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홍콩으로 원래 올해 초 이사 오기로 계획하였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상황이 바뀌어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불투명해졌다. 이미 주변에 간다고 다 말해 놓고 (다행히 환송회 같은 것은 하지 않아서 창피를 면할 수 있었다)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도 홍콩 가서 그만둔다고 말했는데 그 후로도 오랫동안 동네 놀이터나 마트에 내가 출몰하니 멀리서 나를 본 어린이집 원장은 오해했다고 한다. 그만두고 싶은데 미안해서 핑계 댄 것으로.
여차 저차 하여 9월에 가는 것으로 정해져 여름의 끝자락에 살던 집에서 이사 나오고 짐은 다 창고로 보냈는데 비행기표를 구할 수 없었다. 2살짜리 아이가 있으니 장거리 비행 시 고려할 것들이 많았다. 낮 비행기를 타서 깨어 있는 동안 내내 칭얼대거나 시끄럽게 굴면 민폐일 테니 무조건 밤 비행기를 타자, 해서 밤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찾아 표를 사면 코로나 시국에 타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인지 번번이 취소되었다. 처음엔 경유지에서 헤맬 것이 두려워 이미 가 본 적이 있는 파리 공항이나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경유하는 비행기만 알아보았는데 나중엔 두바이든 암스테르담이든 어디든 상관없으니 '그저 밤 비행기가 있어만 다오' 하는 심정으로 내 겁쟁이 기질을 포기하고 억지로 담대해져야 했다. 마일리지가 적립되는 항공사나 기내식이 맛있는 항공사? 평소라면 중요했을 그런 물질적인 요소들은 너무나 하찮은 것이어서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결국 나중엔 유럽 전체에서 홍콩으로 떠나는 밤 비행기 자체가 없어져서 '애가 깨어 있는 동안 제발 조용히 잘 있기를, 귀 아프다고 울지 않기를,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면서 낮 비행기표를 찾아 보았다. 인력으론 대비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하늘의 섭리에 맡기는 마음이 된 것이다.
그렇게 낮 비행기를 고르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을 잊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마스크 착용 의무 여부. 어떤 항공사는 신생아든 두 살 이하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마스크나 페이스 실드를 기내에서 착용해야 하는 규칙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이야 홍콩 어린이집에서 모두가 쓰고 있으니 자기도 써야 한다는 압박감 (피어 프레셔 Peer Pressure)을 받아서 그런지 마스크를 잘 쓰지만 그때만 해도 스위스 시골에서 흙 퍼먹고 살던 천둥벌거숭이라 아무리 미리 연습을 해도 이 녀석이 5초 이상 마스크를 쓰질 않았다. 페이스 실드를 사려고 했더니 아시아에서는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유아용 페이스 실드 모자가 스위스에서는 찾기가 얼마나 힘든지. 결국 2살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항공사를 선택하다 보니 경유 시간이 빠듯해졌다. 어른끼리라면 한두 시간도 충분하지만 애가 끼어 있으면 정말 별의별 상황이 다 일어나기 때문에 한 시간 반 정도의 경유 시간이 너무 짧지 않은가, 하는 마음에 불안했다. 예전에 KBS의 장수 예능 프로그램 '안녕하세요'에서 별별 기막히고 우스운 사연들을 소개할 때 준비성이 너무 철저한 아버지를 둔 사람이 보낸 편지가 기억에 남는데 자기 아버지는 해외여행을 가면 공항에 비행기 출발 7시간 전에 가 있는다고, 5시간이나 3시간 전에 가 있으면 늦었다고 불호령을 내린다는 사연에 소개하던 진행자나 방청객들이나 다 큰 웃음을 터뜨렸었다.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늘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준비해야 하는 내 성향 상 아이와 함께 하는 비행에서 짧은 경유 시간은 염려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비자가 안 와서 3일이면 될 줄 알았던 호텔살이가 일주일이 되도록 떠날 수 없었다. 홍콩은 코로나 관련 대처를 엄격하게 하기 때문에 (내 생각엔 세상에서 제일 빡세게 하는 것 같다) 그때도 공무원들이 반 이상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 평소보다 비자 발급이 늦어지는 모양이었다. 가서 살 집이 있고 비행기표가 있으면 무얼 하나. 비자가 있어야 입국을 하지...... 덕분에 생각지도 못하게 시간이 생겨 바빠서 못 보고 가는 줄 알았던 지인들에게 연락하니 '아직도 안 갔어?' 하며 놀라다가 호텔방에 놀러 와 '너 이러다가 영영 안 갈 것 같아' 즐거워하며 뒤늦게 환송회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한 번만 더 출국 날짜를 미루면 꽤 큰 액수의 돈을 항공사에 물어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러서 '내일까지 비자가 배달 온다고 믿고 모레로 잡힌 출국일을 변경하지 말기로 하자!'는 배수의 진을 쳤더니 기적적으로 비자가 정말로 그 다음날 와서 드디어 출국을 하게 되었다.
