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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Jul 25. 2021

코흘리개 멍뭉이 황방구

콧물아 멈춰다오~

"보호자님, 방구가 콧물을 흘리네요"

우리가 없는 사이 푸구(푸돌이와 방구)를 돌봐주러 오신 펫시터분께서 걱정스러운 말투로 아내에게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전부터 콧물을 훌쩍거리기 시작한 방구는 감기가 걸렸는지 종종 재채기를 했다.

'에이취~ 에이취~~'


며칠 지나면 금세 나아지리라 생각했던 방구가 쉽사리 낫지 않자 진료를 보았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감기가 쉽게 낫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해주시는 선생님.

생각해보면 방구는 사람 나이로 120세가 넘는 어르신인데,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렇게 시작된 코흘리개 방구의 치료. 반려견의 기관지 치료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아내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이비인후과에 가면 받는 치료처럼, 강아지 코에 대고 증기를 쏘아 흡입하게 만든다고 한다.


근데 방구는 그게 싫은지 중얼중얼거리면서 고개를 휙휙 돌렸다고 한다.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방구 모습. 의사표현이 확실한 녀석이니 충분히 가능한 일. 그 모습이 꽤나 귀여웠을 것 같은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항생제 복용과 함께 몇 차례 병원을 다녀왔지만 방구의 감기가 좀처럼 낫지 않자 이를 세심히 살펴보면 펫시터분은 아내에게 또 다른 치료법을 권했다.


반려견용 네블라이져를 구매해보시는 건 어떻냐는 의견이었는데, 아내는 그런 게 있었냐며 화들짝 놀랐다. 즉시 아내는 네뷸라이져 구매 후, 주치의 선생님께 네블라이져용 용액을 처방받았고 식염수를 구매해 네블라이저를 소독할 수 있는 준비까지 마쳤다.


그렇게 시작된 방구의 콧물 치료 프로젝트.


아내가 처음으로 네블라이저로 방구의 코에 증기를 뿌려대자, 방구는 격하게 싫은 듯 중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휙휙 돌린다. 말로만 듣다가 직접 보니.... 방구 녀석, 아주 의사표현이 확실하다.


그렇게 고개를 돌릴 때마다 네블라이저를 코 앞으로 갔다 대니 방구도 여러 차례 고개를 돌리다 포기했는지 가만히 있는다. 대신 중얼중얼 거리는 건 계속된다. 뭐라고 말하는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아니 누나 나 이거 싫다고~~~~~~~ 하기 싫다고~~~~~ 그만하라구~~~~ 쫌"


아내는 방구의 흉내를 내면서 그 말투나 어감을 표현했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진짜 투덜이 황방구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19년 정도 같이 살면 반려견의 끙얼거림조차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는 걸까. 방구의 마음조차 이제는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아내만이 흉내 낼 수 있는 방구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방구가 졸려할 때즘 네블라이저를 틀어주면 가만히 얌전히 있는다는 것, 아무래도 황방구, 이 녀석도 졸릴 때는 다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듯싶다.

졸릴 때하니 얌전한 방구

아내는 하루 두 번 네블라이저 치료를 진행했고 방구 역시 매번 싫다고 고개를 돌리며 쭝얼쭝얼 되었다.


그렇게 둘의 지루한 싸움이 한 달쯤 지나자 확실히 방구의 컨디션이 좋아졌다. 콧물도 덜 흘리고 재채기 빈도도 확연히 줄었다.


"황방구!!! 그니까 누나 말 듣고 네블라이저 잘해야지? 그치? 우리 똥강아지 그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방구는 싫다며 이리저리 휙 고개를 돌린다. 그런 방구를 보며 아내는 사랑의 잔소리를 쏟아낸다.


그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짠하면서도 귀엽다. 우리 할배 개르신 오늘도 화이팅이야! 여보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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