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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Aug 20. 2021

반려견 첫 발톱 손질, 손이 '덜덜'

[베리와 보리] 남편의 반려견 육아 체험기

오랜만에 방문한 본가 집, 초인종을 누르자 '왈왈왈' 난리가 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도착하자, 베리와 보리가 이미 앞에 나와있다. 맨발에 헐레벌떡 나온 듯한 모습, 그렇게 우리가 반가웠을까?


"왜 버선발로 나왔어~~ 어여 들어가 들어가자!"

꼬리를 흔들며 반갑다고 인사하는 녀석들의 모습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이번 글은 11살 몰티즈 베리와 6살 포메라니안 보리가 그 주인공이다.

베리(우측)와 보리(좌측)는 내가 결혼하기 전 부모님 집에서 같이 생활했던 아이들이었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가방에서 반려견용 발톱깎이를 꺼냈다.

"LED 등 잘 나오지? (딸깍) 오케이 됐어!!"  


집에 올 때마다 녀석들의 긴 발톱이 계속 마음에 걸렸었다.

 

베리와 보리의 주보호자인 엄마는 녀석들의 털을 직접 밀어주시는 등 아이들 미용에 거침없으신 편이지만 차마 발톱까지는 무서워서 엄두를 내지 못하셨다.


특히 보리의 경우, 겁이 많아 조금이라도 다리를 잡아 발톱을 자르려 하면 사방팔방 몸을 움직이며 싫은 티를 내는데, 이를 한번 겪으면 넘쳤던 의욕도 절로 꺾일 법했다.

미용한 아이들

그래서 이번엔 나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새 장비도 구매했겠다, 인터넷으로 반려견 발톱을 어떻게 깎는지 찾아보고 마음의 준비까지 단단히 했다.


자신만만하게 보리와 베리를 안아 들어 발톱을 깎으려 하는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줄 흘렀다.

그나마 얌전한 베리도 발톱을 깎으려 하자 겁을 먹어 가만히 있지 않았는데, 겁쟁이 쫄보 보리는 아주 난리 환장 부르스였다.


역시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ㅠㅠ


결국 아내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내는 베리가 불안하지 않도록 품에 꼬옥 안아주고, 겁을 먹을까 봐 고개를 살짝 돌려주었다.

그때를 틈타, 발톱을 '딱'하고 시원하게 잘랐다. 생각보다 일은 수월했고 안전한 것을 확인한 베리는 겁은 먹었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착한 베리~~ 고마워~~ 고생했어~~"

고생한 베리의 머리를 쓰담 쓰담해주자 녀석은 기분 좋은 듯 더 안아달라고 엉겨붙는다.


본격적인 문제는 보리였다. 눈치 빠른 보리는 베리의 모습에서 이미 자신의 운명을 예측한 모양이다.

구석진 곳에 숨어버렸다.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는 보리를 간식과 사료로 살살 꼬드겨 품에 안았다.

겁이 많은 보리~~

실내에서는 안될 것 같아 집 밖의 복도로 보리를 데리고 나갔는데,

그나마 넓은 곳에 있으면 보리가 안정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었다.


꼬리를 흔들며 아내와 나를 반가워했던 보리는 발톱깎이를 보자마자

꼬리를 축 내리고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리의 손을 잡으려고만 하면 '쏘옥' 뺐다.

"괜찮아~ 괜찮아 보리야~ 무서운 거 아니야~"

어떻게든 보리를 달래 보려 했지만 보리의 눈은 이미 두려움이 가득했다. 심지어는 울먹이는 듯한 녀석의 표정. 이 귀여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꼬...


계속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다정한 말로 안정시키려 했지만 발톱을 깎기 시작하자 보리는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어우! 보리야! 이러면 다쳐~~~ 보리야!! 어욱"


발톱에 장비가 채 닿기도 전에 이미 난리를 치는 보리. 여라도 발톱을 잘못 자를까 두려움에 나도 같이 벌벌 떨기 시작했다.


"여보, 보리 안아, 내가 할게!"

이대론 안 되겠다 싶은 아내는 내게 보리를 넘겨주고 본인이 발톱깍이를 쥐었다.

보리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을 잡은 사이에 아내가 재빨리 보리의 발톱을 잘라주었다.

'딱'


보리는 끔찍하게 무서워하다가 아무 문제없이 발톱이 잘리니

'어라?' 하는 표정으로 본인의 발을 쳐다보았다.

괜찮지? 아무렇지도 않지? 별거 아니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침착하게 보리의 마음을 얻은 아내는 차분히 남은 발톱을 정리했다.


그렇게 한쪽 발을 다 자르고 다른 쪽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또다시 겁먹은 보리는 몸을 빼기 시작한다.

시선을 잠시 돌려 발톱을 깎고 있는지도 모르게 한 틈을 타 2~3군데를 더 잘랐다.

'딱, 딱'

보리는 발톱을 자른 소리에 놀란 듯 다시 이쪽을 쳐다보았다.

'오잉?'


쫄보 보리는 이 루틴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발톱을 잘라주고 자세를 바꾸고...

기어코 보리의 발톱을 다 자르자 나와 아내의 등줄기는 모두 땀으로 범벅되었다.


사실상 베리와 보리의 발톱은 아내가 거의 다 자른 것과 다름없었다.

전날 아내에게 보리와 베리 발톱을 잘라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선 나는 아이들을 품에 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참... 나는 왜 이렇게 의욕만 앞섰는지, 한없이 아내고마웠다.

귀여운 녀석.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나는 매번 집에 방문할 적이면

주보호자인 엄마에게 이 아이들을 많이 사랑해주고 끝까지 잘 키워달라고 잔소리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정작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 앞에서 어버버했다.

말로는 사랑한다, 아껴준다 했지만 남다른 정성과 수고가 필요한 순간에 무기력했다.

문득 그간 이 아이들을 케어해주고 아껴준, 모든 수고스러움을 감당해준 엄마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이 아이들을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있는 것이구나'

누가 알려주거나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십몇 년 동안 아이들을 정성스레 키워준 엄마가 새삼 고마웠다.


물론 아직도 나는 이 아이들의 발톱을 깎는 것이 두렵고 쉽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 나도 아내처럼 능숙해지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가져본다. 나의 반려견 육아 체험기는 이제 스타트일 뿐이다! 할 수 있다!!!


p.s.

반려견 육아에 초보인 내가 열정과 마음만 앞서 나갈 때, 능숙하게 처리해줘서 고마워 여보~!!

다음에는 내가 직접 해볼게!!!

(물론 다음에도 여보가 나서야 할 수도 있어....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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