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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Aug 29. 2024

2. 걷고 걸어 일본의 시골 마을로 (2)

나홀로 간사이 ( 아마노 하시다테 - 이네노 후나야 - 미조시리 )

아마노 하시다테 - 깊은 마을의 어느 숙소






- 2024년 4월 11일 금요일, 아침 9시.  교토 (Kyoto)



햇살이 커튼을 뚫고 나를 깨운다.


설렌다. 오늘이구나.


날씨도 화창하고, 컨디션도 좋다.

드디어 아마노 하시다테의 이네 마을로 떠난다.

이네의 부둣가에 걸터앉으려 일본까지 왔다.


..


체크아웃 시간이 되기 전, 백팩을 들어메고 교토역으로 출발했다.

아마노 하시다테로 가려면, 후쿠치야마에서 단고 열차로 갈아타라고 한다.

친절한 역무원이 조금 다르게 생긴 티켓을 끊어 건네며,


''

"아마노 하시다테, 굿 초이스 !"

''


두 손 엄지를 추켜올려 웃어준다.

갔다가 마을에 반해버리면 눌러살아야지 - 싶은 순간이었다.


후쿠치야마에 내려 10분을 기다리니, 고급스럽게 늙은 열차가 멈춰 섰다.

오래됐지만 낡지 않았고 - 시간이 스민 듯한 열차의 문이 열린다.

내부엔 나 혼자 있었고, KTX에 익숙한 나에게 낯선 풍경이 비췄다.



---

후쿠치야마에서 갈아탄 단고행 열차, 객실에서는 나무 냄새가 났다.

---






2시간가량을 달려 아마노 하시다테 역에 내렸다.

햇살이 뜨겁다.


사람이 없는 역 앞 버스 정류장과, 긴 골목을 채우는 오래된 목조 주택은

어딘가 낯설었고, 저기 어딘가 숨은 동화 속 마을의 입구 같았다.

 

이네 마을은, 이곳에서 버스로 1시간을 더 가야 한다.

어찌어찌 마을버스를 타고, 이네 마을로 출발했다.

그렇게 또 1시간.


-- 창 밖에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창 밖으로 보인 이네 마을

---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수상 가옥들, 이곳은

이네노 후나야 (伊根の舟屋),   관서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물과 맞닿은 주택을 보면, 이곳이 강인 것 같지만 바다다.

잔잔하게 철썩이는 파도와 갈매기, 산과 목조주택이 평화롭고 이색적이다.


나를 태우고 온 버스는 떠났고, 마을엔 관광객이 몇 없다.

새소리와 넘실대는 물소리만 들렸고, 부둣가를 찾아 앉았다.

사진 몇 장을 찍고, 30분간 눈을 감았다.



---

이네 마을, 이 부둣가의 끝에 걸터앉아 30분 간 숨을 쉬었다.

---



부둣가에 앉아 쉬는 중,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마을에 사시는 분이 (선장님 같다) 어딘가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을 건넸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말 중간중간에 익숙한 단어가 들렸다.



''

 %^!@# ... 바스! 버스!  "

''



아뿔싸, 마을에 정신이 팔려 버스 운행 시간을 생각 못했다.

그분이 가리킨 곳은 정류장이었고,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뛰었다.

뛰어서 10분 정도, 조그만 버스 정류장이 나왔다.



---

이네 마을의 버스 정류장

---



도착하고 나서야 구글맵을 열었고, 

6시가 마지막 버스였다.  나는 5시 55분에 이곳에 도착했다.

이네 마을에는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여기서 노숙을 해야 했을 거다.


이 날, 내가 예약한 숙소는 기차역 근처의 조그만 민박집이었다.

6시, 마을버스가 도착했고, 그렇게 30분 정도 달렸나.



어느 지점에서 버스가 멈춰 서더니, 버스 안 승객들이 우루루 내렸다.

