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이야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가 마음을 연 일

by 이여름

*본 내용 학생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히며, 익명으로 글을 쓴다는 것에 허락을 받았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공허한 강물을 바라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강물 조각과 햇빛 조각이 부딪혀 반짝거리는 윤슬.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청록의 심연. 그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추고 서서 가만히 그 풍경을 바라본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속 노인이 끊임없이 요동치며 낚시를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학교를 가면, 저는 아무와도 이야기를 안 해요.”


글쓰기를 가르치게 되면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학생 중 한 명은 시우였다. 시우는 처음 만날 때부터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져 있는 아이였다. 질문을 해도 단답으로 대답을 하는 아이. 내 이야기에 집중을 하지 않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아이. 처음 수업을 맡게 된 아이가 이렇게 어려운 아이라니. 나는 이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많은 고민을 했다.


“왜 아무와도 이야기를 안 하니?”

“그냥요. 시시해서요. 그 시간에 제 할 일을 하는게 더 나아요. ”


잔뜩 가시가 돋은 듯한 이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남자아이를 대할 때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내게는 같은 성별인 여학생들이 더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어쩌면 이것도 나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하며 수업을 진행했지만 역시나 조금씩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아이가 말을 잘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중 합정의 한 책방을 가서 만나게 된 책은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라는 그림책이었다. 원래도 요새 사람들에게 반응이 뜨거운 책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만나게 된 이 책은 더욱 아름다운 책이었다. 그런 시우를 위해 일일이 그림책의 스캔을 떠서 보여주었다.


“시우야, 선생님이 요새 어른들 사이에서 핫하다는 그림책을 스캔해왔어. 같이 읽어볼래?”

남자 고등학생인 아이와 성인인 내가 그렇게 나란히 앉아 그림책을 읽는 것은 조금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이 책이 요새 어른들에게 많이 읽히는 동화책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이니 그 부끄러움이 조금 나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그 책을 함께 읽었다. 시우는 말없이 그림책을 받아들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말하는 것을 두려워 했던 아이가 학교에 가서도 말하는 것을 두려워 하게 되고, 친구들의 놀림을 받게 된다.특별히 힘들었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이를 조용한 강으로 데려간다. 아이와 함께 강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조용히 아이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면서 말한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그렇게 물거품이 일고, 굽이치다가, 소용돌이 치고, 부딪치면서,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소년이 햇빛이 부서지는 강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이미지가 나온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 소년은 이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와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굽이 치고 부딪쳐도 어찌됐든 흘러 흘러 어딘가에게로 닿게 되는 강. 소년은 흘러가는 강물을 생각하며 점차 말을 더듬는 본인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하기 시작한다.


이 책의 결말은 아이가 말을 더듬는 것을 극복하여 유창하게 말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소년이 배운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이었다. 소년은 강물을 바라보며 본인이 다른 아이들과 말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흐르는 강물 처럼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어쩌면 시우도 그렇게 강물처럼 말하는 아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 저기 많은 것들이 섞이고, 굽이치고 막히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어떻게든 흘러 누군가의 마음에는 닿게되는 아이의 말처럼 너의 말도 그렇게 닿을 것이라고.



책을 읽은 뒤 나는 시우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이랑 글쓰기 수업을 하는게 어때?”

“좋아요.”

“어떤 점에서 좋아?”

“옛날 생각이 나서요.”

“무슨 옛날 생각?”

“사실 중학생 때 이렇게 글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저는 그때 그게 참 좋았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상처가 좀 많아서..

갑자기 반에서 물건이 사라졌는데 도둑으로 몰리기도 하고. 하여튼 그래서 그때부터 사람을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지금 반 친구들도 왠지 저를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말재주가 없기도 하고. 그런데 글쓰기를 하면 왜인지 마음이 편해져요. 제 이야기를 마음껏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요. 그래서 저는 글쓰기 수업이 좋아요.“



시우는 산으로 둘러싸인 통나무 집에 살고 있다.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내리막길로 한참 내려와 버스를 타야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산동네 사람들의 우편들을 우체부 아저씨에게 받아서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시우. 아랫집 아줌마의 집에 나타난 벌레를 잡아주고, 장작을 함께 패주기도 하는 시우. 강물처럼 깊은 마음과 성품을 지닌 멋진 시우가 어쩌다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그것을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그저 이 수업을 통해 자신이 윤슬처럼 반짝이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랬다. 시우는 본인의 감정을 글로 드러내는 재주가 있는 아이였으니까. 평소에는 과묵한 그지만 글쓰기 과제를 내어주면 무섭게 집중해 과제를 보여주는 아이였다.





<있는 그대로 사랑 받고 싶은 내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기>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의 모습과 그리 오래 만나지 않은 사람들과 있을 때의 모습이 전혀 다른 사람이다. 집에서는 조금 활발하고 대화도 적당히 하지만, 학교 등 외부 공간에서는 과묵하다. 내게 친구는 옛날부터 알고 지낸 가족같은 친구 몇 명이면 충분하고, 굳이 많은 친구를 사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학교 친구들은 가끔 나에게 묻는다. "너는 왜 매일 매일 화가 나있는거니? 아니면 우리랑 거리를 두려 하는거니?" 나는 답했다. "애초에 너희들에게 화날 일은 없어. 당연히 후자겠지."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러한 성격이 굳이 시끄럽게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자신이 할 것을 상관 받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조별과제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할 말이 있을 때는 할 줄도 안다. 그저 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좀 더 조용할 뿐이다. 이런 성격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그런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다른 사람을 누구보다 잘 챙겨주는 사람이니까! 나는 눈에 띄지 않게 도와주면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칠판 지우기를 내가 한다는 것을 친구들은 모르는 걸까? 나는 항상 겉으로 표현을 안해서 무표정 사람일 뿐인 것이다. 친구들이 나의 그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시우가 마음은 따뜻하지만 그것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글 쓰는 일은 누군가에게 있어 요동치는 마음의 물결을 모아 전하는 언어가 된다고. 마음 속에서 수없이 부딪치고 부서진 윤슬의 조각들을 남겨두는 누군가의 흔적이라고.


