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부두애 Aug 09. 2021

노견, 지금의 모습도 괜찮습니다.

물론 노견 육아는 빡세긴 빡셉니다. 하하~

19살 노견 방구는 잘 걷지를 못합니다.  


원래도 다리에 힘이 없어서 아기처럼 아장아장 걸을 적은 많았는데,

최근 들어서는 누가 뒤에서 엉덩이를 밀어서 일으켜 세워주지 않으면 움직이기가 힘듭니다.

 

아마 다리의 근육이 점점 약해지면서 그런 것이겠죠.

아내는 그런 방구의 모습이 안쓰러워 수시로 다리를 주물주물 마사지해주는데,

그것도 잠깐. 방구는 조금 걷다가 풀썩 주저앉을 때가 많습니다.

방구야~~~ 거기는 밥통인데~~ 우짜다 글로...

스스로 일어나려고 몇 차례 노력하다가 결국 포기하고만 방구는

그럴 적이면 목청껏 소리를 내어 짖기 시작합니다.

"왈~~~~~~!!"  


초보 양육자인 저도 이제는 방구의 짖는 소리를 들으면

대강 어디가 아픈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원하는 것인지

조금은 분간이 갑니다.


이번에 짖는 소리는 분명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으라챠챠~~ 일어나기 힘들었어?"


방구를 번쩍 들어 올려 물통 앞에 데려다줍니다.

그러면 기분 좋게 물을 할짝할짝 마십니다.

(저희 집에 늘 오시는 펫시터님은 방구가 물 먹는 이 소리가 너무 기분 좋다고 하더라고요.

'촵촵!'거리는 소리가 사람의 마음까지도 시원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혹 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배가 고픈 것입니다.

이번엔 밥통 앞으로.

'우걱우걱' 머리를 밥그릇에 파묻고 먹는다면 성공입니다.


밥도, 물도 아니라면?

기저귀를 확인해서 혹시 축축해서 불편한 것인지 체크합니다.


여기까지 해서 방구의 애로사항을 모두 해결했다면 노견 육아가 그렇게 힘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진짜는 이제부터입니다.  


이 모든 것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방구가 계속 짖는다면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너무 졸려오는데 잠을 못 들어서 잠투정을 부리는 것이거나

또는 쉬나 응아가 마려운데 방구 자신도 뭐가 마려운지 모르고 몸이 불편한 경우입니다.

아내가 두 다리 사이에 방구를 끼고 자장자장해주면 잘 잡니다

전자의 경우야 어떻게든 토닥토닥하며 아기 재우듯이 방구를 재우면 되지만

(30~40분간 어르고 달래주면 또 잘 잠드는 편입니다)


후자의 경우는 무척 곤란해집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죠.


방구는 이리저리 걷다 보면 쉬를 하거나 응아를 하는데,

걷질 못하니 뒤에서 엉덩이를 붙잡고 걷게 해줘야 합니다.  


그럼에도 다리에 힘이 없는 방구는 '철퍼덕'하고 바닥에 넘어질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또 몸을 일으켜 세워줘야 합니다.


괴로운 방구는 연신 '끙얼끙얼'거리며 뭐라고 중얼거립니다.


아마 본인도 빨리 쉬나 응아를 하고 싶은데 안돼서 더 그런 거겠죠. 그 마음 잘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 거실을 몇 바퀴를 돌았을까요.


엎드린 채로 방구를 붙잡고 있는 저도 지치고, 힘겹게 걷는 방구도 지칠 때쯤

방구가 드디어 제자리에 멈추더니 엉덩이에 힘을 '뽝' 주기 시작합니다.

다행이네요. 성공입니다.  


그렇게 시원하게 볼 일을 본 방구는 언제 그랬냐는 듯 10분 만에 잠이 듭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싶습니다.

방구 기절~~~~

저도 그제야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고 허리도 쭈욱 펴봅니다.


언젠가 저희 집에 놀러 온 친구는 비실비실한 노견 방구와 푸돌이를 보더니 안쓰러운 마음에

아이들을 만지는 것조차 어려워하더군요.   


본인이 키우는 어린 고양이도 언젠가 나이가 들면 저렇게 힘들어할까 봐 걱정인 모양입니다.  


제가 친구에게 이렇게 얘기해주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아, 그냥 이 모습도 충분히 사랑스럽고 예쁘잖아!!

전 사실 노견 푸구(푸돌이와 방구)의 어렸을 적 모습을 보진 못했는데요,

정말 솔직히, 그냥 이 모습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볼 땐 털도 빠지고 뼈밖에 없이 빼빼 말라 볼품없을지 몰라도,

이 모습도 이 녀석들의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니깐요.

그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주는 게 아내의 기쁨이고 저의 행복입니다.


비록 노견 육아는 무척이나 힘들고 쉽지 않지만

푸구와 아내, 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끝까지 잘 해내가리라 믿습니다.  


푸구를 사랑해주시는 랜선 이모, 삼촌, 누나, 엉아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흘리개 멍뭉이 황방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