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변 패드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무언가... 화면으로 보이기에 혈변으로 보였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고 있던 저는 황급히 스마트폰에 얼굴을 가까이 댔습니다.
'이게 뭐지!!! 설마 피인가? 뭐지? 피 맞나?'
CCTV를 이리저리 확대해보는데, 화질이 분명하지 않지만 붉은 빛깔이 도는 게 혈변이 맞는 것 같습니다. 푸돌이의 동선을 따라 흩어져있는 자국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 무언가 잘못되었구나...'
큰일 났다 싶어 이를 아내에게 바로 알렸습니다.
"어뜨케!!!"
전화기 너머 들리는 아내의 다급한 소리를 듣자니 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끝내 엉엉 울어버린 아내. 다행히 근처에 있었던 형님이 집을 방문해서 푸돌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홈 CCTV로 발견한 상황
화면 속 광경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어떻게 되는 거 아닌가 수십 번도 더 걱정했습니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요. 심지어 아내는 안 되겠다 싶어 사무실에 양해를 구하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형님이 도착해서 살펴보니 피가 아니고 토였습니다. 아기들이 분유를 먹고 분수 토를 하듯이 푸돌이는 습식 캔 사료를 분수 토처럼 내뱉었던 겁니다. 그래도 혈변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지요.
하지만 이 또한 푸돌이의 아픔의 표현이기에... 간밤에 먹은 영양제와 사료들을 다 뱉어낸 푸돌이는 형님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췌장염 수치나 신장 수치는 평소와 비슷하지만 위벽이 엑스레이 상으로도 심하게 부어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먹는 약과 보조제는 많은데, 밥은 잘 안 먹으려고 하니 아무래도 위에 부담이 많이 되었을 거라고 하네요...
아픔을 잘 표현하지 않는 녀석이기에 더 속상했습니다.
병원에 있으면 스트레스를 무척 받는 푸돌 도련님이지만 오늘 하루는 입원하여 치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푸돌이가 안정될 수 있도록 저녁잠이 드는 시간까지 병원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퇴근하고 곧장 병원으로 향한 아내, 푸돌이는 그렇게 좋아하는 아내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한참 동안 링거를 맞았습니다. 속이 편안해진 푸돌이는 다행히 병원에서 주는 저녁을 잘 먹었다고 하네요. 수액의 방울이 천천히 선을 따라 푸돌이의 몸에 스르륵 들어갑니다. 그 리듬에 맞춰 푸돌이는 노곤했는지 눈을 스르륵 감습니다.
다시 시작된 아내의 병간호에, 늦게 퇴근한 저도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 로비에 앉아 수액을 맞으며 아내에게 안겨있는 모습은 늘 방구였는데, 어쩌다 푸돌이도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요놈들이 번갈아가면서 병원 붙박이를 하고 있네요. 저를 본 듯 푸돌이는 살짝 눈을 떠 아는 체를 합니다. '엉아~ 왔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밤 10시까지 로비에서 푸돌이와 함께 있던 아내는 푸돌이가 졸려하는 듯하자 힘겹게 자리를 일어섭니다.
"푸돌아 오늘만 견디고 있어~~ 내일 누나가 또 올게, 내일은 꼭 집에 가자!"
이미 반쯤 눈이 감긴 푸돌이, 누나가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간호사분이 서둘러 녀석을 데리고 들어 갑니다.
다행히 푸돌이는 다음날이 되자 기력을 회복하고 퇴원했습니다. 아내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든 녀석, 그래도 이 정도면 참 다행입니다.
하지만 며칠 뒤, 이번엔 방구가 또 입원했습니다.
아이들을 세심하게 모니터링하던 아내가 방구의 배에서 평소보다 심하게 '꾸룩꾸룩' 소리가 난답니다. 게다가 평소보다 물을 많이 마시지만, 소변을 보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합니다. 아내의 온 신경은 온통 방구를 향해 집중되었습니다.
'신경 증상인가?' '탈장 때문에 힘든가?'