홍콩에 도착하니 그래도 유모차 탄 아이랑 같이 있다고 제일 첫 순서로 서류도 작성하게 해 주고 코로나 검사도 하게 해 주어 생각보다 빨리 1시간 만에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공항 대기실에 자리 잡았다. 이제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지금 시국에 입국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공항에서의 절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불안했는데 다행히 페이스북에 홍콩 입국자 모임이 있어 거기 가입하여 입국자들의 후기를 읽고 나름대로 철저하게 대비를 했다. 대기시간이 길어서 아이들이 힘들어하니 침낭을 준비하는 게 좋다는 후기를 읽고 아이 침낭은 펌프로 공기를 주입하는 것까지 샀는데 어른들 것까지 사자니 짐이 부피가 너무 커져서 도저히 들고 올 수가 없는지라 나와 남편은 맨바닥에 드러누워 기다리느라 힘들었지만 아이가 편하게 자는 걸 보니 뿌듯했다. 그런데 운 좋으면 5, 6시간, 길어야 10시간이면 된다더니 10시간이 넘어도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바로 나가기 위해 이미 9시간이 지났을 때부터 침낭의 공기를 빼고 짐을 다 싸 놓고 기다렸는데 공항 직원들이 다른 사람들에겐 결과지를 주면서 가라고 해도 우리 가족에겐 찾아오지 않았다. 공항에서 버티기 위해 싸 온 과자도 동이 나고 애는 배고프다고 울기 시작하고 이럴 때를 대비해서 싸 온 이유식을 데우기 위해 뜨거운 물을 찾는데 분명히 페이스북 후기에는 뜨거운 물을 나눠 준다고 했는데 그 새 방침이 바뀌어서 이젠 안 나눠 준다고 하여 그냥 차가운 이유식을 먹였더니 애는 맛없다고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계속 배고프다고 칭얼댄다. 사회적 거리두기 규칙 때문에 개인마다 사방 1.5미터의 공간을 주고 표시한 곳을 벗어나지 말라는데 출국 게이트의 통유리창 너머로 자신이 좋아하는 비행기들이 서 있으니 아이는 가까이서 보겠다고 뛰어다니고 나는 잡으러 다니면서 스태프들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애는 왜 비행기를 보면 안 되는 것인지 이해를 못해 울고 나도 속으로 울고. 14시간이 넘어 드디어 하얀 방호복을 입고 우리 가족의 코로나 검사 결과지를 들고 오는 공항 직원의 모습이 복음을 들고 오는 천사처럼 보였다. 검사를 제일 먼저 마쳐서 운이 좋다고 하이파이브하며 명당 복도 자리에 터를 잡고 아이 침낭에 열심히 공기를 넣고 퍼질러 자면서 기다렸는데 결과는 제일 늦게 받아 모두가 떠나고 텅 빈 게이트를 빠져나와 우버를 불러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다 되었다. 앞서 가는 줄 알았더니 가장 나중 되는 경험을 한 셈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날이 코로나 사태 이후로 가장 많은 입국자 수를 기록한 날이었다고 한다. 홍콩으로 오는 것을 미루고 미루던 사람들도 다 우리처럼 하반기가 시작되는 9월 1일에는 들어와야 하는 사정으로 한꺼번에 그 전 주 금요일에 들어왔던 것. 그렇지, 내가 뭐 특별할 것이 있겠어. 다 나와 같은 사정이 있고 다 나처럼 생각해서 움직이는 거지......
14시간을 기다린 홍콩 공항 바닥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요즘 내 맘대로 시간을 쓸 수 없어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다. 중국어 과외를 저녁 7시에 커피숍에서 하려는데 빡세게 관리하는 홍콩 정부에서 이제는 저녁 6시 이후부터 식당에서 취식 금지라고 다 닫으라고 해서 할 수가 없다. 선생은 낮에 시간이 안 되고, 저녁에 우리 집에서 하자니 애가 있어 할 수 없다 (엄마가 집에 있는 걸 알면 아무리 아빠가 봐줘도 자꾸 엄마가 있는 데로 오려고 하는 2살). 어린이집은 열었다가 닫았다가, 종일반 했다가 오전반만 한다고 했다가, 일주일 단위로 지침이 바뀌어서 나는 잡혀 있는 약속들을 취소하고 변경하기 위해 여기저기 일일이 전화 걸어야 했다. '도대체 내가 되는 시간에 내 계획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 분통을 터뜨리는 순간이 늘어났다.
