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구독자 분의 댓글로 다시 키보드를 잡았습니다.
회사 업무로 바빴던지라 브런치에 한동안 소식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어제였던가요? 고마우신 구독자분께서 푸구(푸돌이와 방구)에게 혹여 안 좋은 일이 있는지 안부를 여쭈어왔습니다. 그 댓글을 보니 할 일이 많더라도 소식을 전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주 조금은... 귀찮기도 했습니다. 생각했던 것만큼 제 글에 대한 반응이 없길래, '재미가 없나'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글을 연재하는 간격이 일주일에서 이주일이 되어가고... 어느새 한 달이 되어 이렇게 오랜만에 브런치에 접속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할배 노견들의 일상을 기록해 아내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써보겠다는 첫 마음도 희석된 것 같아 스스로 많이 반성했습니다. 사실 아내는 제 이런 모습을 진작에 눈치채고 소원해진 브런치는 언제 복귀할 것인지 묻기도 했지요.
5월 한 달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큰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차분히 이겨내는 중입니다. 저희 부부뿐만 아니라 푸돌이와 방구도 그런 마음이겠죠? 이 녀석들도 스스로 잘 싸워나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1. 방구가 전에 아팠던 췌장염을 극복했지만 이번엔 푸돌이가 췌장염에 걸렸네요.
스테로이드를 장기 복용해 간 수치가 지나치게 상승한 방구는 간에 대사 되는 약물을 최소화시키고 경과를 지켜보는 중입니다. 반면 요도암으로 늘 걱정인 푸돌이는 신장 수치가 생각보다 안정적이라 다행이지만, 췌장염으로 고생 중입니다.
방구가 췌장염을 극복한 지 불과 2주도 채 되지 않았지만 둘이 이렇게 꼭 번갈아가면서 아프더라구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둘이 동시에 아프지 않아서 한시름 덜어놓을 수 있는 걸까요?
두 어르신들은 나이만큼 아픈 곳이 한 둘이 아닙니다. 이 두 노견을 데리고 병원을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만 아내와 저는 푸구가 입원하지 않고 통원치료가 가능한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2. 아이들의 개모차 산책
요즘 아내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바로 아이들을 개모차에 태우고 바깥공기를 쐬어줍니다. 아내가 보이지 않아 화가 잔뜩 난 방구도 이 순간만큼은 모든 노기를 가라앉히고 평온하게 바람을 만끽하곤 합니다.
심지어 푸돌이는 아내와 제가 옷만 갈아입어도 같이 가자고 앞에 나와 보채기도 합니다. 아니 푸돌이 녀석은 치매를 앓고 있는데, 어떻게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아는 걸까요?
그런 모습을 보면 아내는 종종
"푸돌아 너 치매 아니지? 솔직히 말해봥~ 누나가 봐줄게~"라며 장난을 치곤 합니다.
비가 오지 않는 주말에는 넷이 외출하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목적지는 주로 병원이지만, 진료를 마치고 잔뜩 기분이 상한 푸구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아내와 저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걷고 또 걷습니다. 요 두 녀석은 개모차에 편히 앉아 바람만 쐬면 되지만 아내와 저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느라 바쁘지요.
저희만 고되게 산책했나 싶어 이 두 녀석을 바라보면 어느새 방구는 누나 품에서, 푸돌이는 혼자 편안하게 유모차에 누워 곤히 잠듭니다. 그 모습을 보면 2시간 넘게 걸어 쌓인 피로도 '스르륵'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진짜 아기를 키우는 부모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하하;;
3. 푸돌이의 소심한 복수와 질투
감정 표현이 많지 않은 푸돌이도 사실 누나의 품을 아주 좋아합니다. 나대는(?) 방구 때문에 늘 한걸음 뒤에서 아련하게 바라보지만 방구가 잠이 들면 안아달라고 누나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푸돌이 입장에서 얼마나 방구가 얄밉고 미울까요? 푸돌이가 참 착해서 다행입니다.
엇, 그런데 푸돌이가 요새 방구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곤 합니다.
앉아있는 방구의 등 위에 털썩 안기도 하고요, 방구의 밥을 뺏어 먹기도 합니다. 게다가 카시트에 아이들을 앉히고 병원 수납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는 방구를 다그치던 푸돌이의 모습도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사람의 관점에서 '다그친다'라고 표현했을 뿐, 착한 푸돌이는 의도치 않은 행동일 겁니다. 그치만 그 모습이 귀여운 아내는 푸돌이를 한 번 더 안아줍니다.
4. 펫시터의 생활화
아내의 재택근무가 축소되면서 오전은 펫시터 분이, 오후는 휴직 중인 형님이 아이들을 돌봐주십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을 너무 아껴주시는 펫시터님을 만나 마음 편히 출근할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주에는 아이들과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남양주의 반려견 전용 캠핑장이었는데요, 이제 나름 캠견이 된 푸구는 익숙하게 자연을 즐기고 집에 있을 때보다 더 꿀잠을 자곤 합니다. 신기하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몸은 느린 속도지만 조금씩 망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니깐요. 그럼에도 아내와 저는 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긴 시간이 남지 않았음을 잘 알지만, 늘 그래 왔듯이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지켜줄 것입니다.
푸구를 응원해주시는 랜선 삼촌 이모들도 아이들에게 힘을 주세요.
매번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
조만간 또 돌아와서 이야기 들려 드릴게요!
이 글을 마무리하려는 찰나, 19살 노견 방구 녀석이 안아달라는, 아니 정확히는 자기를 어서 안으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냅니다. 이어지는 목청 큰 소리 '왈!!!'
"어이구 우리 방구 깼어? 알았오, 알았어! 엉아 글만 마무리할게, 금세 할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계속 쳐다보는 방구의 눈빛에 못 이긴 저는 녀석을 푹신한 이불에 돌돌 말아 들어 올려 무릎에 올려놓았습니다. 이 녀석, 이내 편안한지 눈을 감고 혀를 살짝 내밀고는 곤히 잠들었습니다.
아윽... 무릎에 녀석을 올려놓고 글을 쓰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네요... 그래도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은 방구를 깨울 수 없어 끝까지 참아봅니다. 이렇게 개호구가 되는 훈련을 저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점점 더 늘겠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