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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Mar 17. 2023

라떼는 말이야.

수학의 실용성?

"선생님, 수학시간에 화채 만들어요?"

쉬는 시간, 주간학습안내를 들여다보던 아이들이 신이 나서 물어본다.

"아니."

"왜 안 만들어요? 저기에 쓰여 있잖아요."

"실제로는 못 만들지. 그럼 머릿속으로 만들어볼까?"

"그게 뭐예요."



아이들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혀 짧은 소리까지 내며 선생님에게 매달려본다. 수학 문제에 '화채 만들기'라는 상황이 들어가면 실생활 문제해결력이 늘어나는지 단원 막바지에 알록달록 그려져서는 가뜩이나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수업을 시작하니 이제야 '화채 만들기'라는 글자를 본 아이들이 마저 뒷북을 친다.

"선생님, 우리 화채 만들어요?"

"아니래."


이럴 때는 달래면서 시작을 할 수밖에.

갑자기 상황극이다.

"화채 만들기 준비물 잘 챙겨 왔나요? 너희들이 열심히 가져온 과일을 책상 위에 꺼내볼까? 아이고, 우리 J는 요즘 구하기 힘든 망고를 가져왔구나. A는 딸기를 한 박스나 가져왔네. 가져오느라 무거웠겠다."

라며 너스레를 떠니 아이들도 주섬주섬 상황극을 받아준다.

"선생님. 쟤는 준비물 안 가져왔대요. 저는 두리안을 가져왔어요."


이렇게 잠깐 웃고 떠들어야 문제풀이로 겨우 들어간다.

"1모둠에 5명이 있습니다. 화채에 들어갈 바나나 2개를 1인분씩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생님, 그냥 한 번에 넣고 다 같이 먹으면 안 돼요?"

"코로나라서 안 돼요. 꼭 1인분으로 계산해 보세요."

"2 나누기 5 해서 2/5에요."

"그림으로 살펴봅시다."


그래도 한 번 웃었다고 열심히 문제를 푸는 아이들이 귀여워서 이제 내가 해방을 놓는다.


"선생님이 라떼 이야기 하나 해도 될까?"

"네!"

역시 수업 중에는 수업 말고 딴 길로 새는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는 법이다.


라떼는 말이야, 라며 심히 과장된 억양으로 시작을 하니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뜸까지 들이며 말을 이어간다.

"교실에서 비빔밥도 만들어먹고, 계란도 삶았고, 떡볶이, 샌드위치도 만들었다. 부럽지?"

"우와."

발까지 동동 구르고, 절규를 하며 몸부림친다.


"아. 맞다. 선생님은 삼겹살까지 구워 먹었어. 6학년 때 상추를 직접 길러서 같이 먹었어."

"선생님. 우리도 실과 시간에 음식 꼭 만들어요."


다른 건 관심도 없는 녀석들이 실과 4단원엔가 나오는 음식 만들기를 용케 보고 매번 아우성이다. 못할 리 없지만 아직은 코로나로 조심스럽다. 예전보다 지킬 것도 많고 걱정도 많아져서 진짜 칼을 쓰는 것도, 불을 쓰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고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니 말이다.


"실습을 못하더라도 선생님이 올해 가기 전에 솜사탕 하나씩은 만들어줄게. 싸우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와."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환호성이다.


딸아이 생일 선물로 사준 솜사탕 기계로 아이들의 환심을 사려는 나는 금쪽이들의 선생님이다.

'28명을 어찌 다 만들어준담. '

이미 늦었다. 걱정은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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