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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Mar 11. 2023

'금쪽같은 6-8반' 입니다.

어머, 생각하시는 그 금쪽이 아니에요.

6학년이라서 걱정을 엄청지만 6학년과 함께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은 나는 걱정은 많지만 꿈이 가득한 교사다.


1주 만에 학급 1년을 안내하고 구성하기엔 빠듯한 시간이지만 하나씩 시작하지 않으면 어느새 1학기가 훅 가버릴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시작반'이라는 말처럼 일단 저지르면 뒷 일은 물 흐르듯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학급 이름을 지어보기로 하였다. 6년 동안 다닌 학교를 졸업하는 길에 추억하나 생생하게 남겨주고 싶고, 조금 더 큰 만큼 학급의 구성원으로 애정을 갖고 주체적인 학급 생활을 하게 하려는 마음이다.


먼저 우리 반의 이름을 생각하고, 그 이유를 글쓰기 공책에 적어 보기로 하였다.


"이름에는 힘이 있어. 우리가 바라는 우리 반의 모습을 담아 이름을 지어볼 거예요. 그냥 재미가 아니라 부르면서도, 불리면서도 기분이 좋고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는 이름. 한번 생각해 볼까요?"



금세 아이디어가 떠오를리는 없으니 시간을 여유롭게 주었다. 생각이 떠오른 아이는 고개 들지 않고 써 내려가는가 하면, 5분이 지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아이는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소리 없이 고통스러워한다.


'그치, 나도 그 마음 안단다. 쓰고 싶지만 한 문장 써 내려가기 힘든 그 마음 알지.'


그 아이를 보며 한 마디 덧붙인다.


"너무 어려운 친구들은 변에 있는 것을 활용해서 이름을 지어봐도 괜찮아요. 예를 들어, 프로그램 이름이라던지, 책 이름이요. 천재 화가인 피카소도 '우수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말했듯이, 무에서 유가 아니라 유에서 유를 만들어 봅시다."


갑자기 아이들의 펜이 급하게 움직인다. 요즘 유행하는 프로그램, 노래, 게임의 이름이 다 나온다.


이제는 어느 정도 마무리 된 것 같아 4명이 모여 쓴 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1개의 이름을 뽑기로 하였다. 그렇게 해서 오른 이름들은 칠판에 쓰였다.

슬쩍 보면 대종상 시상식 느낌이 난다.



1. 피지컬 68

2. 68 스캔들

3. 6과 8 승강장에서 29명이 기다려.

4. 행복한 6-8

5. 긍정왕 6-8

6. 파이팅 해야지. 6학년 8

7. 금쪽같은 6-8



이름과 그 이유를 들으니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그러나 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금쪽같은 6-8반'이다. 내 아이들이 금쪽이가 되어선 안된다. '68 스캔들'도 드라마는 재미있었지만 스캔들이 가지는 의미가 부정적이고, 우리 반에서 스캔들이 터지면 안 된다 생각하니 내심 걱정이 된다. 사주도 이름이 좌지우지하는데 이름을 괜히 잘못 지어서 시작부터 잘못 꿴 단추 같을까 걱정이다.  이름을 중간에 개명할 수도 없고 이름 짓는 걸 취소할 수도 없다.


아이들에게 스티커 2장을 준 뒤 마음에 드는 이름에 투표를 하게 했다.


'"금쪽이 인기 개많아."(고운 말을 쓰라고 해서 이 정도다.)

"와, 우리 금쪽이래."


아이들은 좋다고 난리다. 내게도 뭔가 촉이 온 그 이름이 아이들에게도 촉이 왔나 보다. 물론 같은 이름, 다른 느낌이었겠지만.


"우리 반의 이름은 '금쪽같은 6-8반'이 되었습니다. 혹시 '금쪽같다'의 뜻을 알고 있는 사람 있을까요?"

"금같이 귀하다는 뜻 아니에요?"

"맞았어요. 매우 귀하고 소중하다는 뜻이에요. 너희들은 항상 매우 귀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잊지 말고, 프로그램 속의 금쪽이가 아닌 진짜 금쪽같은 멋진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제발, 부디, 꼭이요.)



아이들은 신난 듯이 소리 높여 괴성으로 화답한다.

"네"


'너희들 약속한 거다. 약속 지켜라.'


(사진 출처: 금쪽같은 내 새끼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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