버스 기사님이 일어서서 뒤를 돌아보시더니,



''

#$%#@..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 "

''



대충 눈치를 챘다.

그렇다. 이 마을버스는 오늘 이곳까지만 운행을 한다.


그래서 이곳은 어디인가.

도대체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이놈의 낙천적인 성격과 계획적이지 못한 성격이..

나를 결국 이렇게 몰아가는구나.


내린 버스 정류장에는 조그만 간판이 서 있었다.



MIZOSIRI - "



미조..시리?..

나 역으로 가야 하는데..?


여긴 카카오 택시도 없다.

절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니다.

구글에 Mizosiri를 검색해도, 숙박 업소는커녕 게시글도 없다.


이곳은 어디인가.



--

다음날 찍은 MIZOSIRI 마을의 버스 정류장

---



버스 정류장 뒤로는 마을로 걸어 들어가는 조그만 샛길이 있었다.

뭐.. 별 수 있나.  이것도 여행이니 샛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마을의 스피커에서 종소리가 들린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가 끝났다는 종소리 같았다.



---

무서웠던 미조시리 마을의 버스 정류장

---



샛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고, 정말 마을에 개미 한 마리 없었다.

조금 무서웠고, 모든 감각이 현실을 무섭게 자각하고 있었다.


곧 해가 질 것 같으면, 다시 샛길을 통해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려 했다.

거기서 지나가는 차 히치하이킹을 해 보려고.


그 생각을 하며 걷던 중, 마을 끄트머리에 작은 건물이 나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이 작은 마을에 '리조트'라 적힌 건물이 있다.



---

정말이다.

---



'The Gran Resort'


Grand도 아니다.  Gran.  그랑 리조트다.

나는 그랑 리조트로 뛰어갔다.  홀이 생각보다 고급스러워서 놀랐다.

머리를 정갈하게 넘겨 정리한 데스크가 나를 맞아주셨다.


나름 유니폼도 갖춰 입고, 그랑 리조트의 룰북도 보였다.

다만, 영어와 한국어 모두 안 되는 데스크였다.


다시 파파고를 꺼냈고, 하루 1만 엔에 싱글 도미토리룸을 잡았다.

이 무슨... 계획에도 없던 이곳. 미조지리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안내받은 도미토리룸으로 들어갔고, 내부는 기가 막혔다.


방 안에 중문이 하나 있었고, 중문을 열어젖히니

황홀한 오션뷰가 펼쳐졌다.



---

The Gran Resort

---



만약 여러분이 이네 마을에 갔다가, 막차를 놓쳐 미조지리에 내린다면

그랑 리조트가 있으니, 너무 걱정 말아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놀라는 것도 잠시,

아침부터 수만 보를 걷고 방금까지 긴장을 했던 탓인가.


온몸에 힘이 빠졌다.  나는 도미토리 바닥에 가방을 던지고 누웠다.

배가 고프다.  그런데 근처에 식당도. 편의점도 없다.

구글맵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데스크에 내려가 혹시 식당이 있는지 물어봤고 -

데스크에서는 조그만 지도를 꺼내더니, 빨간펜으로 어느 지점을 동그라미 쳐줬다.

좌표가 있는 지도가 아니라, 누가 크레파스로 그려서 복사한 듯한.  조잡한 지도였다.


당연히 한자였고, 사진을 찍어 번역해 보니 - 식당의 이름은 "해신 (海宸)"이었다.

리조트를 나가서 10분 정도, 왼쪽 길을 걷다 보면 가게가 나올 것이라 한다.

구글맵에 어떻게 검색해야 할지 몰라서 무작정 왼쪽으로 걸었다.


가로등도 없었다. 도로에는 차도 없다.

타국의 시골 마을, 주택가도 보이지 않는 늦은 밤 도로는 정말 무서웠다.


10분쯤 걸었나, 불빛도 보이지 않았고. 더 걷다가는 미아가 될 것 같아 식당 찾기를 포기했다.

