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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Nov 12. 2024

커피를 좋아한다

카페를 더 좋아한다

이 글은 어쩌면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떠오른 건지도 모른다.

어제 위내시경을 받은 터라 오늘까지 카페인을 먹지 않으려고 따끈한 캐모마일 차를 주문했는데, 역시 글을 쓸 땐 커피가 필요한 것 같다. 한 잔은 괜찮을 텐데….  

 

내 기억 속 첫 커피는 초등학교 4~5학년 때였던 것 같다.

엄마 친구분이 오셨을 때, 조심조심 커피가 흐를세라 쟁반을 들고 갔던 기억. 금박테가 둘러진 예쁜 커피잔은 아마도 엄마가 친목계 같은 데서 공동구매한 것이었으리라. 커피, 프림, 설탕을 두 스푼씩 탄 황금비율에 손님은 제법이라고 한껏 칭찬해 준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옛날 우리집. 요즘 핫한 카페로 개조되는 우드톤 양옥집에서의 기억. 커피 향에 취해 한 모금 맛을 보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제대로 된 커피를 만난 건 대학교 때였다. 비엔나엔 없다는 달콤한 비엔나커피를 처음 맛봤고, 자주 가던 커피숍 사장은 특별한 날엔 사이폰으로 추출하는 커피를 맛보게 해 줬다.  

교내 자판기 커피도 즐겨 먹었지만, 다양한 분위기의 커피숍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드물긴 했지만, 공강 시간에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커피숍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아마도 그런 날은 가볍게 점심을 포기했을 것이다.

커피숍은 미팅의 공간이기도 했다. 옆 학교 애들이랑 단체 미팅을 했을 때 만났던 P는 무척 내향적인 아이였다. 용케 용기를 내 애프터 신청을 했던 P와 단 둘이 만났을 때 손을 덜덜 떨며 커피잔을 내려놓던 장면이 생각난다. 진짜 현실 속 이런 애가 있다고? 당황스러웠지만 일부러 쾌활하게 웃어주었던 기억까지.    


한참 세월이 흘러, 지인의 부탁으로 미술관 옆 커피숍에서 일하게 됐다. 원두를 넣으면 자동추출되는 커피머신이었지만, 퀄리티는 나쁘지 않았다. 우유 거품을 내서 라떼를 만들고, 나중엔 간단한 샌드위치까지 준비해야 했다. 처음 해보는 서비스업, 그곳에서 인생을 배웠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재설정된 관계는 적응하기 힘들었고,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한 시선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커피숍 통창으로 보이는 사계절 풍경만이 나를 위로했다.  


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재취업한 사무실. 그곳엔 오로지 믹스커피밖에 없었다. 입이 고급이라는 가벼운 농담을 무시하고 집에 있는 커피머신을 들여놨다. 다시 믹스커피로 돌아갈 순 없었다. 기꺼이 내돈내산 원두로 커피를 함께 나눴고, 그러는 사이 다른 직원들의 입맛도 서서히 변해갔다. 바야흐로 카페 전성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집 주변에도 분위기 좋은 개인 카페가 생겨났다. 커피맛이 좋은 곳을 선호하지만 이왕이면 인테리어가 괜찮은 곳을 찾아다녔다. 일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카페에서 나누었던 내밀한 대화들은 언제나 큰 힘이 되었다.


백수가 되면서 아쉬운 건 그것이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먼 소도시로 이사 오는 바람에 모든 연결이 끊어졌다. 물론 내가 의도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일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이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다는 걸 인정한 뒤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곳에 정착하면서 카페는 내게 글 쓰는 공간이 됐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외롭지 않다. 매주 내 마음속 생각들, 지난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 언젠가, 백 편의 글이 내가 들인 비용만큼의 값어치나 할까 얘기를 꺼냈다가 동생에게 타박을 들었다. 계속 글을 쓰라는 그 말이 고마웠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날, 30여 분의 면회가 끝나면 우린 요양원 주변 카페를 찾는다. 엄마에게 “촌스럽게 아직도 믹스커피 먹니?”라는 핀잔을 들었던 동생도 커피 애호가가 된 지 오래다. 좋은 카페를 발견했다고 가자고 할 때 설렌다. 우린 커피를 마시며 다 하지 못한 엄마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많아져도, 우리가 이렇게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도 엄마 덕분이라고 함께 웃는다.


커피를 좋아한다고 썼는데 좀 찔린다. 커피를 좋아한다면 한 모금 마시고 단박에 원두 품종을 알아맞히고, 집에서도 드립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은데 난 그 정도는 아니다. 드립커피를 내릴 만반의 장비들을 갖췄건만 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어쩌다 원두가 생기면 또다시 실험에 돌입하지만 늘 제자리걸음인 듯하다. 그래서 정리했다. 나, 카페를 좋아하네. 남이 내려준 맛있는 커피를 좋아하네. 커피 향이 흐르는 공간에서 글 쓰고 좋은 사람이랑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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