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여름 Nov 15. 2023

Dressing with mothers

엄마의 옷장

그 많던 예쁜 옷은 어디로 갔을까. 엄마의 앨범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멋쟁이 엄마의 아가씨 시절 옷들. 짧은 치마와 노출이 있는 오프숄더, 작은 블라우스와 화려한 보석이 달린 원피스와 같은 옷들.


나는 엄마의 옷장과 함께 자랐다. 엄마가 일을 나간 사이,  어린 시절의 나와 여동생은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함께 엄마의 옷장이 있는 방으로 숨어 들어가 엄마의 옷을 마구 꺼내입었다. 그것은 하루빨리 여성이 되고픈 욕망이었다.  어느 날은 엄마의 속옷을 입고 비키니라 말하며 인어공주 놀이를 했고, 어느 날은 엄마의 하이힐과 반짝 거리는 옷을 전부 가져와 무도회에 가는 날을 재현하기도 했다.


화장대 뒷켠에서 몰래 훔쳐보고는 했던 엄마의 화장하는 모습. 립스틱을 바르고, 쿠션을 톡톡 두드리고, 옷 매무새를 다듬던 그런 모습은 내가 빨리 커서 되고픈 아가씨의 모습이기도 했다. 엄마가 직장을 간 사이, 동생과 함께 엄마를 몰래 따라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레 숙녀가 되는 길로 인도되었다. 그 조용한 옷장에서 은밀하게, 엄마의 옷을 입으면 게임에서 치트키를 쓰는 것처럼 나는 빨리 성숙하고 우아한 여성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엄마와 딸 사이의, 어쩌면 영원할지도 모르는 공유 의식을 깨달았다. 엄마가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리고, 또 옷 매무새를 다듬는 모습.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을 통해 성숙한 여자가 되어가는 법을 배우고, 점차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을.


 엄마의 포근하고 우아한 살냄새가 담긴 옷들. 여전히 나는 엄마의 옷을 입으면 내가 좀 더 성숙한 여자가 된 듯한, 엄마의 인생의 궤적을 입고 어떤 상황이든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숙한 여성이 되는 듯한 유년시절의 마법을 느낀다. 이제 더이상 엄마의 옷은 아가씨 시절처럼 화려한 보석이 있거나 노출이 있는 옷은 아니지만, 논문을 쓰기 위해 입는 편한 스웨터나 마티 아녜스 바르다가 입는 옷 같은 바지차림의 펑퍼짐한 옷 또한 내게 영감을 준다. 엄마는 왜 예쁜 옷을 안 입어? 엄마는 이제 이런 옷이 좋아. 편한 옷. 하지만 그것은 치열하게 본인의 커리어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삶의 궤적이 담긴 변화라는 것을 안다. 직업 특성상 노출이 있는 옷을 입는 것은 안 되고 예쁜 옷을 입을 필요도 없다. 제왕 절개 흉터로 어쩔 수 없이 가려야 하는 상의를 입어야 했으며 임신 후 후유증으로 불어나버린 몸 또한 그 이유였다. 그런 엄마의 모습은 또다시 내가 더 성숙한 여성으로 살 수 있게끔 영감을 준다. 엄마는 좀 더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거의 옷을 사지 않는, 화려한 옷을 입지 않는 엄마의 옛날 아가씨 시절 옷을 입어보며 생각한다. 이 옷을 입던 어린 날의 엄마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을까. 어떤 남자를 만나고 어떤 사랑을 하고 있었을까.




* 엄마의 웨딩 드레스는 지금 봐도 무척 예쁘다. 어떻게 블랙을 시도했지? 너무 아름다워! 나도 웨딩 사진을 찍게 된다면 똑같은 드레스를 입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2. 제주도에 도착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