다시 리조트 방향으로 걸어갔고, 리조트 앞에 다다랐을 때 - 데스크 직원과 마주쳤다.

이제 퇴근을 하는 모양새였다.


''

아... 아이 캔트 낫 파운드 레스토랑 "

''


서러운 목소리로 데스크 직원에게 호소했고, 그녀는 난색을 비쳤다.

다만 나는 어두운 도로에서 데스크 직원을 만나니 -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녀는 왼쪽으로 쭉 가면 나오는 것이 맞다고 다시 한번 알려줬고,

내 앞에서 가게 사장과 통화까지 하며 확인을 시켜줬다.



'아. 길이 무서워서 더 못 걸어간 건가...'



분명 10분 넘게 걸었던 것 같은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왼쪽으로 난 길을 걸었다.


10분이 넘도록 꽤 긴 거리를 걸었고, 저 앞에 빨간 등불이 보였다.

데스크 직원이 알려준 가게였다.



---

야밤이라 사진을 못 찍었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이 건물이다.

---



가게 사장님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맞아주었다.

내부는 다섯 테이블 정도가 있었고,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테이블엔 내가 올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음식이 세팅되어 있었다.


( 메뉴판이 따로 있는데, 마감 시간이라 일반 정식을 준비해 준 것 같았다 )


내 얼굴을 보는 늙은 사장님의 얼굴은 흡사.

길을 잃고 헤매다 겨우 집으로 돌아온 손주를 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아마, 데스크 직원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길 못 찾고 새파랗게 겁에 질린 한국인 한 명이 가게로 갈 거예요 '


자리에 앉은 나는 온몸에 긴장이 풀렸고,

맥주를 하나 주문했다.


스시와 가라아게. 맥주가 세팅되었고 - 나는 그제야 한숨을 쉬었다.



---

'해신'의 마감(?) 정식.  상당히 맛있었다.

---



10분 만에 음식을 해치웠고, 가격은 대략 3천엔.

생각보다 비쌌지만 오늘 첫 끼인지라, 배를 채운 기쁨에 가격은 들리지도 않았다.






배가 부르니, 이다음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숙소까지 다시 어떻게 가지?  그만큼 길이 어둡고 무서웠다.


그런데 식당 근처에서 북소리와 피리 소리가 들렸다.

도로 옆 골목에 주황색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생각했다.


'? 내가 지금 도깨비를 보는 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피리 소리와 장단은 기묘한 느낌을 풍겼고,

나는 불빛이 새어 나온 골목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곳에서는 신기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

저녁 9시. 미조시리 마을의 어느 골목

---



여러 아이들과 어른이 대나무 봉을 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춤이라기보다는, 무술과 춤 사이 어떤 행위에 가까웠다.


마을의 장로처럼 보이는 노인분께서 팔짱을 끼고 이를 지켜보고 계셨고,

내 나이 또래의 성인 남자들이 피리를 불고 북을 치고 있었다.



.... 이게 뭐야



난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었고, 한 어린아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내가 외국인인 걸 아는 듯, 아이는 명쾌하게 이 풍경의 정체를 알려줬다.



''

마쯔리!  마쯔리! 미조시리 마쯔리! '

''



마쯔리는 일본에서 제사, 혹은 어떠한 의식을 말한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찾아보지는 못했고, 한국에 돌아와 검색해 봤다.


대충 이 마을의 전통 의식이구나, 라 생각하며 감상을 시작했다.



---

미조시리 마을의 마쯔리, 다들 즐거워 보인다.

---



다들 즐거워 보였고, 봉춤은 정해진 규칙과 안무가 있는 듯 보였다.

차례를 기다리는 이는 연습을 하고, 부모님들은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30분을 서서 지켜봤고, 행복한 얼굴들을 보며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 아이들은 10년, 20년 뒤 어떻게 자라 있을까?