그런데 C.S. 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말했다. 인간들은 단순히 불행이 닥쳤다고 분노하는 게 아니라 그 불행이 권리의 침해로 느껴질 때 분노한다고.
... 제 마음대로 쓸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시간을 느닷없이 빼앗겨 버리는 것만큼 화내기 쉬운 상황은 없다. 뜻하지 않은 손님이 왔다거나 (한적한 저녁시간을 보내길 고대했는데), 친구의 아내가 마구 수다를 떤다거나 (친구와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하는 작은 일들이 환자의 절제심을 무너뜨리지. 이 일 자체만 놓고 본다면야 네 환자도 이런 사소한 결례를 참지 못할 만큼 무자비하거나 나태한 인간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가 화를 내는 이유는 자기 시간은 그야말로 자기 것인데 도둑맞아 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러니 너는 열심을 다해 '내 시간은 나의 것'이라는 그 기묘한 전제가 환자의 마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꼭 틀어막아야 한다. 마치 자신이 하루 24시간의 합법적인 소유자로서 매일의 삶을 시작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라구.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은 자기 재산에서 억지로 떼어 주어야 하는 부담스러운 세금으로 여기게 하고, 종교적 의무들에 할애하는 시간은 너그러운 기부금으로 여기게 하거라. 단, 이런 차액들을 제하기 전의 전체 시간은 '어떤 불가해한 의미에서 내가 타고난 개인적 권리'라는 믿음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1]
그렇지, 내가 뭐 특별할 것이 있겠어. 다 나처럼 자기 시간은 자기 것인데 도둑맞아 버렸다고 생각해서 화가 나는 거였구나. 그게 인간이란 환자의 병명이로구나. 자기 시간은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는 정신 질환. 그러고 보니 내 시간은 한 번도 내 것인 적이 없었다. 직장을 다닐 때도 학교를 다닐 때도 나는 나보다 강한, 더 높은 곳에 있는 타인의 명령에 의해 지배되는 시간을 살았다. 그들이 시키는 일을 하고 그들이 시키는 공부를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학교를 졸업하고 가정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내가 낳은, 나보다 작은 녀석에게 시간을 지배받는다. 애를 키우면 똥이 마려워도 마려운 순간에 똥을 쌀 수 없다.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우는 분리불안을 겪는 돌 무렵에는 TV를 틀어 주고 화장실에 가도 우니까 애를 무릎에 앉혀 놓고 변기에 앉아 있으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존엄성이 무너진 것 같은 참담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나도 배변하고 싶을 때 배변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고 싶다!' 육아가 힘든 어떤 날은 19세기의 페미니즘 희곡 '인형의 집' 주인공 노라를 100퍼센트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라는 애를 셋이나 낳은 가정주부로 나오는데 그렇다면 애들 키우는 동안 당연히 배변권을 수 차례 침해당했을 것이고 '그러니 가출하고도 남지, 똥을 그렇게나 참았을 텐데!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혹자들은 용기를 주기 위해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공평하게 24시간을 가졌다고, 시간 앞에서는 장사 없다고 하는데 그것도 거짓말이다. 시간이란 재화는 인간에게 단 한 번도 공평하게 분배된 적이 없었다. 바쁜 사람은 늘 쫓기듯 바쁘고 어떤 사람은 남의 시간을 도둑질해서 한가하게 살아간다. 강자든 약자든, 완전 남이든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든 다른 사람이 내 시간을 앗아 가면 나는 분통을 터뜨리는 인간이다. 분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내 시간의 소유권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주권자에 있음을 인정하기.
얼마 전 밤에 애를 재워 놓고 어두운 방에서 블루라이트에 시력을 내어 주며 핸드폰으로 전자책을 읽었다. '막막한 내 인생에 운명은 어디 있는가, 앞길이 열려 있는가 막혀 있는가' 묻고 싶은 마음에 '나의 데스티니 찾기'라는 제목을 단 책을 읽는데 이 책이 글쎄, 나를 배반하면서 듣고 싶은 말이랑 영 반대되는 소리를 한다.
