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ry everything Feb 28. 2023

6학년 교실에 입장 하시겠습니까?

괘...괜찮겠죠?

2월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이면 3월이라니 걱정이 앞서지만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고 하루 더 쉬어갈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삼일절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단지 쉬는 날이라고 치부한 내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쉬는 날을 귀하게 여기는 불쌍한 직장인에 대한 마음으로 너그러이 봐주길 바란다.)

그럼 그다음 날은 바로 3월 2일 개학이다. 전국 각지, 모든 학생들의 학교 생활이 시작되는 날이다. 새로운 해의 시작은 1월 1일이 분명 하나 아마 학생이나 교사에게 새해의 시작은 이 날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는 중, 고교 교사와는 다르게 1~6학년까지 6개 학년을 지도한다. 지도하는 학생들의 연령 격차가 크다 보니 어느 학년을 맡는지에 따라 교사로서 필요한 역량이나 태도가 많이 달라진다. 때문에 교사 본인이 가진 특성에 따라 선호하는 학년이 정해지기도 하는데, 보통 1학년과 6학년은 지도에 어려움이 많기에 비선호 학년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사의 선호, 비선호는 개인의 기호일 뿐 학년을 맡는 것에 고려되지 않을 때가 많다. 학교의 여건에 따라 학년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6학년을 맡게 되었다. 1학년을 많이 맡았던 터라 6학년을 맡았던 게 언제였던가 생각해 보니 10년 전 내가 임신했을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졸업 공연인 난타를 지도하면서 태교에 안 좋을까 봐 조금이라도 소리가 덜 들리라고 배를 감싸 쥐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만에 6학년을 맡을 생각을 하니 앞이 까마득했다. 아니 울고 싶었다. 일 년마다 꾸역꾸역 먹어놓은 나이가 올해는 40인데 과연 10대 아이들과 소통이 될까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한숨만 푹푹 나온다.


6학년. 나 살아 남을 수 있을까?




6학년 담임으로 통보가 된 순간 이젠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돌이킬 수 없으니 재빨리 준비해야 한다. 방학 동안 새 학년 학생들과 해보려고 했던 글쓰기 교육 방법이나 교육 활동을 6학년 버전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간간히 아니 십 분에 한 번 꼴로 '나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을 가로막긴 하지만 걱정만 하기에는 2월이 짧다. 혹시나 전에 맡았던 학년을 그대로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정리해두지 않았던 교실도 신속 정확하게 비우고 새로운 교실로 이동해야 한다. TV에서는 이직이나 퇴사를 하면 사무실 책상에 있는 비품을 작은 박스 하나에 담아 떠나곤 하는데, 우린 다르다. 박스에 담기는 것이라고는 잃어버리거나 안 가져온 아이들을 위한 가위, 풀과 같은 학용품, 모둠 활동 때 필요한 유성매직, 커다란 종이, 게시판 환경물품, 예쁜 스티커, 촉감이 다른 클레이, 희귀한 테이프, 아이들의 쉬는 시간 활동을 위한 공동 놀이물품, 체육 물품, 애들 주려고 산 젤리를 큰 박스 여러 개에 바리바리 싸들고 움직인다. 매년마다 내년에는 박스 3개로 이사할 거라고 큰소리치지만 작년에도 못 지켰고, 올해도 못 지켰고, 내년도 못 지킬 것 같다.


바쁘게 교실을 이동하고 나니 6학년이 더욱 실감이 난다. 잠시 쉬는 겸해서 목장갑을 한 짝만 벗고 작년에 6학년을 맡았던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나 올해 6학년이래. 잘할 수 있을까?(엉엉)"

"당연하지, 뭘 못해. 잘하면서. 근데 나는 올해 1학년이야. 1학년 처음인데 어떻게 해야 되는 거니?"

"6학년 했으면 1학년도 할 수 있지."

"근데.......(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었어)."


뭔가 찜찜함이 가득하지만 서로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주고 끊는다. 그 와중에 잔잔한 에피소드를 한 두 개 듣고서는 서로 큰일 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올 한 해를 위해 더 준비를 해야 한다. 6학년 지도에 도움이 되는 연수나 강의를 검색해 본다. 유료, 무료 상관없이 장바구니에 큰 손처럼 담아 결제와 신청을 한다.

'새 학년을 여는 마음가짐과 활동', 'AI 활용 교육', '마음 챙김 멘토링', '함께 가꾸는 학급살이', '그림책과 함께하는 학급운영', 그러다 한 강의가 들어온다. 제목 한번 잘 지었다. '6학년 담임 구하기 Lv.1'도 듣고, '6학년 담임해도 괜찮아!'라는 책을 밑줄까지 그어가며 완독을 한 상태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긴장이 된다.


이런 긴장과 걱정 속에서 막연하게 새싹처럼 기대감이 솟는다. 코로나로 인한 방역 조치도 많이 완화되니 평소의 학사 일정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고, 소극적이었던 모둠 활동도 할 수 있고, 온라인 수업 교구들도 구비되어 태블릿을 교실에서 활용하면서 말이 통하는 아이들과 다양한 수업을 해 볼 수 있을 거 같아 설레기도 한다. 초등학교 5년 짬밥이 있으니 척하면 척일 것이다. 30명이 모인 곳이니 다양한 사건이 발생하겠지만 큰 사고 없이 평화롭고 즐겁게 지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두근거림도 있다. 제발 나의 바람이 현실이 되길 바라며 확언의 다짐을 해본다.


"나는 6학년 담임으로서 2023년에 아이들과 행복하게 1년을 지내고 2024년에 우리 반 아이들을 무사히 졸업시켰다."


믿습니까?

믿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