도시로 나갈까? 도시로 나간 이 아이들은 본인의 고향을 어떻게 생각할까?

사랑하고 그리워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들의 유년기는 따뜻하고 정다울 수밖에 없겠다.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면서, '고향'과 '마을'이 사람들을 같이 키워주고 지켜주는 것 같았다.


참 부러웠다.

나의 모국, 대한민국은 이런 정(情)의 시간이 존재하는가.

조금은 씁쓸한 발걸음을 떼어 리조트로 걸어갔다.


...

숙소에 도착하고는, 교토에서 산 위스키를 꺼냈다.

두 모금 정도를 마시고,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 2024년 4월 12일 토요일, 새벽 5시.  미조시리 (Mizosiri)



.. 살짝 들어온 희미한 빛과 새소리에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창 밖은 다시 한번 감탄사를 자아냈다.



---

새벽 5시 반.

---



푸르스름한 새벽이 창 밖의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난 몸을 일으켜 리조트 밖으로 걸어 나갔다.


리조트 밖, 미조시리 마을의 아침은 영화에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나는 입을 벌리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사진은 풍경을 담지 못한다.

---

멍하니 바라본 풍경

---



머리 위로는 비둘기가 아닌 매가 날고 있었고,

상쾌한 공기와 그림 같은 구름이 - 일본에서의 셋째 날을 밝혀주고 있었다.


진하게 감동을 받고 숙소로 들어갔고, 그랑 리조트는 공용 온천이 있었다.

온탕에 몸을 담그고 한 시간.  몸을 깨끗이 씻고 난 후 - 리조트를 체크아웃했다.

언제 출근했는지, 어제 나를 도와준 데스크 직원이 환하게 나를 반겨줬다.


가방을 들쳐메고 미조시리 마을의 버스 정류장으로 가던 중,

이 마을의 아침 분위기를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발걸음을 틀어 골목골목으로 들어갔고,

그 골목에는 나를 미치게 하는 스팟이 모습을 드러냈다.



---

골목 끝 간이 부둣가가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



''

와.. 이건 정말.. 미쳤다.. "

''


골목 끝에는, 햇살을 받아 넘실대는 바다의 윤슬과 주택 사이에 뻗은 간이 부둣가가 있었다.

감탄사를 육성으로 내뱉으며 홀린 듯 걸어갔고, 나는 그곳에 앉았다.


이곳은 두 시간, 아니 다섯 시간짜리 스팟이다.


눈앞에 펼쳐진 황홀한 풍경과, 양 옆으로 펼쳐진 이색적인 풍경은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나에게  ' 세상을 많이 돌아다녀야겠지? ' 라 말하는 것 같았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연신 감탄을 내뱉다가

코를 스치는 바닷바람에 눈을 감고. 다시 슬며시 눈을 뜨면 감탄을 하는.

미조시리의 마을 사람들이 정말 부러운 순간이었다.



---

두시간을 앉아있었다

---



두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이제 일어나야지.

햇빛에 얼굴이 아주 그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았더니 골반이 쑤신다.


다만 일어나서 정류장으로 가려하니, 이 풍경을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생각에

한 10분을 서성이다가 자리를 옮겼다.


마을을 나와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고, 버스가 도착하기 직전 - 마을에선 다시 종소리가 울렸다.

어제저녁에 들었던 종소리와 다르게, 하루를 시작하는 힘찬 종소리가 펴졌다.



---

미조시리 마을의 아침 종소리

---



마을이 인사를 하는 기분.

너무 행복한 기분과 추억을 안고 가는 것 같아 감사했다.


언젠가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우연이 아닌 내 발로 찾아오겠다.


나에게 마쯔리를 알려준 꼬마와, 해신 사장님을 다시 뵐 수 있기를.


..


귀국까지 이틀.


난 이제 다양한 사람을 만나러. 나라현 (奈良県)으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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