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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May 10. 2023

원근법과 노화

미술시간이다. 아이들이 미술시간에 수채화를 많이 접해보지 않았다 하여 '그럼 올해 선생님과 10번의 수채화 활동을 하자'라고 말하고 맞이하는 2번째 시간이다. 오히려 내가 학생 시절에는 크레파스와 수채화 용구를 많이 쓴 듯한데 요즘은 다른 미술 도구들이 많아서인지 자주 쓰지 않는 편이다.


수채화를 쓰면 일단 교사의 품이 많이 든다. 기법을 지도하는 것부터 정리까지 잘 해내려면 신경이 쓰인다. 물을 뜬다며 공부 시간에 복도를 들락날락하는데 이때 아무리 조용히 다녀와라 해도 복도를 나가자마자 떠드는 아이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 게다가 팔레트를 씻는다며 개수대 전체에 물감을 튀기거나 화장실 바닥이 흥건해지지 않도록 교실에서 개수대로 순간 이동하여 정리하는 것을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초등학교 3-4학년을 코로나로 보낸 6학년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수채화를 지겨울 정도로 시켜볼 요량이었다.


수채화의 꽃 '풍경화'가 오늘의 활동이다. 소실점을 바탕으로 한 원근법을 활용하여 가로수를 그려 보기로 하였다. 아이들에게 원근법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원근법(遠近法)
일정한 시점에서 본 물체와 공간을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이 멀고 가까움을 느낄 수 있도록 평면 위에 표현하는 방법.


다소 생소한 단어에 아이들이 어려워했다. 이럴 때는 한자어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것이 이해하기 편한 법이다.

"혹시 원근법의 한자가 어떻게 될까?"

"..."

"선생님이 힌트를 줄게. 안경 낀 사람들은 알 수도 있어."

"근...시?"

그제야 한 아이가 '가까울 근'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낸다.

"맞아. 가까울 근이야. 그럼 원은?"

"멀 원이요."

"보통의 사람들이 안경을 쓸 때는 '가까울 근'해서 근시, 즉 가까운 것이 잘 보이고 먼 것이 잘 안 보일 때 쓰지."

"그럼 원시는 먼 게 잘 보이고 가까운 것은 잘 안 보이는 거예요? 그럴 수가 있어요?"

한 아이가 가까운 게 더 안 보이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질문을 했다.

"혹시 어른들이 핸드폰을 볼 때 손을 멀리 해서 보는 것 본 적 있니?"

말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제야 아이들이 본 적이 있다면서 따라서 흉내를 낸다. 아이들은 자신은 영원히 나이 들지 않을 것 같은지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너희들도 눈 깜짝하면 대학생이고, 또 눈 깜짝하면 회사원이고, 또 눈 깜짝하면 엄마, 아빠 될걸?"

아이들이 나이 먹기 싫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래, 지금이 제일 좋을 때야. 선생님도 학생이었는데 눈 깜짝하니 지금인 것 같다. 지금을 즐겨."


오늘도 나의 노화를 걱정해주는 아이의 편지


아이들도 어느샌가 어른이 되어 진짜 눈 깜짝할 새에 나이가 들었다고 회상하겠지? 오늘도 5분도 안 되는 찰나에 원근법에서 나이 듦으로 이야기가 번졌다 돌아왔다. 수업이 잠시 길을 잃었지만 다시 궤도로 돌아와 무사히 수채화 활동을 마쳤다. 아직도 8회가 남은 수채화가 두렵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생각보다 잘 그린 것 같다며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을 다잡는 수밖에 없다.



[팩트 체크] 원시와 노안은 증상은 비슷하나 발병 원인이 완전히 다르다. 원시는 시력 장애의 일종이나 노안은 노화로 인한 것으로 시력 장애가 아니라고 한다.

원시와 노안을 잘 몰랐던 나, 반성한다.

이전 09화 알지?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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