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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Feb 02. 2022

홀로 떠나 고요의 바다를 항해하기

출국 D-1


어쩐지 떠나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누군가는 기다리고 배웅을 해주고 나는 떠나고 배웅을 받고. 그게 좋으면서도 슬프고 불안하다.정착해 있는 배들 가운데 홀로 떠나 고요의 바다를 항해하는 기분은, 너무 불안하면서도 외롭다. 한편으로는 두근거리고 설레고. 복잡하고.


있을 만 하면 떠나고 , 있을 만 하면 떠나고 나는 그렇게 매번 산책하는 사람의 입장이 된다 .발터 벤야민이 말한 플라뇌르의 삶. 어떤 삶을 보아도 자꾸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산책하는 삶을 산다 . 저런 삶, 이런 삶. 내 삶은 아닌데 흥미롭고 그냥 관찰하는 게 마냥 즐겁다. 누가 공무원이 됐대. 아 그래? 누가 연애를 한대. 아 그래? 누가 어느 대학을 갔다더라. 아 그래? 그렇게 바라보고는 끝이다. 응 그렇군. 저런 삶이 있군. 하지만 내 삶이 아니다. 거기서 끝. 그럼 내 삶은 뭐지? 나는 뭐하는 사람이지? 정말로 모르겠다. 정의할 수 없이 유영하는 삶. 그냥 지나치던 어느 집 창문 베란다에 놓인 이끼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길을 걷다가 마주친 고양이에게 멈추는 삶. 어쩌면 내 정체성 자체가 이런 삶일지도 모른다. 어디서든 살아갈 것 같다. 어느 사회에도 편입되어 완전히 스며들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포르투칼에 가서 골목길을 떠돌다가 히피들을 만나 창고에서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엄마 얘네가 나 한국 가지 말래. 그러니?거기서 살아. 응. 그렇게 창고에서 살다가  질릴 때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사회에 맞는 교과서적인 삶을 사는거지. 그러다 또다시 그게 질려버릴 때쯤 떠나버리고.. 모르겠다.  뭐가 좋은 삶인지. 아무것도, 아무것도. 어쩌면 나도 나 자신을 관찰자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크린 속에 들어있는 나. 그 속에서 연기를 하는 나.


나는 떠나는 데 자꾸만 누군가는 나를 기다린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 그게 좋으면서도 슬퍼. 내키면 떠나버리고 돌아오지 않고 그렇게 나는 내 사람들을 외롭게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 하지만 나는 진짜 변함없이 여전히 어디서든 그들을 생각하거든. 그 마음이 통하는 건지 그들은 내가 돌아와도 여전히 나를 반겨준다. 말할 수 없이 고맙다.

유진이가 준 편지


날이 춥다. 눈이   정도는 쌓인  같아. 눈은  소리도 없이 몰려와서, 나는 늦은 밤에 창문을 내다 봤다가 언제 이렇게 쌓인 거야 하며 깜짝 놀라는  말고는  수가 없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언제 이렇게 많은 눈이. 다시 책상에 앉아서 이탈로 칼비노를 읽다가 필사를 하다가 사진을 보다가 일기를 쓰다가. 내가 저지른 잘못들을 생각하다가 잠시 외로워진다. 그러고는 다시 일기를. 파리에서 너의 하루하루는 어떻게 흘러갈까? 네가 오기 전까지  하루는 이렇게 흘러가.


가면 한국 그립잖아. 그리고 여기 뒷장에 엽서를 쓰면 .” 하고 그녀가 뽑아온 필름 사진들. 언제나 너는 이렇게 따뜻한 사진을 찍어내지.


그런데 뒷장은 자기 고양이 뱃살이야


세빈이가 준 편지


사실  몇달 마음이 힘들 때마다  생각이 정말 많이 났어. 그간 은주에게 위로받은 적이 많았기 때문일까? 아무튼 감정적이지만 언제나 단단한 너를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잡을  있었어. 나에게는  없이 소중하고 멋진 은주! 은주의 도전 정신과 실행력을 본받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은주랑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없다는  너무 슬퍼. 하지만 도약이 있어야 발전도 있으니 웃으며 보내줄게. 나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으니까 힘들면 언제든 나에게 기대.






