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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로 Oct 07. 2023

모닝콜이 이상해

이건 시작부터 끝까지 우는 얘기다.

처음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스무 살이 되던 해 겨울의 일이다. 아버지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연초마다 몇 주씩 뉘른베르그에 있어야 됐는데, 눈물바람으로 실성을 해서 간 그 해의 뉘른베르그는 풍경조차도 기억이 안 난다. “우리 이만 헤어지자. 널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어.(?)” 난데없는 이별 통보를 듣고서 심장을 도려낸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알았다. 거기다 붙잡아볼 새도 없이 7시간이 다른 이역만리에서 몸까지 멀어지는 비극이란.


출국날엔 이륙과 동시에 울기 시작해서 가는 동안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내내 눈물을 쏟았다. 너무 우니까 코가 막혀서 나중엔 그게 두통이 됐다. 울면서 비행기를 타면 실제 슬픔보다 더 느끼게 된다. 첫 연애에 첫 이별, 뭔가 하늘 위에서까지 비련에 몸서리친다는 사실이 조금 맘에 들었을지도. 몸은 거기 있는데 마음은 그게 아니라 독일에서 지내는 매일이 가시밭길이었다. 그 남자가 내 페이스북을 차단한 바람에 틈만 나면 다른 사람들 폰까지 빌려다 스토킹을 했다. 그것 말고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뭐 먹는지 어딜 갔는지 누굴 만나는지(그는 sns 헤비유저였음) 실시간으로.. 되게 야무지게 잘 지내네. 이런 나쁜! 울면서 그만 체념했다가, 굳이 또 찾아보고 서러워 울고를 반복. 퉁퉁 불은 붕어눈을 하고 끼니를 굶고. 그때도 그 구실로 뭔가를 계속 쓰긴 썼었다. 사랑이 뭐야?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야 하나? 사랑은 죽음이다. 오빠 존나 사랑했어. 와중에 몇 번씩 다듬고 고친 메모장의 사랑론은 마치 고뇌하는 초등학교 6학년의 그것이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너 계속 그럴 거면 좀 나가서 바람이나 쐬고 오라고 돈을 줬다.


친구가 베를린 언니집에 묵고 있다고 했다. 호텔 근처 버스터미널에서 편도 티켓을 끊었다. 컨버스 신고 외투 하나 덜렁 들고 갔는데, 북쪽으로 5시간 버스를 달려서 도착해 내리자마자 얼어 죽을 뻔했다. 그렇게 추울 줄을 몰랐다. 엄청난 폭설이 막 퍼붓고 간 직후였다. 새끼발가락부터 동사할 지경으로 진눈깨비를 맞으며 덜덜 떨면서 걷다가(좀 비련 맞아짐) 근처에 창고세일 하는 신발가게에서 짝퉁 어그를 사서 신었는데, 젖은 걸 대충 라디에이터에 올려뒀더니 다음날 곰팡이가 펴서 바로 버렸던 기억이 난다(더 비극적이 됨). 아무튼 눈 맞은 생쥐꼴로 친구를 만나 언니네에 가서 신세를 지게 됐다. 친구랑 똑 닮은 언니가 따뜻하게 맞아줬다. 그러고 며칠 그냥 동네 피자가게랑 맥주집이나 돌면서 시시한 연애썰을 돌림노래 부르며 또 울다가 말다가 한 게 다다.


사실 그만큼 했으면 그만 울 때도 되었으나 좀 더 누리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또 우는 데 맛 들린 사람이 스스로 뚝 그치는 문제는 지고 있는 싸움과도 같아서, 누가 말리는 척을 적극적으로 안 하면 도중에 관두기도 멋쩍은 거다. 친구도 속으로 정말 귀찮았겠지. 그때는 그 집에서 매일 들은 모닝콜마저 슬펐다. 아니 정말로 슬픈 노래였다. 아침 7시마다 인피니트 성규의 발라드곡 <눈물만> 어쿠스틱 버전이 울려 퍼졌다. “오 나 네게 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씽 유..” “내겐 가진 건 심장뿐 못난 놈이라..” 언니는 무슨 그런 구슬픈 노래를 모닝콜로 하신 거지? (이거 일종의 음모인가?) 귀가 따가워 잠을 깨는 게 아니라, 가슴이 찢기는 통증으로 잠을 깼다. 정말이지 그 상태로 잠이 달아나버렸다. 그리 아름다운 연애사도 아니고 그닥 감정이입할 가사도 아니었으나 나는 마치 내가 성규랑 이별했던 거처럼 몰입해서 아파했다. 어둑한 방 안에 모닝콜이 울리자마자 눈이 떠지고, 즉각 울분이 터지며, 남들 깰 때까지 속으로 삭이는 게 루틴이었다. 파블로프의 개 절망버전이랄까요. 그리고 나머지 가사를 흘려보내면서 침대 밑에 기어들어가 바닥을 부여잡고 마저 울었다. 남몰래 우는 울음의 맛을 그때 알았다. 몸을 옆으로 누이니 눈물이 가로로 흘렀다. 정말 조그만 방이었어서 바닥에 친구랑 나란히 누우면 몸의 3분의 1쯤은 침대 밑으로 말려 들어가는 구조였다. 어찌 셋이서 지냈을까? 초대를 제대로 받고 간 게 맞는 것인지 지금 와서 의심이 든다. 정말 좋은 언니셨다.


그 겨울의 베를린 같은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눈물만>이 생각이 난다. 요즘 밤마다 쌀쌀해지니 오랜만에 다시 듣는다. 이상한 모닝콜이 나름 나의 사춘기 감성을 지켜줬기에, 가만히 듣고 있으면 스무 살로 돌아간 기분이라서. 노래가 그 시절의 마음과 날씨와 냄새까지 불러온다는 걸 처음 알려준 시간들이다. 그 남자랑 사귀었던 일은 이제 기억도 안 나는데, 이별의 여운을 너무 쎄게 누린 바람에 레전드 눈물썰로 남았다. 아플 땐 막 아파야지. 다행히 시간은 흘러가고 통각은 무뎌지며 금방 죽어버릴 것만 같던 설움도 유년의 추억 비슷하게 남는다.

그러면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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