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나는 매일 우버를 탄다 (1)

2020년 10월의 기록

by 바다에 내리는 눈

"홍콩에 가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스위스에 산후조리원이 있겠는가, 배달 음식이 있겠는가. 노산으로 피를 흠뻑 쏟고 죽다 살아났는데 애 낳고 퇴원한 그 날부터 청소기 밀고 세탁기 돌리고 설거지한 것이 서러웠던 나는 홍콩이 천국일 줄 알았다. 물가도 스위스보다 쌀 테고 배달 음식 종류도 다양할 테니 다 시켜 먹어야지, 어린이집 스쿨버스가 애 픽업까지 다 해 준다니 드디어 내 인생에 광명이로구나, 의기양양해져서 주변인들에게 자랑하고 홍콩에 가면 가사 노동을 작파하겠노라 선언했었다. 나처럼 물정 모르는 아줌마들의 부러움을 뒤로하고 그렇게 홍콩에 와서 보니 현실은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모든 가정에 헬퍼가 있다는 가정 하에 짜인 어린이집 일정은 헬퍼가 없는 나로서는 맞추기 힘들 때도 있고 특히 스쿨버스가 문제였다. 아이가 나와 떨어져 낯선 이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등교할 수 있을까 걱정되어 첫날 같이 타 본 스쿨버스는 이 아파트 저 아파트 돌며 아이들을 태우고 우리 아이를 가장 마지막으로 학교에 내려다 주다 보니 택시로 15분이면 갈 거리를 (아무리 비가 와도 그렇지) 1시간 반이 걸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빈 속으로 버스를 탄 두 살배기는 토할 것 같다고 마스크를 자꾸 벗으며 괴로워했다. 속이 안 좋다는 아이의 손을 주물러 주며 그 날 같이 타 보면서 느낀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스쿨버스는 답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콩 스쿨버스 회사들의 '환불 불가' 정책은 절대적이어서 이미 몇 달 치를 완납한 스쿨버스 비용이 아까웠지만 (진작 스쿨버스 노선이 이렇게 길고 힘든 것임을 말해 주지 않은 학교를 원망했으나 홍콩에서 아이들이 한 시간씩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는 건 예삿일이란다) 결국 아침마다 내가 아이와 우버 (Uber)를 타고 등교하기로 했다. 이 모든 상황이 내 팔자가 편하면 큰일 날까 봐 하늘에서 내려다 보고 친절하게 놔둔 걸림돌인가 싶어 서운했다. 급하게 마시면 체하니까 냉수 위에 띄운 나뭇잎처럼 아시아의 편안함에 너무 빨리 익숙해지지 말라는 걸까.


집에서 조금 더 가까운 어린이집으로 옮길 생각도 해 보았지만 곧 포기했다. 새로 학교를 지원한다는 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콩의 교육열이란 엄청난 것이어서 3살부터 명문 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고 실제로 지원을 해도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다행히 2살이어서 그런 경쟁까진 아니었지만 요식행위일지라도 일종의 입학 심사과정이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대면 인터뷰가 불가능하니 현재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잘 노는지 비디오를 여러 편 찍어 보내고, 현재 어린이집 교사로부터 추천서와 발달상황 리포트를 받아 내고, 부모가 지원서를 쓰란다. 지원서에는 5가지의 서술형 질문이 있었다. '1. 당신의 교육관과 우리 학교의 커리큘럼이 어떻게 매칭 되는가?' '2. 장기적인 아이를 위한 진학 계획은 무엇인가?' 등... 응? 그런 거 없는데요? 그냥 어떤 상황을 맞으면 좀 힘들 순 있겠지만 금방 마음을 다잡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데요? 난감했지만 그래도 1만큼 알아도 100만큼 늘려 써서 논문 분량 채우기에는 자신 있는 박사 엄마의 실력을 발휘해서 겨우 지원서를 작성했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스위스에서 다녔던 어린이집이 우리가 살던 아파트 1층에 있는 가정식 어린이집이라 좋게 말하면 유연하게, 사실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된지라 원장이 특별히 호의를 베풀어 비디오며 추천서며 제공해 줬지만 다른 스위스 로컬 어린이집을 보냈으면 턱도 없는 요구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어린이집을 스쿨버스 때문에 포기하다니...... 그럴 순 없지. 게다가 기질이 예민하여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아이에게 또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미안해서 결국은 이 학교에 머무르기로 한 것이다.


홍콩 풍경의 상징 같은 빨간 택시를 타고 다닐 수도 있겠지만 한 두 번 타 본 택시는 아이와 타기에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간이 카시트를 설치하기 전에, 심지어는 문을 제대로 닫기도 전에 성미 급한 택시 기사들은 출발하곤 했다. 한 번은 미터에 쓰여 있는 요금보다 훨씬 더 달라고 요구했고 (그러지 않았어도 팁을 줬을 텐데) 다른 한 번은 톨게이트 요금을 몇 천 원 더 비싸게 말하면서 요금을 올려 받았다. 톨게이트에 뻔히 요금 액수가 쓰여 있었는데도 내가 여기 산지 얼마나 오래된 외국인인지 슬금슬금 대화를 통해 알아보던 기사가 신참이란 걸 알고 당당하게 거짓말한 것이다. 알면서도 속는 기분은 정말 좋지 않았지만 고작 몇 천 원에 내 눈치를 보며 속일지 말지 간을 보던 기사가 어쩐지 안쓰러워 나는 달라는 대로 돈을 지불했다.

20-10-31-16-06-10-321_deco.jpg 'This is Hong Kong: A Children's Classic' 중에서

스위스에서는 콜택시를 부르면 부른 사람도 늦지 않고 기사도 약속한 시간에서 1초도 늦지 않는다. 스위스 국민성이 정확해서가 아니라 모든 게 돈, 돈이기 때문이다. 밑에 도착했다고 전화를 건 택시 기사에게 아이와 함께 준비하느라 조금 시간을 지체할 수도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하면 스위스 택시 기사는 너무나 기분 좋게 '천천히 준비하시오' 한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1분에 5천 원 이상, 거의 만 원씩 미터 요금이 올라간다고 예약할 때 이미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위스에서 숨만 쉬어도 지불해야 하는 겨우 그만큼의 돈에 양심을 파는 홍콩의 택시기사가 안쓰러워 그 후부터는 또 다른 택시기사를 시험에 들게 하지 않기 위해 내가 이 곳 지리에 익숙해지고 덜 어수룩해 보이고 흥정에 능숙해질 때까지 차라리 조금 더 비싸더라도 기사를 부를 때 요금이 확정되는 우버를 타는 게 낫겠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아이와 우버를 타게 되었다. 엄마와 자식은 아침마다 우버를 타고 다니는데 아빠는 왕복 요금이 천 원도 안 하는 배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 아, 당신도 가시고기였구나. 내 팔자에만 걸림돌이 있는 게 아니네. 나와 아이가 당신의 물그릇 위에 동동 뜬 나뭇잎인가 보오.

20-10-31-16-07-36-517_deco.jpg This is Hong Kong 책의 스타페리호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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