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조슈아

넷플릭스 '우산 혁명: 소년 vs. 제국' 안 본 사람 없게 해 주세요

by 바다에 내리는 눈

10월쯤 홍콩 청소년들의 우울증이 심해지고 자살 충동 상담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코로나 블루라는 만국 공통의 현상으로 묶기에는 이 곳의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가 조금 결이 달라 보인다. 기사에 따르면 상담 서비스 이용자 대부분이 휴교, 고립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을 주요 정신적 고통의 문제로 토로하고 있고, 이 밖에도 한정된 공간에서 가족과 장시간 함께 지내면서 발생하는 가족 갈등도 또 다른 주요 원인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1]. 홍콩에 와서 살기 전이라면 아마 기사의 마지막 문장을 무심코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는 땅은 좁고 사람은 많고 집은 터무니없이 비싼 곳이다. 물가 높기로 세계에서 1, 2위 다투는 스위스 도시에서 살다 왔으니 웬만한 가격에는 놀라지 않는데 홍콩의 집값은 해도 너무하다. 스위스에서 살던 아파트보다 훨씬 비싼 월세를 내고도 한국 기준으로 작다 싶은 집을 얻었는데 현지인들은 이 집보다 훨씬 작은 집에서 4인 가족에 입주 가정부까지 5인이 사는 게 보통이란다. 보통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오는 헬퍼들은 자기 방을 따로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세탁기가 놓인 다용도실이나 부엌 바닥에서 자기도 하고 온 가족이 외출하지 않아 집에 머무는 일요일에는 자의 반 타의 반 밖으로 나가야 한다. 평일에야 식구들이 회사도 가고 학교도 가니 괜찮지만 일요일에 좁은 집에 5명이 모여 있으면 숨통이 막히니까 헬퍼도 하루 쉴 겸 일단 밖으로 나가는 거다. 그렇게 삼삼오오 공원이나 아케이드 계단에 모여서 헬퍼들은 노래를 부르고 게임도 하고 수다를 떨며 일요일 홍콩 거리를 채운다. 코로나로 인해 4명 넘게 모이지 말랬다가 이제는 2명 넘게 모이지 말라고 아무리 써 붙여 놔도 소용이 없다. 갈 데도 없고 어디 커피숍에 들어갈 돈도 없는 헬퍼들에게 경찰이 사회적 거리두기 규칙 위반을 이유로 그들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싼 벌금을 물리는 경우도 있어 인간적으로 너무한 처사라고 사람들이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시국이니 헬퍼들만 괴로운 게 아니라 청소년들도 보통 괴로운 게 아니다. 휴교와 락다운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지만 너무 비좁은 집에서 피 끓는 청소년들과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부모가 장시간 함께 지내면서 갈등이 심화되는 중이다. 게다가 이 곳 학교의 경쟁은 너무 치열하다. 아무리 비싼 가격을 보아도 놀라지 않는 내공을 스위스에서 쌓고 왔는데 홍콩 집값에 놀라고 만 것처럼, 서울 목동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서 어지간한 교육열에는 놀라지 않는데 홍콩에서 만 3세부터 입시 경쟁이 시작된다고 해서 기절할 뻔했다. 세 살?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애들도 있는 나이에 무슨 입시 경쟁이람. 알고 보니 홍콩에 대학이 몇 개 안 돼서 명문대를 가려면 명문고를 가야 하고, 명문고를 가려면 명문중을 가야 하고, 명문중을 가려면 명문초를, 명문초를 가려면 명문 유치원을 뭐 이렇게 연결된 악순환의 고리였다. 그나마 집에 돈 좀 있으면 국제학교로 빠져서 조금 덜한 경쟁을 거쳐 해외대학으로 갈 수 있지만 중국 본토 부자들과 외국인 주재원 자녀들을 상대로 하는 국제학교는 비싼 학비는 기본이고 학교에서 발행하는 수천만 원에서 억대의 채권을 사야 겨우 입학 '심사'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채권을 사면 입학을 시켜 주는 것도 아니라 입학 심사의 자격이 갖추어진다니 이게 말이 되나? 잘못 들은 줄 알고 검색을 해 보면 진짜 그렇다. 로컬 학교들은 숙제 양이 엄청나서 세 살짜리 숙제를 대신해 주다가 외국인 엄마가 스트레스받아 울었다는 무시무시한 후기를 읽은 적도 있다. 이렇게 세 살부터 경쟁이 시작되는 풍토 속에서 온라인 수업과 휴교를 반복하는 코로나 기간을 홍콩의 청소년들은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세상이 멈추었는데도 입시 일정은 다가오는 모순 속에서 자기만 도태되고 있는 것 같은 우울감을 느끼는 건 당연해 보인다.

넷플릭스 다큐 '우산 혁명: 소년 vs. 제국'은 홍콩의 우산 혁명을 이끈 주역 조슈아 웡에 대한 이야기이다. 홍콩에 오기 전에는 피상적으로 알았던 조슈아 웡의 이름이지만 여기에 살면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이름이기도 하다. 다큐의 첫 화면은 어린 조슈아가 길을 걸어 자기 집으로 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옆에 흐르는 자막, '조슈아 웡 14세.'


