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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Apr 15. 2023

알지?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학부모 공개수업을 대하는 자세


"선생님, 진짜 많아요."

"뭐가? 무슨 일이야?"


쉬는 시간 아이들이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연신 놀란다. 뭔가 많다는건지, 밖에 화재라도 났나 싶어 급하게 일어나서 창밖을 본다.


'아.'

아이들이 놀란 이유를 알았다.


4년 만에 학부모 공개수업이 대면으로 이루어지니 이런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학교로 오는 길에 누가 줄을 세운 것처럼 행렬을 이루어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아이들이 놀랐나 보다.  아이들에게 많은 인파를 처음 보냐며 대수롭지 않은척 했지만 그때부터 공개수업이라는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황급히 물 한모금을 마셨다.




"얘들아, 우리 태블렛 활용하는 수업할 때 가끔 인터넷이 안되거나 튕길 때가 있었잖아. 오늘도 그럴 수 있거든? 긴장하지 말고 인터넷 연결됐는지 확인하고, 차분하게 다시 로그인하자. 계속 안되면 선생님한테 나와도 돼. 평소 하던 것처럼. 알지?"


수업 준비라고 아이들과 딱히 미리 준비한 것은 없었다. 아이들이 무슨 수업을 할 거냐며 궁금해했지만 평소 하던거 할거야, 라고 대답했다. 주간학습안내에 [자율-독서토론교육]이라고 써있는 것을 본 아이들은 눈치 빠르게 책으로 수업할거냐 묻는다. 그렇다 대답하니 이번에는 발표를 다 시킬거냐고 묻는다. 다 시키진 않을건데 랜덤으로도 시킬거라 하니 온몸을 비틀며 좌절한다.


"선생님, 안 뽑으면 안 돼요?"

"왜? 너희들 발표 잘하잖아."

"그래도 엄마 오면 뭔가 더 긴장된단 말이에요."


은근히 긴장을 하거나 걱정을 하는 아이도 있는가하면 바로 전날까지도 부모님이 학교에 오시는지도 모르는 아이들도 많다. 아이들이 긴장을 하니 내색은 안했지만 연달아 걱정이 되기도 한다. 때론 아이들도 긴장을 너무 많이 하여 고요한 적막이 흐를 때도 있고, 완전히 반대로 방방 떠서 평소보다 산만한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으니 올해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사뭇 걱정이 됐다. 그야말로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니 말이다.




학부모 공개수업이 금요일인지라 이번 일주일은 내내 신경이 쓰이고 분주했다. 매년 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새삼스러울 정도다. 코로나 19로 3년간 학부모 공개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다 4년 만에 대면으로 바뀌니 한번도 해본적 없는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공개수업을 처음 할 때는 오히려 웹캠을 통해 수업 상황이 전송되는 것이 낯설었는데 3년 했다고 이젠 그것이 익숙해졌다니 사람의 적응력이란 참 무섭다.


이윽고 그날이 밝았다. 쉬는 시간부터 하나둘씩 입장하시는 분들을 보니 갑자기 손이 차가워진다. 연신 손을 비벼대지만 바짝 마른 손이 차갑게 느껴졌다. 인사를 하며 첫 시작을 하는데 아이들에게 긴장하지 말라 말이 무색하게 긴장이 되었다. 시작과 동시에 이실직고를 하며


"제가 아이들에게 긴장하지 말라고 했는데 오랜만에 공개수업을 하니 제가 더 긴장이 되네요."라며 어색한 웃음으로 시작을 하니 아이들도 잠시 웃음을 터뜨린다.


학생과 학부모의 긴장을 풀기 위해 계획했던 게임 덕에 나도 긴장이 풀리면서 살포시 수업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완벽한 아이 팔아요.'라는 그림책을 읽으며 때론 부모님과 함께 간단한 게임도 하고, 그림책도 함께 읽었다. 아이들도 책에 몰입하며 발표도 곧잘하였다. 전체 분위기는 차분한데 그 와중에 생동감이 있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이번에는 너희가 손을 들면 부모님이 이야기 하실 거야. 부모님의 의견을 듣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보자."

하니 발표를 하지 않던 아이들도 손을 번쩍 든다. 이렇게 손을 잘 들수 있는 아이들이었던가. 아이들 덕에 소환되신 부모님은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도 발표하셨다. 아이들은 본인들만 억지로 발표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은지 부모님과 눈빛을 교환하며 키득키득 웃는다.


오늘 우리 반 학부모님은 바쁘셨다. 아이들 수업을 참관하러 오셨지만 수업의 일정 부분을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마지막 관문은 바로 내 자녀의 모델명 쓰기였다. 밴드로 공지된 글 아래에 내 자녀의 모델명이 있다면 무엇일지 이유와 함께 적어 달라 부탁을 드렸다. 그림책에 보면 아이를 파는 마트가 나오는데 아이들의 모델명이 나온다. 음악특기생, 천재 아기 같은 이름 말이다.  



"부모님이 너희들의 모델명을 적어주셨는데 선생님이 읽어 줄테니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손을 들어봐. 그리고 이유도 말해줘."

"첫번째, 다정하고 요리도 잘하는 아이."

"..."

"아무도 없어? 잘 생각해봐. 나라고 생각하면 자신있게 손을 들어보자."

끝까지 손을 들지 못한 아이들 덕에 답을 공개한다. 글씨도 잘 쓰고 할 일도 잘하지만 평소 말수가 없 Y라고 밝히니 아이들도 놀란다.

"우와, Y였어?"

그 다음에는 댄싱머신, 긍정왕,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하기 싫은 일도 참는 아이처럼 멋진 모델명이 등장했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자신을 이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에 부끄럽기도 하고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교실에 모인 모든 이들이 설레임과 긴장으로 모였을 것이다. 제일 발표를 열심히 했던 아이조차 뒷통수가 뜨거웠다고 고백한 것처럼, 반 아이들에게 긴장하지 말라고 해놓고 제일 먼저 긴장한 나처럼, 아이가 손 든 덕에 얼떨결에 발표한 부모처럼 설레고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감돌았던 40분이었다.



이 기분이 사그러들새 없이 글로 남기고 싶어 글을 썼다. 큰 산 하나 넘은 기분이라 오늘은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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