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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Sep 09. 2024

면회의 슬픔과 기쁨

한 가지 소원

원장님, 혹시 엄마가 요새 치매약을 안 드시나요?

네. 현재 드시는 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요양원 원장에게 카톡을 보냈다. 답을 듣고는 희미한 원인 하나를 찾아낸 듯 안도했다.  

그래, 이것 때문이었던 거야. 엄마가 벌써 우릴 잊으실 리 없지. 아니, 근데 요양원에선 왜 약을 제대로 안 챙긴 거야.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원장 탓인 양 원망스러운 감정이 튀어 오른다.  


긴 여행을 다녀오고 근 40일 만에 엄마를 만났을 때였다.

“엄마!”

우리의 기대와 달리 엄마가 무표정하게 우릴 맞는다. 아마도 엄마의 그런 표정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동생도 나처럼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면회실로 들어가면서 원장이 얼마 전에 보내준 카톡이 생각났다. 엄마가 완벽하게 가사를 외우시는 노래를 찾아다며, 그게 <유정천리>라고 알려줬었지.

의자에 앉자마자 노래하자며 엄마 손을 잡았다. 엄마가 박자에 맞춰 머리를 까딱하며 노래한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

못 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눈~물 어린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드네


인터넷에서 가사를 찾아보고 생각했었다. 엄마는 두메산골 싫어했으면서 이 노래는 좋아하시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상경했던 까마득한 시절이 떠올라서일까, 살림 늘어가는 재미에 “못살아도 나는 좋아”라고 읊조렸던 젊은 날이 생각나서일까, 아님 그저 “눈물 어린 보따리”가 눈물샘을 자극하기 때문일까. 반짝했던 그 시절에 불렀던 노래가 엄마를 미소 짓게 한다. 노래만도 못한 우리는 무력하게 박수만 친다.


영상통화를 연결하니 오빠도 평소와 달라 보이는지 엄마 비위를 맞춰 보려 한다.

“이것들이 오랜만에 와서 우리 오마니 삐지셨어요?”

엄마는 듣는 둥 마는 둥 대꾸도 하지 않으신다. 핸드폰 화면을 보시라 해도 외면한다. 졸리신 듯 눈이 살짝 감기는 것도 같다. 오늘은 그냥 피곤하셔서 그런 거라고 애써 외면하고 서둘러 면회를 마쳤다. 하지만 내내 엄마의 서늘한 표정이 마음에 밟혔다.


언젠가 동네 친구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 집 시어머니도 요양원에 계시는데, 시누이들이 면회를 안 간단다. 가봐야 엄마가 알아보지도 못하신다고 안 간다고 했단다. 그 말을 들으며 그래도 엄마는 우리를 반겨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남일 같지 않은 날이 뚜벅뚜벅 다가오는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치매약을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아리셉트가 치매를 치료하진 못해도 지연해 주는 효과는 있지 싶어서였다. 진즉 치매약 환급이 안 되고 있다는 걸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동안 여러모로 소홀했다는 자책이 밀려왔다.




지난주에 엄마를 뵙고 왔다. 엄마가 우리를 보며 ‘딸’이라고 한다. 면회 시간 직전에 “누가 온다고 했죠?” “딸!” “맞아요~” 원장과 엄마가 이렇게 반복적으로 학습한다는 걸 알면서도 반갑다. 이렇게라도 엄마의 딸이 되고 싶다.


이번엔 진짜 엄마가 우릴 알아보신 듯하다. 면회실에서 우리 얘기를 듣는 엄마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당신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엄마의 닫힌 마음은 소식 없는 딸들에 대한 서운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소통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얘들이 올 때가 됐는데 안 온다, 하루는 왜 이렇게 길다니, 얘들이 이제 안 오기로 했나, 무슨 일이 있나, 뭐라고 물어야 할지 모르겠네….’


엄마에게 막내아들네 딸이 결혼해서 미국에 다녀왔다고 이제야 말씀드린다. 동생이 거든다.

“엄마, 시장에서 떼쓰던 그 꼬맹이가 글쎄 벌써 커서 결혼했어.”

엄마는 당신이 알 것 같은 단어들을 잠시 붙잡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별말씀이 없으시다. 그래도 우리들의 수다가 싫지 않으신 것 같다.  

엄마에게 추석명절 끝나고 오겠다고 인사하는데 엄마의 표정이 흐트러진다. 원장이 딸들 가는데 인사 좀 해주시라고 해도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우리도 불편한 팔을 들어 어색하게 손 흔드는 엄마를 지켜보는 게 힘들다. 그날따라 엘리베이터가 더디 오는 것 같다.

 

“엄마가 우리를 알아봐도, 알아보지 못해도 마음이 아프다.”

“언니, 언니도 느꼈어? 아까 엄마 눈에 살짝 눈물이 고이더라.”

“…. ”


엄마는 다시 치매약을 처방받아 드시기로 했다. 그 어떤 힘에 기대든 돌아가시는 날까지 엄마가 우리를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생겼다.

굳이 딸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만나면 좋은 사람, 반가운 사람으로 맞아 주시기만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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