이 자막을 본 순간부터 나는 이미 이 다큐에 항복했던 것 같다. 아마 그런 의도로 연출된 장면이겠지만 감동받으라고 넣어 놓은 코드에 꼭 감동받고, 울라고 집어넣은 코드에 울고, 화내라고 할 때 화내는 1등급 관객으로서 항복하라고 하는 자막의 명령에 바로 무릎을 꿇었다. '저 나이 때 나는 뭘 했던가. 14세는 어려도 너무 어린데......' 어떻게 그때부터 카메라가 조슈아를 따라다녔는지 모르겠지만 열네 살의 조슈아가 비좁은 홍콩의 아파트에서 엄마 아빠와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나는 보았다. 우산 혁명의 주동자, 비범한 아이, 난 놈, 감정이 없는 리더, 시대를 짊어진 운동가가 아니라 홍콩의 한 평범한 청소년을. 그 아이가 남들과 달랐던 것은 자기와 관련된 문제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낼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정치 활동을 계획한 게 아니었다. 일국양제의 체제를 보장해 준다던 약속과 달리 홍콩 청소년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킨다는 명목으로 중국 정부가 교육 과정 개혁 계획을 발표하자 (공산당을 조국으로 지지하는 세대를 길러내고자 하는 세뇌 교육 커리큘럼) 조슈아는 일어섰다. 내가 배울 교육 과정에 그런 것을 담지 말아 달라고.


다큐는 조슈아 웡의 시간을 따라간다. '국민교육' 계획을 한 발 물러나게 했던 성공의 경험, 우산 혁명의 좌절, 학생 운동 단체 '학민사조'의 해체, 거리에서 운동하는 것의 한계를 체감하고 정식으로 의회에 들어가 정치활동으로 홍콩을 바꿔 보기 위해 '데모시스토' 정당을 조직하는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열네 살의 소년은 스무 살 넘은 청년이 되었고 그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다큐에서 중국 정부는 끝판왕 악의 세력, 홍콩 어른들은 존재감 없는 보조출연자, 조슈아는 홍콩을 구하는 영웅으로 다소 단순하게 등장한다. 복잡다단한 홍콩 우산 혁명에 관한 리포트라기보단 조슈아의 위인전과 같은 다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상물이다. 홍콩 살이 수개월 차 외국인의 시선으로 보면 이 아이들이 그동안 감당했어야 할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조슈아가 아닌 누구의 선창이었더라도 아마 홍콩 청소년들의 함성은 터져 나왔을 테지만 그것이 조슈아여서 다행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 세 살부터 피 터지게 경쟁시키는 것도 모자라 이 거지 같은 현실을 찬양까지 하라니 너무하다고 가장 평범한 홍콩의 청소년이 분연히 일어나 준 것이 다행이랄까.


홍콩에 와서 짧은 소설을 구상해 본 적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경제가 죽어 실업률은 사상 최악이고 젊은이들이 갈 곳이 없는 현실이지만 한때 그들의 젊은 시절에 화양연화를 누렸던 부모들은 청년들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진작에 취직이 잘 되는 전공을 선택하지 않았느냐'라고 부모가 자식을 탓하면 '내가 코로나가 올 줄 알았냐, 그러는 당신들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것을 그렇게 진작부터 알아 놓고 어째서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아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라고 자식이 따지는 그런 소설이었다. 하지만 홍콩 청년들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내가 쓰기엔 버거운 주제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집어치웠다. 코로나 때문에 애가 어린이집을 안 가서 힘들고 식당이 일찍 문을 닫아 연말인데 외식을 못하니 기분이 안 나서 힘든 게 고작인 내가, 코로나로 2인 이상 모이는 것도 불가능하고 보안법이 통과되어 민주화 운동이 동력을 잃고 주요 인사들은 감옥에 가는 바람에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는 홍콩 청년들을 이해라도 하는 양 쓴다는 게 기만인 것 같아서.


그리고 이제는 내가 열네 살이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보다 내 아이가 열네 살이 될 때를 세는 게 더 빠른 나이가 되고 보니 한 사람을 키워 낸다는 게 어디까지 각오해야 하는 일인지 새삼 마음이 무겁다.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는 청소년기에 반항을 심하게 하거나 일탈을 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을 사서 했지만 하루하루 육아에 치이는 요즘은 당장 내일 도시락은 뭘 싸야 하나 정도가 아이의 미래에 대한 내 생각의 한계다. 조슈아처럼 애가 열네 살에 시위를 한다고 길바닥에 텐트를 치고 노숙하며 집에 안 들어올 가능성,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갈 가능성은 상상도 못 해 보았는데 부모로서 조금 더 상상력을 갖고 아이의 미래를 그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자기 인생을 사는 자식을 응원하는 부모, 문제가 없는 미래는 물려줄 수 없지만 같이 문제를 풀어 나가는 어른이 되는 게 내게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1] http://www.weeklyhk.com 위클리홍콩, 2020.10.20. 게재, '청소년·청년 정신건강 악화, ‘코로나 블루’ 경고- 상담자 중 학생이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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