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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Mar 07. 2023

카리스마, 네 이놈 게 섰거라.

"오늘 학교 어땠어?"

"어, 나쁘지 않았어."


아이의 목소리에 약간 아쉬움이 묻어있다. 작년 담임 선생님이 올해도 담임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딸은 방학 내내 바라왔다. 작년에는 멀리서 이곳으로 전학을 오는 바람에 잘 적응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선생님 덕분에 학교 가기 싫다는 말 한마디 없이 1년을 즐겁게 생활을 했다. 집순이라 유치원이나 학교를 좋아했어도 집이 최고라 말하던 아이였는데 학교 가는 게 정말 재밌다는 말까지 하니 엄마 된 마음으로 지난 1년이 행복하고 감사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새로운 학년에 미치는 영향이 이리 클 줄은 몰랐다. 기준이 작년 선생님이니 아무리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 한들 성에 찰까 싶어 약간 걱정도 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이 되겠지만 새 학기는 여러 모로 신경이 쓰인다.


"엄마는?"

"엄만 망했어. 학생들이 엄마를 안 무서워하는 것 같아."

"그게 나쁜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엄마는 카리스마 있게 보이고 싶었어."


아이는 그 말을 듣고 괜찮다고 위로해 준다. 딸이 어른스러운 건지, 내가 철이 없는 건지.




교사로 근 20년간 지내다 보니 반무당이 되는 경우가 있다. 새로 샀는지 유난히 하얗게 보이는 학생의 실내화가 눈에 띌 때가 있다. 실내화가 헐떡 거릴 만큼 사이즈가 큰 것을 알아채고는 아이에게 실내화가 크니 계단에서 넘어질 수 있어 걸을 때 조심하라 신신당부까지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에서 실제로 넘어져 다치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쉬는 시간 아이들의 장난이 과해질 때쯤 싸움이 될 것 같아 그만하라고 해도 싱글벙글하며 하나도 안 아프고 그저 노는 거라며 괜찮다는 아이들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싸움으로 번져 나에게 SOS를 요청한다. 이렇게 길게 설명한 이유는 내가 걱정하는 '무섭지 않은 선생님'이 가지고 올 파급 효과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무섭다는 표현이 벌벌 떨게 하거나 공포심을 갖고 두려워하게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그러하지 않은가. 부모가 자녀에게 쉽게 휘둘리고 줏대가 없으면 자녀는 그것을 무기로 삼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아이들이 마주하는 교사가 처음부터 단단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휘둘릴 것 같은 인상을 주면 그 해는 학급경영을 하기 어려워진다. 아이들도 눈치가 백 단인 것이다. 3월이야 처음이라 긴장도 되고, 눈치도 보며 자신의 모습을 숨기곤 하지만 곧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나를 포함한 든 이의 자유로운 행동이 곧 나의 안전과 자유를 침해하는 행동으로 돌아오는 순간 교실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나 학기 초에 아이들에게 무르지 않고 심지가 있는 교사의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들도 제법 긴장을 하고 규칙을 지키려 노력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 사고는 발생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처음에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의 교사를 무서운 교사, 나쁜 교사, 사랑이 없는 교사라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개학식 첫날, 긴장하는 듯하면서도 인사도 잘하고 넉살 좋은 아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남편과 딸이 있다 하니 "선생님, 결혼 안 하신 줄 알았어요."라는 학생의 말에는 두 번째  찐 웃음이 나왔다. 역시 6학년은 다르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센스도 장착했다. 그다음에는 마스크를 쓰고 작게 말하는 아이의 말이 잘 안 들려 몇 번이나 물어보고선 제 발이 저렸는지

"선생님이 작년보다 1살 더 먹어서 그런가 잘 안 들리네. 선생님을 위해 좀 더 크게 말해줄 수 있을까?" 부탁을 하니 한 아이가 대뜸 "선생님, 노화가 시작된 거예요?"라고 말한다. 울었어야 했는데 세 번째 웃음까지 터져 버리니 내가 장황하게 설명한 카리스마 있는 교사는 이미 물 건너간 듯싶다. 그 이후로도 많은 웃음을 보이고 손수 농담까지 건넨 뒤, 아이들에게 손까지 흔들어가며 친절하게 배웅을 해주었다.


'아, 내 카리스마....'


경력과 노하우가 있는데 이 정도로 얕보일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너무 웃음을 남발한건 아닌가 싶어 살짝 걱정도 된다. 아이들이 내 첫인상을 너무 좋게 봐서 부담이 될 정도다. 부디 아이들이 나의 우려를 잠재우고, 반무당이 이번엔 헛다리 짚었다고 고백하길 바란다.




다음 날 딸아이가 출근하는 내게 말을 건넨다.


"엄마, 그냥 오늘도 재미있는 선생님 해."

"왜?"

"그게 좋아."


그러자, 웃음도 많고 카리스마도 있고 온화하면서도 단단한 선생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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