시우의 글을 읽은 나는 그런 결심을 했다. “그런 법이 어디있어? 이렇게 해야지” 라는 식의 섣부른 충고를 하기 보다는 그저 묵묵히 아픔을 같이 하는 사람이 되어주겠다는 결심을. 그리고 그런 아픔들을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치유하는 것을 지켜보겠다는 결심을. 그저 옆에 머물러 그 아이를 바라봐 주는 것, 아이의 방식을 믿어주는 것. 아이가 스스로 이야기를 꺼낼 때 까지 기다려주는 것. 내게 난관이었던 시우를 가르치며 알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지금의 시우는 나와 농담도 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이야기 한다. 물론 아직도 낯선 사람들과 말을 하는 것은 그 아이에게 있어 힘든 일이겠지만, 적어도 그 아이가 거리낌없이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의 목록 중 나 라는 한 사람이 추가 되었다는 것에는 어느정도 큰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어느 날 시우는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업을 시작한지 7개월이 지난 후의 일이다.




<우리 집 이야기>

현재 내가 살고있는 곳은 산 속 어느 통나무집이다. 이 곳에서 나는 8명의 소년들과 살아가고 있다. 이 곳의 사람들은 떠나기도 하고, 계속 함께 살아가기도 한다. 나는 16년도부터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내가 부산광역시 영도구 출신이라는 것밖에 없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내 앨범에 있는 사진으로 보았을 때 나는 아주 큰 시설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치원 쯤 서울에 있는 큰 시설로 옮겨졌지만, 사실 이것도 기억이 없다. 내가 내 과거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시점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이다. 그때 내가 다니던 학교가 폐교 되어서 다른 학교로 옮겨지게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그렇게 옮겨지는 삶을 살았나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이 통나무집으로 오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이사 날짜는 16년도 6월 7일이다. 나는 이제 그만 옮겨지는 삶을 살고 싶었고, 빌딩과 차들이 싫었다. 사람들도 싫었고 소음도 싫었다. 그렇게 나는 이 곳을 오게 되었고, 적어도 이곳은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덧 이 곳에서 살아간지 5년이 흘러가고 있다. 요새는 새로운 소년 한 명이 와서 그 아이와 적응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13살의 그 소년은 아무리 생각해도 싸가지가 없다. 그 싸가지 없는 놈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 마음이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주로 이 곳에 오는 아이들의 특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마 그 아이도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많은 치유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이곳이 조금 불편하지만 그래도 좋다. 처음으로 마음을 뉠 수 있게 된 곳이기 때문이다. 아마 내년 쯤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면 나도 이 곳을 떠나 다른 둥지에서 둥지를 틀고 살아갈 것이다. 그럼 그곳에서 새롭게 살아가게 되겠지? 다시 적응하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금 잘 살아가리라고 믿는다. 어디서든 꽃을 피우는 민들레씨처럼.






이 글을 본 후, 나는 놀람을 감출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엉엉 울었다. 시우를 맡게 되었을 때, 내게는 이 아이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었다. 많고 많은 학생들 중 시우는 그저 나에게 배정된 학생일 뿐이었다. 고등학생 2학년. 남자아이. 내가 시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 정보가 다였다. 시우가 상처가 많은 아이라는 것도, 남들과는 조금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당연히 다른 아이들과 같은 환경이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그 순간 내가 이 아이와 수업을 하며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가족 이야기를 한 것이, 이 아이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왜 이 아이는 항상 이렇게 날이 서있는 걸까'라고 아이를 답답하게 생각했던 내 마음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꺼낼 수 없는 아픔은 그렇게 날이 서있는 마음이라 함부로 다가갈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가가면, 언젠가는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그 아이의 아픔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고, 그 날 나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어려운 이야기였을텐데도 불구하고 내게 솔직히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 시우가 고마웠다. 타인에게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기에, 글을 적어내는 시우의 마음은 어땠을까,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상처에 익숙해져 담담한 척을 하는 것 같아 더욱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시우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꾹꾹 눌러담아온 걸까. 자신의 마음을 뉘일 곳이 없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그동안의 시우의 모습을 생각하니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시우와의 만남을 통해 , 나는 글쓰기에는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면의 목소리를 끌어내는 힘, 다가가지 못할 마음의 구석을 들어가볼 수 있는 힘. 아픈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감싸주는 아름다운 호수를 만들어내는 힘. 햇빛이 물과 부딪혀 생겨나는 윤슬처럼 서로에게 천천히 다가가 내면을 들여다보고 아름다운 물결을 만들어내는 힘. 강물처럼 느리게 말하는 글은 때로는 말보다 더 크게 사람의 마음을 울려 오래도록 마음의 물결로 잔상이 남아있다. 잔상을 남기는 일, 마음을 감싸는 일. 그 날 이후로 나는 글을 가르치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시우야. 너는 여기있는 아이처럼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이란다. 그 누구도 강물같이 말하는 너를 함부로 할 수 없을거야. 누군가 너에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말하기를 강요한다면, 그때는 너만의 방식(글쓰기)를 떠올려봐. 그리고 그 방식으로 말을 하는거지. 이게 바로 네가 말하는 방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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