그리고 그날 새벽, 잠들어 있는 방구의 호흡이 매우 가파른 것을 발견한 아내는 다음날 바로 동영상을 찍어 병원 카톡방에 문의를 했고 출근한 주치의 선생님을 영상을 보고 놀라 바로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와달라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호흡이 매우 가파른 방구
아내가 아니었으면 이번에도 방구가 정말 위험할 뻔했습니다.
방구는 항문 아래쪽으로 탈장되어 있던 방광이 조금 찢어져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소변을 보기 힘들어했고 복수도 조금 차있는 상태였습니다.
다리에 힘이 없는 방구가 '픽'하고 주저앉거나 쓰러지면서 방광이 뼈와 계속 닿다 보니 찢어진 모양입니다. 나이가 어린 녀석들이었다면 당장 수술해야겠지만, 녀석은 수술도 어려웠습니다. 급한 대로 소변줄을 꼽아 방광에 차있는 소변을 비워주며 복수가 빠지기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복수가 차면 칼륨 수치가 상승해 심정지가 올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회복을 위한 수액(왼쪽) , 소변줄과 연결해 방광의 소변을 빼고 있는 모습 (오른쪽)
그렇게... 자연스레 아내의 병실 생활도 연장되었습니다. 푸돌이를 안아주었던 그 로비에 이제는 흰색 방구가 앉아있습니다. 아내 품에서 곤히 자고 있는 방구... 푸돌이와 마찬가지로 수액의 방울이 천천히 들어갑니다. 며칠 전에 이 모습 그대로 보았던 것 같은데... 아내 품에 안겨 있는 녀석만 바뀌었습니다.
불쌍한 아내, 아니 이런 말을 하면 아내는 불쌍한 건 본인이 아니고 방구와 푸돌이가 불쌍하답니다. 아... 역시 개호구의 생각은 저 같은 허접 개호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푸구(방구와 푸돌이)는 참 복 받았습니다.
다음날, 엑스레이 검사를 해보니 정말 다행히도 복수의 물이 빠졌습니다. 신기하게도 방광에서 더 이상 물이 새지가 않았네요? 하루 사이에 방광이 치유가 된 건 아닐 테고, 아마 살짝 찢어졌던 치유되는 과정 중에 이 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아내와 제가 정확히 몰랐을 뿐.
아내는 미안함에 방구를 더 꼭 안아줍니다.
"방구야~ 네가 아파서 그렇게 찡찡되었구나"
그렇게 다시 건강을 회복해 돌아온 두 녀석들!
'왈'
방구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의 품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손이 닿자마자 스르륵 잠이 든 방구. 방구가 조용하자 이번엔 푸돌이입니다. 이번엔 푸돌이가 졸졸 따라다니면서 아내에게 안아달라고 합니다. 요즘 들어 질투심 급상승 중인 귀여운 녀석,
"그래~ 알았어 이번엔 푸돌이 차례지?"
푸돌이는 원하는 걸 얻은 듯 편안하게 눈을 감습니다. 스르륵
두 녀석 모두 잠들자, 드디어 맘 놓고 웃는 아내. 행복한 듯 침실로 향합니다. 힘들지만 마음은 편안한 듯합니다.
"여보 힘들지 않아? 괜찮아?" "내가 힘들 게 뭐가 있어~ 힘들면 얘들이 힘들지. 얘들만 괜찮으면 다 괜찮아~"
말과 달리 몇 초 만에 코를 골며 잠이 든 아내. 힘들지 않다더니, 몸이 많이 노곤한가 봅니다. 잠든 아내를 보니 남편 된 입장에서 짠하기도 하면서도 대견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방구와 푸돌이가 이토록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녀석들 스스로의 힘도 있겠지만 본인의 많은 부분을 내어주며 희생하고 있는 아내의 헌신 덕분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입니다.
그 헌신을 이 녀석들도 잘 알아주겠죠? 잘 알아주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다 편안하게 우리 곁을 떠나갔으면 합니다.
6월 한 달 간도 잘 살아낸 푸구(푸돌이와 방구)도 아내도 저도, 그리고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