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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May 31. 2021

노견 푸구를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만물박사 아내

시선강탈 우중(雨中) 개모차 라이딩

"여보~~ 얘네 봐, 내 자리 다 뺏었어 ㅠㅠ"



'푸구는 일어났냐'는 내 물음에 아내는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사람 한 명이 앉으면 꽉 찰 공간에 푸돌이와 방구가 다리를 쭈욱 펴고 누워있어 아내의 자리는 없다. 소파 팔걸이에 살짝 걸터앉은 아내의 모습이 상상돼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본인 자리가 다 뺏겼다고 슬픈 척 하지만 노견 녀석들이 소파 위에서 편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해맑게 웃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늘을 올려 보니 맑은 하늘에 흐리지 않은 화창한 날씨, 개르신들이 좋아하는 개모차 라이딩에 딱이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집에서 꽤 거리가 있는 반려견 전용 마트. 요새 더 입맛이 까다로워진 푸돌 어르신께서 특별히 찾는 사료가 있어 그걸 구하러 먼 길을 떠나기로 했다.


개모차에 애들을 태우고 두 발에 시동을 걸 때쯤,

'탁..탁.. 타타타타탁'

빗물이 아파트 복도 창문을 거세게 때린다.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 비는 아내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런...'

소나기가 있을 거라는 예보는 일찍이 봤지만 하필 이 타이밍에 비가 쏟아지다니... 힘이 쫙 빠져버렸다. 개모차 산책은 글렀다고 생각한 나는 마음을 접고 집으로 들어가자 말하려는 찰나, 아내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생각지 못한 꾀를 낸 게 분명했다.


저 쪼그마한 손에서 뭐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이번에는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살짝의 기대와 초조함이 스쳐가는 순간,

"짜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우산 달린 개모차를 만들었다.


1차 우중개모차 / 자세히 보면 드러누운 방구의 앙상한 두 다리가 보인다.


"햐...참~ 여보는 대단해, 정말 대단해~~"

푸구(푸돌이와 방구)가 좋아하는 개모차 산책을 포기할리 없는 아내가 잔머리를 굴려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이 결과물은 라이딩 중간중간 점점 안정적으로 바뀌게 되는데, 그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내가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깥공기를 들이 마신 푸돌이는 기분이 좋은 듯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바깥 경치를 구경했고, 방구는 '덜컹덜컹'거리는 개모차의 진동이 만족스러운지 다리를 쭈욱 펴고 누운 채 잠이 들었다.

 

투명우산에 비친 푸구. 이 시간이 가장 편안한 방구

1/3 왔을까? 빗방울이 굵어지자 앞쪽으로 아주 약간의 비가 들이치기 시작했다. 푸구가   방울의 비도 맞지 않게 하려는 아내는 '끼이이익' 개모차를 멈춰 세웠다.


"왜? 또 뭐하려구..??(긴장)"

"기다려봐~~~ 있어봐~~~~"

또 신이 난 듯한 아내의 표정. 아내의 눈빛만 봐도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우산을 든 채 멍하니 아내를 쳐다보고 있었다.


'툭~ 툭~ 툭~'

아내는 우산의 비닐을 벗겨내고 안쪽의 우산살을 직각이 되도록 꺾었다. 둥그란 원형 형태에서 끝이 직각형태로 꺾이니, 보다 안정적으로 흩날리는 비를 막았다.  모습에 뿌듯한 , 아내는 신나는  가위 모양의  모양을 만들어 "가즈아~~~"라고 외쳤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지칠 법도 한데 푸구만 보면 에너지를 받는 아내의 모습에 나는 '어우.. 정말 못 말리는 개호구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와는 정말 다른 아내의 모습이 참 신기하면서 그 사랑의 크기는 감히 내가 범접할 수 없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애견마트에 들어가있는 누나를 의젓하게 기다리는 푸돌(아내의 시선)


개모차 우산이 꽤나 시선강탈이었던 모양인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마다 우리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대부분 '그냥 귀엽다'정도로 끝나는 눈빛이었지만 일부 개호구로 추정되는 분들은 순간 눈가에 주름이 잡히며 하트 뿅뿅의 기운을 발사하기도 했고 마스크에 가려져 보이지 않음에도 상상할 수 있는 입가의 미소를 지어내고 있었다.


아내는 그 모습을 보며 길거리의 멍뭉이를 보면 본인도 저런 표정이냐고 물었다.

"나도 저래? 아 내 표정이 저렇겠구나. 개호구들은 다 똑같나 봐"


마트에 들렸다가 돌아오는 길, 우산을 보수할 장비를 사러 다이소에 들른 아내는 실망한 듯 터덜터덜 걸어왔다.

"왜~? 없어?"

"응.. 없어..."

"괜찮아~ 지금도 비 거의 안 맞잖아~"

내 위로에도 성이 차지 않은 아내는 갑자기 무언가 또 생각났는지 나를 멈춰 세웠다.


"여보 잠깐만! 기다료봐!! 키키키"

또 신나 보이는 저 표정, 벌써 3단계다. '여보.. 가다가 계속 멈추면 오늘 안에 집에 갈 수 있는 거야..?'

'뚝딱뚝딱뚝딱'

아내는 한참이나 우산을 만지더니 이번에는 우산 살을 다 벗기고 비닐만으로 개모차를 덮어 씌었다.



"이 생각을 왜 진작에 못했지? 우비처럼 쓰면 되잖아?"

아내의 뿌듯한 표정. 이제는 진짜로 단 한 방울의 빗방울도 개모차에 스며들지 않았다. 나는 아내의 정성에 혀를 내두르며, '역시 진짜 개호구다'를 외치며 엄지 손가락을 '척' 보냈다.


그렇게 도착한 .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 3시간 넘게 걸은 우리는 서둘러 녀석들에게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우걱우걱 식사 후  '푹' 쓰러져 쿨쿨 자는 두 녀석들. 단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걸은 우리보다 더 노곤해 보인다. 그 모습이 한없이 귀여운 나와 아내는 사진으로 연신 기록을 남긴다.

"여보~~~ 얘네 또 기절했는데???"

"아니 푸돌이는 여기저기 구경했으니깐 인정, 근데 방구는 왜? 계속 자기만 했잖아. 웃겨 증말"

아내는 푸돌이보다  깊게 잠든 방구를 보며 귀여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얘기한다.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푸돌이와 방구도 일어나 약을 먹어야 하는데,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노곤했을 테니 자게  놔두자는 아내는 기분이 좋은  콧노래를 부르며 저녁 준비를 한다.


푸구가 행복한 것이 곧 아내의 기쁨이다. 물론 그건 내 행복이기도 하다. 이렇게 푸구와 두부두애의 우중 개모차 라이딩은 대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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