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ry everything Apr 04. 2023

합창에 꽂혔다.

음악시간이다. 아이들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노랫소리가 작아진다. 자주 듣는 그들의 플레이리스트와는 전혀 거리가 먼 국악과 동요가 음악책을 가득 채운다. 1학년일 때는 음악 시간만 되면 떼창이 가능하고 그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힐링이 되기도 하였다. 목청도 좋고 어쩜 그리 높은 음이 시원하게 올라가는지 8살의 어림이 부럽다. 그러나 여긴 바로 6학년 교실. 발표도 잘하지 않는 탓에 발표자를 랜덤으로 뽑는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생각을 발표해 볼 사람?"

"..."

"선생님, 그냥 뽑아요."

"뽑히면 어차피 잘 발표하면서 그냥 손들고 발표하면 안 되는 거야?"

"..."

"그래. 27번"


발표도 이렇게 어려운데 노래까지 큰 소리로 잘 부르길 기대하는 건 욕심일까. 





음악 첫 시간은 네잎클로버였다. 유치원 때부터 유명했던 네잎클로버를 과연 이 아이들이 부를 것일까. 음악책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고민을 하다 '쎄쎄쎄'가 생각났다. 노래만 부르는 것보다 노래가 곁들여지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딸에게 오랜만에 네잎클로버 '쎄쎄쎄'를 배우고, 쉬는 시간에 아는 아이들을 수소문했다. 8명의 아이가 안다고 했다. 


"얘들아, 이따 음악 시간에 선생님 좀 도와줘. 친구들 알려줄 수 있지?"

"네."


빠르게 노래를 익히고 활동을 시작한다. 미리 부탁해 놓은 또래 선생님과 배워야 할 친구들을 모둠으로 엮어주고 시간을 주니 난리가 났다. 손을 한 바퀴 돌려서 박수를 치는 동작부터 난관인 아이들부터 못 가르치겠다고 바로 포기 선언하는 아이들도 생긴다. 할 수 있다고 어렵사리 응원하며 돌아다니니 점점 웃으며 활동을 익히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할 수 있는 아이들이 생기니 가르치는 학생들이 많아져 1:1 학습이 되어 속도가 붙는다. 배우느라 정신없는지 남녀 나눠서 하자는 아이들도 어느샌가 성별 가릴 것 없이 손바닥을 마주친다. 아니 손까지 붙잡고 가르치느라 바쁘다. 마지막에는 오랜만에 '쎄쎄쎄'를 하며 네잎클로버를 완창 한다. 한동안은 쉬는 시간까지 남자아이들이 손가락으로 한 잎 한 잎 네잎클로버를 만든다. 



다음 주 음악시간은 국악이었다. 개구리 소리. 또 음악책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한 귀퉁이에 장구가 보였다. 장구를 꺼내는 순간 난 득음을 할 것이다. 득음은 아니고 그전 단계인 피를 토하겠지. 평소에 못 보던 악기를 손에 쥐는 동시에 선생님은 안중에도 없을 것이고 아이들은 한 번이라도 더 치겠다고 신이 나겠지만 난 아마 속으로 '그냥 하지 말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장구를 굳이 멀리서 가져와서, 굳이 어려운 굿거리장단을 가르쳤고, 역시나 땀이 삐질 났으며 목소리는 내 곁을 떠났고, 예상했던 후회까지 한 시간 안에 마쳤다. 그래도 아이들은 장구 덕분에 개구리 소리를 신나게 불렀다. 노래 잘 부르면 빨리 장구를 칠 수 있다는 말 한마디에 말이다. 



그다음 주 음악시간은 다시 동요였다. 

'휘휘 사라라 휘휘 후'라는 가사에 아이들은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새로운 음악을 배우기 전, 가사를 음미하기 위해 글처럼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기 스타일이 전혀 아니라는 듯이 아니면 무슨 이런 가사가 있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저희는 이런 노래 못 불러요.'

너무 잘 읽히는 그들의 눈빛을 외면한 채 노래를 들려준다. I 성향인 나도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E가 되어 호들갑을 떤다.

 

"이 노래 시작이 완전 애니메이션 OST 같지 않니? 한 번 잘 들어봐."


아이들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다느니 어떤 노래가 생각난다느니 하며 '절대 노래 금지'라는 눈빛이 조금씩 빠진다. 그리고 노래를 배우고 불러 보았다. 그저 큰 목소리로 괴성을 지르는 아이들에게 부드럽고 아름답게 부르자고 말을 하니 조금씩 하나의 목소리가 된다. 노래가 끝이 나고 아이들에게 진지하게 말한다.


"우리 합창 대회 나갈까? 너희 너무 잘 부르는 것 같아. "

"선생님, 진짜 1학년부터 지금까지 중에서 지금이 제일 잘 부른 것 같아요."

"선생님도 진짜 소름 돋았다니까. 우리 반 노래까지 잘 부르다니. 너희 못하는 게 뭐니?"


6학년 아이들이 투바투, 부석순, 아이브 등의 아이돌 노래나 팝송이 아닌 동요에도 목소리를 내어 아름답게 불러줬단 사실만으로도 감동인 오늘 진짜 합창단을 꾸려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이 기세를 몰아 유튜브에 저장된 최애 합창곡을 틀어주니 아이들도 합창의 매력에 흠뻑 빠진 듯하다. 


'어디 속성으로 합창 지도 가르쳐주는 곳 없나? '

매일 배우고, 배울 것을 찾아다니고, 배워 놓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나는 오늘은 합창에 꽂혔다. 



https://www.youtube.com/watch?v=6amXWKRN65M

 

https://www.youtube.com/watch?v=csmku3VHFS0














 



이전 06화 나 하버드 학원 다닌 여자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