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돌이 발소리에 깨, 졸린 눈으로 쉬로 흥건한 바닥을 청소했을 아내 생각에 마음이 안 좋았다.
아내의 얼굴을 보니 다크서클이 쭈욱 내려와 있다. 간밤에 노견 푸돌이와 방구를 보살피느라 잠을 설친 게 분명하다.
나이가 들며 아내의 손길을 더 간절히 갈구하는두 할배는 침실로 들어갈 시간이면 우리를 졸졸 따라다닌다. 특히 푸돌이는 그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눈치채고 아내를 애처롭게 쳐다보곤 한다.
'너무 좁은데...' 잠깐 고민하던 아내는 이내 침대에 푸돌이를 눕힌다. 그리곤 그새 또 일어나 방구마저 데리고 온다.
"아니... 한 놈만 데리고 오면 한 놈이 너무 서운하잖아..."
그 말도 맞다. 둘 다 같이 자고 싶을 텐데... 아내는 본인의 자리를 이 아이들에게 내주고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한다. 불쌍한 두애(아내의 별칭)....
그럼에도 아내는 이 아이들을 위한 희생이 결코 아깝지 않은 듯,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결혼 3년 차, 우리 부부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아이를 언제 가질 것이냐'는 문제였는데, 나이를 생각하면 이제는 계획을 세워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는 19살 방구와 18살 푸돌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 강아지 별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우리 곁에 이 아이들이 없을 때 '아이'를 갖기로 협의된 상태였다. 오롯이 푸구(푸돌이와 방구)에게만 전념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해가 지나갈수록 노산에 대한 걱정으로 초조함이 커지기 시작했다.
‘노견을 키우면서 출산하고...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다시 말해, ‘아기가 있더라도 노견 푸구를 지금처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다
사실 신생아가 태어나면 자연스레 강아지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사례를 종종 지켜보았던 아내와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매우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제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푸구에게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결코 줄거나 작아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이 아이들이 소외되지 않을까 걱정하던 아내는 많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구에게 가장 좋은 것은 내가 늘 곁에 있어주는 거야!
푸구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보호자로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아내는 임신과 출산이 반려견과 대치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출산하게 되면 아내가 자연스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아내가 있는 집은 두 녀석들에게 파라다이스나 다름없을 것이다.
노견 돌봄에 임신, 출산까지 너무 힘들지 않겠냐고 되묻는 나에게 아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희생이 뒤따를 것을 잘 알지만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열 배 힘들어도 백배 더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개호구. 아내는 이런 사람이었다.
여러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일 테니 나는 전적으로 아내를 지지한다. 그 어떠한 것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생할 두애가 제일 걱정되지만 그렇다고 아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라고 할 수도 없다. 아내가 제일 행복한 것이 내가 제일 행복한 길일 테니깐 말이다.
그렇게 결론 내리자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양자택일의 길목에서 그 둘을 포함하는 길로. 비록 그 길이 지치고 힘들고 '극한의 희생'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만 잘 유지하면 우리는 이 아이들을 소중히 떠나보내고 새로운 생명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잠을 설친 아내는 사무실에 앉아 커피를 3잔째 마시고 있다고 한다.
"불쌍한 푸구누나....!"
"마장.. 불쌍... 그래도 괜츈!!ㅋㅋ"
스스로 불쌍하다면서 괜찮다는 건 뭔지... 아내의 이중적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우리가 이 녀석들을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홈 CCTV로 바라본 방구는 우리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짖고 있다. 애처로운 녀석... 가냘픈 노견 목소리로 애타게 찾는 할배멍뭉이. 그래 알았어, 누나랑 엉아가 금방 갈게!!! 기다료라 방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