대낮에 나무 밑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기분 전환이 되기도 한다.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현재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고 아가에게 걱정이 전달되지 않도록 하는 것뿐.

확률로 따지면 1.6% 정도인데 이 확률은 아닐 확률이 훨씬 높은 수치 아닌가!

나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 100명이 넘는 경쟁률에서 살아남은 적도 거의 없지 않은가!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좋지 않은 생각이 나를 잡아먹지 않도록 더 열심히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일을 하면서 지내야겠다.


우리에게는 분명 좋은 결과가 올 거야.

미리 걱정하지 말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도 있잖아?

이 일을 겪으면서 모든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모든 순간에 겸손히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그리고 바라던 결과가 아니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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