아무튼 출국을 앞두고. 요란스럽게 보내고 싶지 않아 방에 틀어박혀 가만히 있었다.  나는 명절 때 북적거리게 모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뭘 모이고 그래. 모여서 하는 어른들 얘기는 따분하게 들렸고 마냥 잔소리처럼 느껴졌다. 항상 그맘때쯤은 명절을 보내러 엄마 아빠를 따라가도 그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을 보낸다든지, 영화를 본다든지, 책을 읽는 시간이 전부였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외로웠다. 가족들은 이미 각자의 명절을 보내러 떠난지 오래였다. 과외를 마치고 깜빡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캄캄했다. 폐인이 된 기분이었다. 이대로면 미쳐버릴 것 같다. 혼자 멍하니 있던 중 제주도에서 같이 살았던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는 내게 새해복 많이 받고 행복하라는 말을 했다. 난 행복하라는 말이 너무 슬퍼서 울었다. 모르겠어. 그냥 누가 내 행복을 빌어주는 게 고맙고 슬프다.


대충 옷을 걸쳐입고 밖을 나왔다. 도시가 텅비었다. 사람이 없을 시간이 아닌데 고요한 이 곳은 정말로 디스토피아 같았다. 다시금 도시는 오래 전부터 이곳에 자리해 사는 사람들 보다는 유입된 인구가 많다는 것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문득 이건 아니지 않나. 미친듯이 외로워지고 쓸쓸한 마음에 Y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처럼 따르는 나의 언니. 존경하는 언니.


“왜 전화 안 했어? 언니는 당연히 너 다른 데 갈 줄 알았지. 워낙 명절도 가족이랑 안 보내고 잘 돌아다니잖아?“


언니는 동생 부부와 함께 명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 내게 명절이라는 건 그냥 휴일이 불과했다. 그러니까 휴일을 빌어 어디든 떠나는 날. 하지만 아무도 내 곁에 없는 명절은 너무 쓸쓸했다. 혼자 보낼거라고 다짐해놓고선. 나는 지푸라기를 붙잡는 심정으로 언니에게 말했다.


“아니 언니. 그러니까.. 조용히 보내고 싶었거든. 그래서 아침에 다들 가는데도 가만히 있었지. 근데 나 혼자서 시간 못 보내나봐. 미친듯이 외로워서 못 있겠어 언니.”


“혼자 청승맞게 아주.. 그냥 언니 집와서 자.”





그렇게 언니집을 가기 위한 열차에 올라탔다. 도착 후 내리니 눈이 한가득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길에서 멈춰선 뒤 눈을 구경했다. 올해 들어 본 눈 중 가장 예쁜 눈이었다. 눈덩이들은 큼지막했다. 아주 느리게 내리는 눈.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눈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종종 거리며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 명절을 맞아 가족을 데리러 온 사람들, 그리고 역 앞에서 나누는 반가운 인사들. 패딩을 입고 모자를 뒤집어 쓴 한 여학생이 아빠를 보자마자 모자를 내리며 “아빠!” 하고 뛰어가는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거리를 치우고 있는 사람이 옆 사람에게 말했다. “그래도 눈 내리니까 낭만적이지 않아요?” 옆사람은 웃었다. 바라보고 있는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관찰자면 어떠하고 내 인생이 뭔지 모르겠으면 어떠한가. 그저 이렇게 눈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이미 오늘 하루는 충분히 행복하게 느껴졌다. 이런 인생도 괜찮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인생인데 관찰자로서도 행복한 인생. 산책하듯이 사는 플라뇌르의 인생.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관찰하고 행복을 느끼는 인생. 이런 인생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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