노아가 순종에 대해 가르쳐 주는 세 번째 교훈은 40일을 위한 40년이다. 노아가 몇 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어떤 이는 창세기 6장 3절을 근거로 120년이라 하고, 어떤 이는 그보다 짧았다고 한다. 정확한 기간이 얼마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40년 이상 방주를 만들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시 말해 노아는 40일간의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 40년 이상을 준비한 것이다! 데스티니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2]
지금부터 40년을 더 기다리라고? 이건 나의 장수를 예언하는 건가? 여든 살이 넘어서 데스티니를 발견하고 싶지는 않은데...... 갑자기 부엌에 있는 사탕이 먹고 싶어졌다. 예전에 어떤 영국 영화를 보는데 불안한 마음 상태의 귀족이 한밤중에 냉장고 앞에 서서 잼을 퍼 먹는 걸 하인이 발견하고 놀라는 장면이 있었다. 발라 먹을 빵도 없이 잼만 퍼 먹는 영국인의 모습은 비벼 먹을 밥이 없는데 고추장만 퍼 먹고, 고기가 없는데 참기름 섞인 소금만 퍼 먹는 거나 마찬가지로 보여서 무척 생경하게 보였다. 40년 장기형을 선고받은 죄수의 절망적인 심정이 되어 그 순간 나도 당장 내 몸에 당분을 주입하고 싶어서 민트 캐러멜 캔디를 먹기 위해 살금살금 빠져나가려는데 잠결에도 엄마가 나가는 걸 귀신같이 아는 아들이 '엄마 나가지 마, 발 만져 줘'라고 잠꼬대를 해서 포기하고 다시 애 옆에 누웠다. 역시 난 내가 원할 때 민트 캐러멜 캔디도 먹을 수가 없는 운명이구나.
그렇지만 똥 싸고 싶을 때 똥 못 싸고 사탕 먹고 싶을 때 사탕 못 먹어도 내가 계획하지 않았는데 받은 선물이 많다.
오래 참음, 인내, 순종 이런 미덕과 거리가 멀었던 성마른 인간이 '당신은 기다리는데 도가 튼 사람 같아 보여요'라는 말까지 듣는 날이 오는 기적.
비자가 안 와서 출국 일자가 미뤄져 스위스의 몇 안 되는 지인이란 지인은 깡그리 긁어 모아 다 만나고 떠날 수 있었던 전화위복의 축복.
출국 심사관이 여권 검사를 하는 와중에 애 기저귀에서 똥냄새가 모락모락 피어 올라 기저귀대가 있는 화장실을 찾아 미친 듯이 뛰어다녀 겨우 기저귀를 갈고도 비행기를 놓치지 않고 홍콩행 비행기에 마지막으로 탈 수 있었던 행운.
기록적인 대기 시간 14시간을 기다려서 받은 코로나 검사 결과지가 양성이 아니라 음성이어서 격리당하지 않고 집으로 무사히 갈 수 있었던 것 감사.
밤 12시에 사탕 먹으면 살찌고 당뇨 올 수도 있는데 아들이 부엌으로 못 나가게 잡아서 사탕 안 먹고 건강하니 다행.
내 시간의 주인은 내가 아니지만 내 시간에 간섭하는 존재가 선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염려한 대로 낭떠러지로 몰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건져질 것이다. 노아가 40일을 위해 40년을 준비하면서 마냥 지루하고 고단했겠는가? 사포로 나무를 다듬고 작은 구멍에 못을 박고 막힌 배에 창을 낼 때 불었던 작은 휘파람 소리, 머리카락을 스친 시원한 바람, 함께 배를 만들어 나가는 가족과 맞잡은 손, 내일 일어나면 해야 할 일을 알며 잠자리에 드는 기분, 하루하루 더디지만 점점 제 모양을 갖추어 가는 배를 보는 기쁨이 그의 기다림에 덤으로 주어졌겠지. 그래서 나 또한 40일의 운명을 기다리며 40년의 덤을 묵묵히 살아내려고 한다. 내 시간을 훔치려는 도둑들에게 허풍 섞인 경고를 한다.
"어차피 내 시간은 내 것이 아니라 훔칠 수가 없다오. 그러니 조급함, 비교하는 마음, 물질을 숭상하는 욕심이여, 딴 데 가서 알아 보시구려."
[1]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C.S. 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홍성사 (2005)
[2] <나의 데스티니 찾기> 고성준 지음, 규장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