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ry everything Feb 11. 2024

우산이 내게 말을 건넸다.

은희경의 '또 못 버린 물건들'

오랜만에 들린 서점에서 가죽의 느낌이 나는 진한 갈색 표지를 가진 책을 발견했다. 요즘 출판업계가 불황이라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었던 터라 다른 책과는 달리 돈을 좀 쓴 것 같은 책에 눈길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뭐야, 이 책은 뭐길래 돈을 좀 쓴 것 같은데? 하며 책을 드니 '은. 희. 경.'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이 사람 유명한 작가 아닌가? 하며 책 표지를 들추니 예상이 적중했다. 1995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수많은 소설과 각종 문학상을 수상한 내역이 프로필에 빽빽이 적혀있다. 이쯤 되니 책 뒷장을 넘겨 몇 쇄 인쇄했는지 궁금해진다. 2023년 8월에 발행돼서 채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3쇄까지 발행한걸 보니 유명한 작가의 잘 팔리는 책이 틀림없었다.


물음표에서 시작한 첫인상이 수긍으로 끝난 순간이었다.


게다가 책 소개글은 왜 이렇게 내 스타일인지. 바로 홀려버렸다. 이 책에, 그리고 은희경의 글에.


오래된 물건들 앞에서 생각한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변해서 내가 되었구나.
누구나 매일 그럴 것이다. 물건들의 시간과 함께하며...

-본문 중에서


물건을 잘 사지 않기도 하고 오래 쓰는 편이라 내 물건 중에는 작가의 그것들처럼 오래된 물건이 꽤 있다. 물건의 기능성을 중시하는 편이라 기능이 온전한 이상 새로 사지 않는 편이기도 하며, 오래 쓰려고 작정한 것도 아닌데 어느새 세월이 이만큼 흘러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언뜻 보이는 것 중에 (생명이 있으니 물건은 아니지만) 거실 한편에 자리 잡은 고무나무가 있다. 2006년 첫 발령을 맞아 자취를 시작하는 집에 초록색 식물 하나 들여놓고 싶어 하나로 마트에서 산 만원 정도의 식물이다. 거의 20년을 살아낸 고무나무는 전문지식 하나 없는 식집사의 가지치기로 혈육을 2그루 더 생산하고 3개의 화분 속에서 크고 있다. 가장 굵은 몸통이 지름 3cm 될까 한 마른 몸을 가져 위풍당당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의 교직생활만큼이나 긴 시간을 꿋꿋이 버티는 아이다.


또 하나는 대학생 때 산 검은색 반지갑이다. 지금은 핸드폰이 지갑의 역할을 겸하고 학교 근무 특성상 귀중품을 따로 보관하기 애매하여 지갑을 안 들고 다닌 지 꽤 오래되었다. 물건을 안 쓴다고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향 탓에 지갑은 20년 가까이 내 곁에 생존해 있다. 그때 그 시절, 지갑은 빨간색을 써야 돈이 많이 들어온다고 하여 성인인 되어 가진 첫 지갑은 빨간색이었다. 몇 년을 잘 가지고 다니다 빨간색에 싫증 날 때쯤 시크한 블랙의 지갑을 샀고, 그 이후로 지갑을 산 기억은 없다. 이 지갑은 카드를 정말 많이 넣을 수 있는데 지폐 넣는 쪽에 숨겨진 카드꽂이도 있어 들키고 싶지 않은 주민등록증도 넣을 수 있었다. 또한 아까도 말했듯이 블랙이 주는 아우라가 있어 내 사랑을 듬뿍 받았다. 지금은 뽑아놓은 현금을 가장 안전하고 깨끗하게 보관하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이렇게 내가 또 못 버린 물건들과 은희경 작가의 또 못 버린 물건들을 하나씩 비교해 가며 글을 읽었다. 그러다 '우산과 달력 선물하기'라는 4장의 첫 문장인 '나는 한 때 비가 오는 날마다 한 사람을 생각했다. '를 읽자마자 그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선물해 준 우산까지도.


나는 한 때 비가 오는 날마다 한 사람을 생각했다. 바로 내가 우산을 선물했던 사람. 오늘 그 우산을 쓰고 나갔을까. 마음에 들었을까. 그런 날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또 생각했다. 지금 그 사람도 내가 선물한 우산 아래에서 걷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짐작은 우산이 비 오는 날에만 사용되는 물건이기에 가능하다.


지금은 그나마 덜하지만 20대 때까지도 '비'를 정말 싫어했다. 비가 내리는 것도, 비를 보는 것도 모두 싫었다. 비가 오면 마음이 축 쳐졌고, 심한 생리통이 있는 날처럼 온몸이 찌뿌둥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비가 오는 날이면 걸음마다 튕겨져 오르는 빗물에 운동화와 양말이 젖었다. 정류장에 생각 없이 서있다 보면 지나가는 차에 구정물이 튀기도 했다. 가까스로 탄 버스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이 사람들의 발길에 치이며 또다시 종아리와 신발을 적셨다. 여름날의 비 오는 꿉꿉함은 학생들과 사람들을 꽉꽉 채운 버스를 집어삼켰으며 창문도 뿌옇게 만들어 밖이 보이지도 않았다. 비 오는 날의 기억은 이랬다.


20살 때 처음 만났던 남자친구는 비를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는 나를 잘 알았다. 아마 비 오는 날에 데이트한 기억이 별로 없는 것을 보니 데이트도 안 했었나 보다. 20년 전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남자친구와 꽤 오랫동안 연애를 하다 헤어지게 되었다. 햇수로 5년 정도의 연애였으니 헤어짐도 쉽지 않았다. 헤어진 이후에도 그가 내 마음을 되돌리려 노력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그가 우산을 선물해 주었다. 장우산이라는 것만 빼면 모양도 색도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비 오는 것 싫어하는데 이젠 옆에 있어줄 수 없으니 비 올 때마다 이 우산을 쓰면서 조금이나마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어.'라는 편지와 함께 말이다. 헤어진 연인이 준 선물이었지만 버리진 않았다. 비바람이 꽤 부는 날에는 성가시긴 했지만 튼튼하면서도 예쁜 그 우산을 썼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우산이 참 예쁘다고 한 마디씩 했으며 신기하게도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이런 의미의 우산을 쓴다는 것, 그리고 그런 마음이 담긴 선물 받았다는 것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비 오는 날이 한 번 두 번 지나갈 때마다 그 우산은 내게 '비를 좀 덜 미워해 줘.'라며 말을 건넸고, 차츰 비 오는 날은 '정말 싫은 날'이 아닌 '그저 그런 날'이 되어갔다. 그에게는 '네가 우산도 버렸어. 이제 우린 정말 끝이야.'라는 모진(?) 말을 하며 끝내 헤어지고 말았지만 사실 그 우산은 내 곁에 남아 오랜 시간 동안 비 오는 날의 나를 달래주었다.




나는 한 때 비가 오는 날마다 한 사람을 생각했다. 바로 내게 우산을 선물했던 사람. 그런 날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또 생각했다. 지금 그 사람도 내게 선물한 우산을 기억할까. 이런 짐작은 우산이 비 오는 날에만 사용되는 물건이기에 가능하다.


작가의 글을 내 버전으로 조금 바꾸어본다.


순수했던 첫사랑의 기억을 비 오는 날에만 아주 가끔 해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비가 가끔 내려 다행이다.

작가의 이전글 여기까지 와서 이럴 일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