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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Mar 26. 2023

내 쉬는 시간 어디 갔을까?

나도 최소한 화장실 갈 시간은 있어야 할 것 아니니.

"선생님, 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 Y가 울어요."

오늘따라 나를 부르는 아이들이 많다.


이번엔 내가 아이들을 찾는다.

"애들아 왜 여태 여기 있니?"

"선생님, 9반에 B학생이 있나요? 우리 반 아이와 문제가 생겨서 3교시 쉬는 시간에 잠깐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아이들짧은 동면에서 깬 것인지 이제 슬슬 활동 개시한다. 쭈뼛대고 눈치도 보던 아이들도 활동량이 늘어나고 행동반경도 넓어졌다.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는 학생들이 흘러 넘치고, 복도 중간에 있는 화장실 한 번 가려면 이리저리 부딪히지 않도록 곡예를 해야 한다. 분명 6학년 규칙에도 있고, 10분 전에도 복도 통행지도를 했는데도 모를 일이다. 너무 위험할 정도라 생각되면 단전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깔며 '우측통행'이라고 외쳐 보지만 그들은 미어캣처럼 망을 보다가 선생님이 지나가면 금세 복도를 채운다.



학급 안 사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3월 초반에는 쉬는 시간에도 자리를 지키던 아이들도 이젠 친구를 사귀어 온데간데없다. 남자아이들은 1주일간은 바닥에 딱 붙어 딱지를 치더니 시들해졌는지 몸을 부딪히며 놀이를 한다. 그 덕에 애꿎은 나무 화분 받침 부서져서 폐기물함에 버려졌다. 게다가 누군지 모를 그 아이는 스스로에게 관대했는지 이 사실을 내게 알리지도 않았다니 6학년 학생의 '자율성'에 다시 한번 놀라는 순간이었다. 물건이 망가지면 양반이다. 오늘은 아이가 다쳐 보건실에 다녀왔다. 엉엉 우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보건실에 보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서로 잡아당기고 밀고하는 '장난' 중이었다고 했다. (이것도 장난이 아니고, 다칠 수 있다고 몇 번은 이야기한 부분이지만) 그 장난 중에 등이 떠밀린 아이가 같이 놀던 아이에 부딪히고 튕겨져 바닥으로 자빠진 것이다. 넘어지며 엉덩이, 등, 뒤통수 순으로 바닥에 닿았으니 놀라기도 하고 아프기도 해서 눈물까지 났다는 것이다. 

"우리 반은 일반 교실이 아니고, 특별실이었던 곳이라 바닥이 나무가 아니라 돌로 되었어서 절대 이런 장난을 치면 안 된다. 이번에는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나중에는 모른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하지만 다치면 장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로 주의를 준다. 그러나 세 아이는 방금 전 일은 다 잊었다는 듯이 다음 쉬는 시간에도 여전히 비슷한 놀이를 시작했다.




그렇게 쉬는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또 다른 남자아이 C가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알고 보니 복도에서 같이 놀던 옆 반 아이한테 배를 세게 맞아서 너무 아프다는 것이다. 지난 일주일간 복도에서 뛰어 다녀서 몇 차례 주의를 받았던 학생인데 계속 행동을 지속하다가 아프다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짧은 한숨이 나온다. 수업을 끝내고 몇 반 친구인지, 어떻게 아는 친구인지, 장난을 언제부터 했는지, 평소에 불편하거나 하지 말라고 말한 적 있는지 등을 물었다. 상대방 아이 이야기도 함께 들어봐야 할 것 같아 옆 반 선생님께 간단한 상황을 말씀드리고 잠깐 상담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해 본다. 양쪽의 이야기를 들으니 작년부터 같이 운동을 하며 알던 사이고, 친해서 복도에서 만날 때마다 장난을 잘 치는데 서로 가끔 선을 넘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 아이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어제는 C가 세게 때려서 아팠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그들에게 물어본다. 사과하고 화해하고 싶다고 하니 그나마 훈훈한 결말이다. 그러나 이 결말을 보고만 있을 순 없는 나는 잔소리 한 스푼 추가한다. 

"복도는 통행하는 곳이고, 노는 곳이 아니다. 장난으로 시작했다가 한 번 세게 맞으면 나도 세게 때리게 되고, 그러면......" 

한 스푼이 아닌 것 같지만 마음속에 있는 말을 최대한 정선해서 말해본다.




영어 시간에는 5분이 지나도록 여자 아이들이 안 들어온다는 전담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여자 화장실로 달려가보니 인적 끊긴 화장실에서 시간이 지난지도 모르고 수다 중인 우리 반 여학생들이 보인다. 할 말은 많지만 수업이 시작했으니 일단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가라는 말을 하고 들여보낸다. 아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의 굳은 표정을 보고 마음을 읽었으리라.





열흘쯤 되니 상담하는 건수가 늘어난다.

아이들이 가고 홀로 교실에 있으니 생각이 늘어난다.


'아이들이 잘하는 것 같아서 내가 너무 풀어줬나?'

'벌칙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하나?'

'내가 매달 생일파티를 한다고 해서 애들이 너무 들떴나? 하지 말걸 그랬나?'

'2학기도 아닌데 3월부터 벌써 이러면 큰 일인데. 어떡하지?'


자책인지 생각인지 모를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듣고 있을까?

마음에 새기고 있을까?




아이들이 한 번 말한 대로 들으면 과연 어린이일까?

그런 아이들은 흔치 않지.


나 또한 그렇지 아니했음을 기억해 내곤 당연한 거라고 위안을 삼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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